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 갈등현안 일단락하고 새 출발 시동…현금화 불씨 변수(종합)
국제정세 급변 속 새로운 협력방향 모색…피해자 반발·국내 부정적 여론 '주시'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김지연 기자 = 한일 양국이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첫 방일을 계기로 강제징용 문제와 수출규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 기존 갈등 현안을 빠르게 마무리 짓고 새로운 협력관계를 향해 시동을 거는 모습이다.
그러나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서는 일본이 이번 회담에서 국내 일각의 기대만큼 '추가 호응'을 내놨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의 '속도전'과 국내 여론 및 피해자 입장의 괴리가 한일관계에 계속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소미아 "완전 정상화" 선언…속전속결로 묵은 현안 풀려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서 시작돼 수출규제·지소미아까지 얽혀있던 양국의 갈등 현안은 지난 6일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로 물꼬를 튼 뒤 윤 대통령의 조기 방일이 이어지며 '일괄타결'에 가깝게 풀려나가는 모양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정상회담 직전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은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해제 및 한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취하를 발표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으로 2019년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의 대한국 수출허가 방식을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전환했다.
일본은 이를 원상복구하고, 한국도 맞대응 조치였던 WTO 제소를 취하하며 갈등을 일단락지은 것이다.
일본 수출규제에서 파생됐던 지소미아 문제도 사실상 해결됐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이 '안보상 우려'를 이유로 수출규제를 했으니 일본과 민감한 군사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며 2019년 8월 지소미아 종료를 일본에 통보했다.
이후 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켜 지소미아가 운영은 되지만 법적 지위가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져 왔다.
윤 대통령은 "조금 전 정상회담에서 지소미아 완전 정상화를 선언했다"고 공동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지소미아의 법적 불안정성까지 제거하기 위한 조처를 하겠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이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 "(피고 기업에 대한) 구상권 행사는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재확인한 것도 주목받았다. 윤석열 정부가 기존에도 밝혀온 입장이기는 하지만 정상이 직접 공개리에 언급했다는 점에서다.
"미래 함께 준비"…새 협력비전 모색할듯
묵은 현안을 푼 한일 당국은 새로운 협력 모색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번 회담에선 공동선언 등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한일이 강제징용 해법 발표 이후부터 정상회담 관련 실질적 논의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공동선언 문안까지 만드는 데는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대신 미래지향적 발전 방향을 본격적으로 논의하자는 큰 틀의 공감대를 마련했다.
윤 대통령은 "양국의 미래를 함께 준비하자는 국민적 공감대에 따라 안보, 경제, 인적·문화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논의를 더욱 가속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장기간 중단됐던 외교·국방당국 국장급 안보정책협의회, 외교차관급 전략대화 조기 재개에 합의한 만큼 양국의 소통 수준이 깊어질 전망이다. 외교당국과 국방당국이 함께하는 '2+2' 형태 협의체는 보통 외교안보 사안 전반에 대해 전략적 소통이 필요한 국가들과 운영된다.
한일관계 경색에 멈춰섰던 한중일 3국 대화 프로세스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앞으로 이어질 추가 회담에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공동선언을 내놓기 위한 준비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한일 공동선언을 좀 더 알차고 내실 있게 준비해서 다음 기회에 발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중 전략경쟁 고조, 북핵 위협 고도화, 경제안보 이슈 대두 등 달라진 국제 환경에 맞는 새 협력 비전을 담아내려면 상당한 준비 기간이 필요할 수 있다.
민간 전문가 등의 제언을 얻는 방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시다 총리가 "역사적 전환기에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실현시키는 중요성에 대해서 확인했다"고 언급했듯 자유주의 진영 아래 양국의 결속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국제 관계를 둘러싸고 한일이 비슷한 위치에 있다"며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미들파워'로서 역할 확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속에서의 양국 협력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해법 마침표는 아직…日, 위안부 합의 이행도 요구
다만 강제징용 문제가 마침표를 찍은 상황이 아니라는 점은 여전히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확정판결 피해자 일부는 정부의 '제3자 변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을 추심하겠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 '불씨'가 살아 있는 것으로, 소송 결과에 따라서는 한일관계에 또 다른 파장을 미칠 수도 있다.
일본의 호응도 중요하지만 이날 회담에서 과거사 관련 기시다 총리의 진전된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 측 호응 조치가 부족하다는 한국 내 여론이 많다'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도 "한국 정부의 조치를 2018년 대법원 판결에 의해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평가한다"고만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 창설을 발표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에도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이 참여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한국 주도 '제3자 변제'의 보완책으로 사실상 여겨지는 미래 파트너십 기금에서까지 피고 기업이 빠진다면 국내 부정적 여론이 더 강해질 수 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일관계 개선에서 나타나는 긍정적 효과들이 (국내 여론에서) 더 많게 느껴진다면 조금 더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보다 진정성 있게 설명하는 과정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이날 회담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까지 요청했다.
윤석열 정부는 전임 정부에서 사실상 합의가 형해화한 위안부 문제에 대해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비교적 원론적 입장만 밝혀왔는데 한일관계 영향 요인이 될지 주목된다.
kimhyo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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