[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낮은 지지와 권력 독점의 불비례…민주공화국이 위험하다

기자 2023. 3. 1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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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곡된 제도에 버려진 민의
한국의 주권과 권한의 논리와 현실은 민주공화국의 원리에서 크게 일탈해 있다
그리고 이 점이야말로 국가가 소멸되는 흐름의 최고 원인 중 하나다
민주공화국 정신과 원칙 살려내지 않는다면 소멸을 향하여 계속 질주할 것이다
이 뿌리와 기둥을 바로 세우지 않고서 민주공화국을 살릴 길은 없다
국민의 뜻과 주권을 다시 살려내지 않고선 국민의 생명과 나라를 살릴 길은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는 헌법 정신과 조문으로 표현된 우리들 나라의 실제 체제인 동시에 목표요 이상이다. 뿌리이자 줄기이며 바탕이자 기둥이다. 따라서 현실과 정신에서 이 말은 대한민국이 ‘민주’와 ‘공화’의 두 근본 원리와 원칙에 기반하여 작동되어야 함을 뜻한다.

그 뿌리와 기둥은 누구도 벗어나면 안 되는 근본 합의이며 정언명령이다. 요컨대 민주와 공화의 원리를 벗어나면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와 목적에 위반된다. 거기에서 멀어질수록 나라는 흔들리며 길을 잃는다. 끝내는 소멸과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국가소멸이라는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민주공화국으로부터 너무 멀리 일탈하였기 때문이다.

근대 민주공화국들의 출범을 전후로 ‘민주’와 ‘공화’의 원리는 실제 나라의 구성과 운영에서 각각 ‘주권’과 ‘권한’, 그리고 ‘국민’과 ‘정부’로 구체화되었다. “주권(sovereignty)은 국민에게, 권한(authority)은 정부에!”라는 원리를 말한다. 이는 “주권은 시민에게, 권한은 대표에게!”와 같은 말이다. 민주주의와 민주공화국에 대한 사유와 실천의 도정에서 이 원리는 확고한 근거를 갖는다.

이때 주권은 민주의 원리를, 권한은 공화의 원리를 표상한다. 따라서 전자는 국민·민중·시민이 주체이며, 후자는 국가·공화국·정부가 주체가 된다. 주권을 갖는 국민이 권한을 정부에 부여함으로써 입법권·행정권·사법권이 구성된다. 입법권·행정권·사법권의 권(權)은 주권이 아니라 단지 권한을 말한다. 권한(權限)은 문자 그대로 주권으로부터 부여받은 정부 권력이 미치는 법적으로 한정(限定)된 범위를 뜻한다. 권한이 주권을 초월할 수도 침해할 수도 없는 이유다.

그런데 근대 이후 국민의 주권으로부터 부여받아 정부를 운영하는 권한은 자유의사를 갖는 시민의 선출로 구성되는 대표에 의해 행사되었다. 따라서 가능하면 모든, 또는 더 많은 국민 주권을 반영할 수 있을 때 정부의 역할과 권한 행사는 국민 의사에 근접하거나 비례한다. 민주공화국을 구성하기 위한 대표 선출의 제일 원칙이다. 주권 평등의 원리인 1인 1표를 말한다. 또한 모든 개별 주권을 반영하려는 1표 1수(one vote, one counting) 원리가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다.

가능한 한 다양하고 많은 국민의 의사와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정부의 권한은 최대한 분립되고 견제될 필요가 있다. 이점이야말로 1인 독점 및 인치(人治)에 기반한 군주국가·독재국가와, 권력분립 및 법치에 기반한 민주공화국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민주공화국을 뜻하는 근대 이후의 민주주의를 대의민주주의·대의공화국·의회민주주의로 표현한 까닭이다.

그러나 한국의 주권과 권한의 논리와 현실은 민주공화국 원리에서 크게 일탈해 있다. 그리고 이 점이야말로 국가소멸 흐름의 최고 원인의 하나다. 나의 주권과 목소리가 제도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나라에서 나의 요구와 이익을 증진시킬 정상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권의 행사를 통해 정부와 대표를 구성하는 두 중심 기제인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보자.

먼저, 대통령 선거의 국민 주권 반영 비율을 보면, 민주화 이후 대통령 8명의 평균 득표율은 유효투표 대비 44.65%, 선거인 수 대비 34.03%였다. 유효투표의 절반 이상인 55.35%가 반대표 내지는 사표다. 전체 선거인 수 대비로는 겨우 3분의 1의 지지에 불과하다. 민주화 이후 2위와의 최대 표차(22.52%)를 기록한 이명박 대통령조차 선거인 수 대비 득표율은 간신히 30%를 넘었다(30.52%). 탄핵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각각 41.08%, 31.6%를 득표했을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2위 득표자와 가장 작은 0.73%포인트 차로 당선되었다. 대통령 8명 전체 평균 표차 비율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초박빙이었다. 유효투표 대비 절반 이상을 득표한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했다(51.55%). 선거인 수 대비 득표율도 최고였다(38.93%). 그러나 2위와의 표차는 3.53%포인트로 평균 표차인 8.06%포인트의 절반에 불과하다. 국제비교를 보더라도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제 민주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불비례적인 선두권을 형성한다. 우리의 국회의원 선거에 비해서도 압도적인 불비례성이다.

승자 독식과 권력 독점 철폐돼야

낮은 득표율 못지않게 더욱 심각한 점은 다른 데 있다. 낮은 주권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통령은 주권의 위임을 훨씬 초과하는 권력의 절대반지를 낀다는 점이다. 한국 대통령은 대통령제의 원형으로 불리는 미국 대통령에게는 없거나 그가 크게 제약을 받는 개헌안 발의권·법률안 제출권·예산권·인사권·감사권을 전부 갖고 있다. 이른바 초과 대통령(super-president), 과대 대통령(hyper-president), 제왕적 대통령이다.

즉 한국은 대통령의 낮은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승자독식 및 대권독점으로 인해 자신에 대한 지지자보다 더 많은 반대 유권자의 의사를 반영할 통로와 가능성이 완전 봉쇄되어 있다. 권력독점으로 인한 심각한 주권 배제인 것이다. 이렇게 낮은 주권 비율로 당선된 대통령들은 당선과 함께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오직 입법을 통한 권한 행사만 제약받을 뿐, 인사·정책·예산·감사는 물론 정당·국회·법률·교육·복지·노동·외교에 관한 국정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제왕과 같은 대권을 휘두른다.

정책결정권 하나만으로도 막강한 권력을 갖는 한국 대통령이기에, 법과 제도를 통하여 견제되지 않는다면 그는 사실 선출된 제왕에 가깝다. 따라서 이렇게 낮은 국민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들이 승자독식으로 인해 주권 초월적인 대권을 휘두르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민주공화의 원리에 위배된다. 대권은 민주공화국의 회복을 위해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대통령 탄핵이 당시 보수여당 의원 62명과 중도정당 의원 38명의 탈(脫)진영적 결단으로 가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직후, 광장과 의회의 탄핵연대를 이탈하여 즉각 진영독식으로 돌아갔다. 제2의 6·29선언이나 김대중-김종필 연합, 또는 노무현의 대연정 정신을 이어받는 통합정부 수립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를 진영대결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하리라는 기대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구호는 광장과 탄핵에서 멈추고 다시 진영과 독식으로 회귀한 것이다.

위임받은 주권을 초월한 독식은 국민 모두의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는 대선 출마 시점에 자유민주주의에 유비하여 두 번이나 강조한다. “승자독식은 절대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2021년 6월29일 대선 출마선언문 및 7월12일 대담) 촛불연대의 승리(2017년)와 0.73%포인트 차 승리(2022년)에도 불구하고 계속 승자독식을 반복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은 자유민주주의가 절대로 아닌 것이다.

한국은 민주공화와 대의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에 비추어 주권도 공화도 낙제점이다. 주권의 반영은 너무 독식하며 권한의 행사는 너무 독점한다. 따라서 민주의 원리도 공화의 원리도 계속 위축되고 있다. 가능한 한 모든, 또는 많은 국민의 위임을 통한 ‘민주 주권’의 원리와, 국민이 양도한 주권의 정도만큼만 한정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공화 정부’의 원리에 모두 위반되는 것이다.

주권 왜곡도 이런 왜곡은 없다

한국의 주권과 민의는 선거 때마다 반복해서 민주공화의 원리에 맞는 권력분립과 권한배분, 다양성과 다원성을 표출해주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출발부터 낮은 지지와 독점적 대권 사이의 불비례적 충돌과 괴리로 인해 원천적으로 심각한 갈등요소를 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의 지지에 걸맞은 정도의 권한만을 행사하거나, 나머지 반대 유권자의 민심을 연합과 연립을 통하여 연대한다면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 완화와 나라 안정, 진영을 초월한 공통의제의 공동집행과 높은 성취는 강조할 필요도 없다. 국민통합과 국정의 연속성도 크게 높아진다. 승자독식과 대권 독점을 폐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음으로 국회의원 총선을 보자. 우선 13대(1988년)부터 21대(2020년)까지 9번에 걸친 총선의 평균 사표(死票)는 49.3%에 달한다. 유효표는 단지 50.7%에 불과하다. 산 표와 죽은 표가 비슷한 것이다. 대선보다는 낮지만 우리들 주권의 절반은 행사 즉시 사표가 되는 것이다. 대선과 총선을 결합하면 모든 정부와 여당은 각각 절반 이하의 주권과 민심으로 권력과 정책을 완전 독점·독식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주권 왜곡도 이런 왜곡이 없다.

또한 제1당의 득표율과 의석률 차이는 평균 9.9%포인트였다. 최근 들어 제1당은 매번 평균 30석을 표심을 왜곡하여 초과의석으로 가져갔던 것이다. 두 번(2004, 2016년)의 총선을 빼면 대부분(1988, 1992, 1996, 2000, 2008, 2012년)은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제도 왜곡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러나 진영전쟁에 가까운 권력투쟁을 치르는 두 거대양당은 민주공화국 원리의 붕괴에는 늘 공조를 하고 있다.

21대 국회의원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에서 49.9%의 득표율로 64.43%에 달하는 163석을 차지하였다. 14.53%의 의석이나 초과 당선되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41.5%의 득표로 33.2%인 84석을 차지하였다. 지역구 득표율 차이는 8.4%포인트에 불과하나 의석수 차이는 무려 79석에 달한다. 게다가 이 두 당은 대표성과 비례성을 철저히 위반한 비례 위성정당을 통하여 각각 17석과 19석을 더 차지하였다. 21대 의회의 압도적 불균형은 제도 왜곡일 뿐 실제의 민의를 반영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쓴 채 지역구 득표율과 (위성)정당 득표율을 함께 고려하여 단순 평균 득표율을 계상하더라도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의 평균은 41.62%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체 의석수는 180석으로 60%에 달했다. 무려 18.38%, 55석을 표심을 초과하여 차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례성·대표성·민주성을 완전히 파괴한 주권 왜곡이었던 것이다.

만약 민심이 그대로 반영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였을 경우 각각 10%와 7%에 근접하였을 제3당과 제4당의 의석수는, 거대 양당 독점으로 인해 실제로는 고작 2%와 1%에 불과하였다. 주권 왜곡과 위성정당으로 인해 민심의 다원성과 다양성을 반영해야 할 다당제의 싹조차도 파괴하였던 것이다. 국제비교를 보더라도 유효 정당 수가 많을수록 민주주의지수가 높다. 주권과 선거, 민주와 공화의 본질에 비추어 당연하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유효 정당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그만큼 강고한 진영정당 체제로 전이해왔음을 의미한다. 개별 주권의 자율성과 민심의 다양성은 계속 배제되고 억압되어온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문제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의 주권을 양도받아 정부를 구성하는 두 대표 기구인 대통령과 의회는 모두 민주공화국의 원리에서 크게 일탈하고 있다. 만약에 공화국이라면 그것은 다만 진보독식, 보수독식에 따른 절반의 진보공화국이요 절반의 보수공화국일지언정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은 아닌 것이다.

죽어가는 민주공화국 정신과 원칙을 살려내야 한다. 민주와 공화, 주권과 권한 원리의 중대한 결격 요인을 근본적으로 환골탈태시키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소멸을 향하여 계속 질주할 것이다. 이 뿌리와 기둥을 바로 세우지 않고서 민주공화국을 살릴 길은 없다. 완전한 제도 왜곡으로 인해 버려지고 무시되고 죽어가는 국민의 뜻과 주권을 다시 살려내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나라를 살릴 길은 없다.

공동체 전체의 민심이 곧 주권이고 대의이며, 민주이고 공화(국)이다. 껍데기만 남은 정신과 원리를 실제 작동하는 제도와 현실로 살려내어 다시 생기를 불어넣고 힘차게 박동하게 해야 한다. 헌정제도와 현실정치의 불비례적, 반(反)민주공화적, 반(反)대의적 독식·독점·독임을 혁파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민주공화국이 소멸에서 회복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물줄기를 되돌릴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박명림 교수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제주 4·3(석사)에 이어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박사)로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래 평화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현상 연구에 천착해왔다. 정치학자로서, 역사학자로서 전쟁과 평화, 생명과 인간, 그리고 국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 <다음 국가를 말하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등이 있다.

박명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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