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키를 길러낸 일본의 육성법, KBO리그도 배워야 한다 [추락한 한국야구의 현실과 과제]

남정훈 2023. 3. 1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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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고교부터 프로까지, 체질 개선 절실
韓, 강속구 유망주 투수 있어도
당장 투입 위해 제구 교정 편중
日 사사키 프로 첫 해 등판 전무
투구폼 교정 집중… 발군의 활약
고교 나무배트 ‘거포 가뭄’ 한몫
맞히기 급급… 투수 성장도 저해
“美·日처럼 알루미늄 배트 써야”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 대표팀의 3선발로 활약하고 있는 사사키 로키(22·치바 롯데 마린스)는 고교 시절부터 160km가 넘는 빠른 공을 던지며 ‘제 2의 오타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일본 야구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사키는 4개 구단의 1차 지명을 받았고, 제비뽑기 끝에 치바 롯데에 2019년 입단했다.
도쿄=연합뉴스
이듬해인 2020년, 일본 야구계 전체가 사사키의 데뷔전을 주목했지만 정작 치바 롯데는 사사키를 1군 무대는 물론 2군 공식경기에도 등판시키지 않았다. 사사키의 투구폼과 공을 놓는 릴리스 포인트가 일정하지 않아 교정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사사키의 육체가 아직 성장하고 있어 160km가 넘는 빠른 공을 견딜 수 있는 팔 근육이 완성된 이후에야 실전에 쓰겠다는 배려도 있었다. 2년차인 2021년에도 1,2군을 넘나들며 1군에선 단 63.1이닝만 던졌다.

그렇게 2년 간 160km를 넘나드는 패스트볼 속력을 줄이지 않으면서도 제구까지 단련시킨 사사키는 최고 150km에 이르는 포크볼까지, 단 2개의 구종만으로 3년차였던 지난 시즌 자신의 잠재력을 대폭발시켰다. 지난해 4월 10일엔 만 20세 5개월의 나이로 최연소 퍼펙트게임을 달성했고, 이 경기에서 세계 신기록인 13타자 연속 탈삼진과 일본 프로야구 단일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19개)까지 세웠다. 다음 등판에서도 8이닝 퍼펙트를 이어가며 17이닝 연속 퍼펙트를 이어갔지만, 경기가 0-0으로 진행되면서 사사키를 9회에 마운드에 올리지 않았다. 당장의 기록보다 사사키의 팔 건강을 더 중요시하는 코칭스태프의 배려가 돋보인 대목이다.

3년차에도 이닝 관리를 받은 사사키는 20경기에만 선발 등판해 129.1이닝 9승4패 평균자책점 2.02로 시즌을 마쳤다. 사사키가 2022년 기록한 빠른 공 평균구속 158.4km는 100이닝을 넘긴 투수 중에는 메이저리그의 헌터 그린(신시내티 레즈)의 159.3km에 이은 세계 2위의 기록이었다. 2년간의 인고 덕분에 일본 야구계는 향후 10년은 거뜬히 국제무대를 호령할 수 있는 에이스를 얻은 셈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사사키가 만약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과연 사사키 정도의 잠재력이 있는 선수를 데뷔 시즌에 실전 경기에 단 한 경기도 등판시키지 않고 교정 작업에만 몰두시킬 수 있는 구단이 있을까.

한국 고교야구에서도 사사키만큼은 아니지만, 150km를 훌쩍 넘는 빠른 공을 던지는 유망주 투수들이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는 프로 무대에서 통할만한 제구력이 없다. 대개 프로 입단 후 구속을 다소 줄이더라도 제구를 잡는 방향으로 코칭을 받는다. 어떻게든 빨리 1군 무대에서 활용 가능한 투수로 만들어진단 얘기다. 구속을 유지하면서 제구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당장 1군에서 통할 투수가 아닌 KBO리그를 초토화시키고, 국제대회에서도 슈퍼 에이스로 활약할 투수를 만들기 위해선 프로 구단들의 인내와 의지, 투자가 필요하다.

2023 WBC는 한·일 양국 투수진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음을 실감한 대회였다. 일본이 자랑하는 ‘영건’ 사사키는 최고 시속 164㎞의 패스트볼을 정교하게 제구해낸 반면, 한국 대표팀의 이의리는 0.1이닝 볼넷 3개로 자멸했다. 도쿄=연합뉴스·뉴스1
이번 2023 WBC 조기탈락의 충격파가 앞선 두 번의 본선 1라운드 탈락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일본과의 벌어진 격차를 몸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투수들 간의 벌어진 기량이 더욱 두드러졌다. 우리 투수들은 4사구 9개를 내주며 자멸한 반면 일본은 선발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이후에도 155km 이상을 던지는 투수들이 계속 등장했다. 일본 대표팀은 사사키를 체코전에 쓰고, 2년 연속 일본 프로야구 투수 5관왕을 차지한 야마모토 요시노부(오릭스 버펄로스)를 호주전에 쓸 정도로 여유가 있다. 이 격차는 한국 프로 구단들의 육성 시스템이 획기적인 체질 개선을 이뤄내지 못 할 경우 더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 야구 전문 매체 ‘풀카운트’도 “숙적 한국이 왜 약해졌는가”라고 반문하며 “이번 한일전을 통해 한국은 ‘야구 강국’이란 이미지가 사라졌다”라고 비판했다. 이 매체는 “한국은 10명의 투수를 기용했지만, 일본 타선가 겨룰 수 있던 투수는 2회까지의 김광현밖에 없었다”면서 “지난 시즌 KBO리그 평균자책점 톱10 중 한국 투수는 3명뿐으로, 구단들은 외국인 선발 투수 영입에 혈안을 올리고 있다. 자연스레 국내 투수들의 경험을 쌓을 자리는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아마추어 야구 개혁을 위한 제언도 이번 대회를 치르며 많이 제기됐다. 대표적으로 박용택 KBS 해설위원이 일본전을 마치고 “고교야구에 다시 알루미늄 배트가 재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일본 고교 야구는 여전히 알루미늄 배트를 쓰고 있지만, 한국은 세계야구스트볼연맹(WBSC)이 청소년 국제대회에서 나무 배트를 쓰게 하자 2005년부터 고교야구에서도 나무 배트를 도입했다.

반발력이 알루미늄 배트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나무 배트를 아직 성장이 다 끝나지 않은 고교생들이 사용하다 보니 거침없이 자기 스윙을 하는 대신 공을 맞히는 데만 급급하게 됐고, 그 결과 ‘젊은 거포’들이 나올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KBO리그 홈런왕은 30대 후반의 박병호(KT, 35개)였고, 홈런 10걸에도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면 20대 선수는 이정후(키움, 23개)가 유일했다. 풀카운트 역시 "과거 한국야구의 이미지는 이승엽, 김태균 등 호쾌하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타자와 투수가 힘의 대결을 벌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KBO리그에는 강타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37세의 박병호가 2022시즌 KBO리그 홈런왕에, 현역 은퇴한 이대호가 타율 4위에 차지할 정도로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부족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나무 배트 사용은 고교 투수들의 성장에도 방해가 된다. 고교 타자들에게 홈런 맞을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고교 투수들은 스트라이크존 외곽을 찌르는 정교한 제구력을 기르기보다 빠른 공을 있는 힘껏 가운데만 던져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기량을 과신해 제구력 향상이나 다양한 구종 개발을 등한시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박 위원은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해 어렸을 때부터 자기 스윙을 하는 법을 몸에 익힌 뒤, 성인이 되고 나무 배트를 사용해도 프로 무대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쿄=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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