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게임의 규칙을 다시 쓰자

한겨레 2023. 3. 1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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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초등학교 교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세상읽기]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10년 전, 다섯살 둘째 아이와 실내 스포츠센터에 갔을 때다. 인공 암벽에 여러 구기종목 경기장까지 마련된 어린이 놀이터였다. 입구에 도지볼(dodgeball) 경기장이 있었고 딸 또래 백인 사내아이가 공을 들고 친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서 있길래 아이를 들여보냈다. 부모 관람석으로 와서 앉으려는 찰나, 딸의 울음이 터졌다. 이유를 물으니 연신 숨을 들이켜며 한마디씩 뱉어냈다. “쟤가 공으로 막 때려! 자꾸 쫓아와서 공으로 때려!”

나는 ‘상대는 세상 물정 모르는 여섯살 아이다’를 상기하며 부드럽게 영어로 물었다. “네가 이 여자아이를 공으로 때렸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미안하다고 말해주지 않을래?” 그때 아이 엄마가 대답했다. “이츠 도지볼!”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고 ‘이츠 도지볼’을 반복했다. 내 안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이 웅웅거렸다. ‘나도 알아. 이츠 도지볼! 피구! 피구는 피구왕 통키지.’ 통키까지 연산작용이 일어났지만, 나의 영어는 운동장에서 공으로 상대를 때려 맞히던 그 피구를 그려내지 못했다. 나와 딸은 놀러 간 키즈카페에서 봉변당한 피해자 심정이 됐다. 지금은 웃는다. 그 사내아이 엄마도 황당했겠다, 생각하며.

우리가 세상 물정을 배우는 과정도 이렇지 않을까? 배신감에 억울해하다 시간이 지나 그땐 뭘 몰랐구나, 하는 이별의 5단계 같은 과정 말이다. 특히 학교라는 안전한 경기장으로 배우러 갔는데, 그곳의 페어플레이 정신이 피구 규칙이라는 지독한 난감함 말이다.

이태원에는 바라카 작은도서관이 있다. 아랍계 이주민이나 난민 가정 아이들을 지원하는 곳이다. 그곳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며 당혹감을 느낀 두가지 사실이 있다. 고려인, 다문화가정 이주 엄마들, 마을 활동가들에게서도 확인한 안타까움이다. 종일 일해도 살기 팍팍한 이주민 부모들은 그래도 아이는 학교에서 잘 배우겠지 생각하는데, 교사와 소통이 단절된 상태다. 활동가들은 교사들이 ‘가난의 실상’을 이해하지도 접근하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안정적인 직업에 도달한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 생애를 보냈고, 그나마 열의를 갖고 나서는 교사는 공문과 서류로 평가받는 구조 속에서 제풀에 꺾인다고 했다. 아이들은 때때로 ‘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워 학교에 와야지’ 하는 말을 듣는다. 학교에 해당 언어 보조교사와 한국어 준비반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교사와 학생 인원수가 맞지 않아 역부족인 사례가 넘치고 있다. 다문화가정의 외국인 부모들은 ‘한국 학교에서는 왜 진도를 건너뛰며 가르치죠?’라고 묻는다. 학원이 많지 않은 지방 읍 단위 학교에서도 ‘학원에서 배웠지?’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나를 더욱 당혹스럽게 한 건 ‘창의력 교육’이다. 성취감을 느껴볼 기회를 앗아가고 있었다. ‘영희가 사탕 5개를 사서 동생에게 2개를 줬다면 몇개를 갖고 있을까?’ 한국어, 한글에 약한 아이는 풀 수 없다. ‘5-2=( )’라면 3이라고 쓸 수 있는 아이도 체념하게 된다. 수학을 단답형과 서술형으로 분리하여 채점한다면 적어도 하나의 시험에서 성취한 기억을 빌려 공부할 맛을 알아나가지 않을까?

큰애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두자릿수 뺄셈을 배울 때 자원봉사 당번이 돼 교실을 찾았다. 보조교사까지 두 선생님이 가르치는데 유독 한 아이가 셈을 못했다. 일주일 뒤에 가니 그 학생 옆에 다른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교육청에서 나온 개인교사였다. 그 아이는 무난히 3학년에 올라갔다. 자폐스펙트럼 학생 담당까지, 학생 15명인 그 반에는 교사 4명이 있었다. 10년이 지난 현재는 미국도 달라졌다. 예산이 줄고 학생 수가 늘었고, 사교육도 늘었다. 그래도 내 아이들이 다니는 공립 고등학교에서는 일주일에 두번 방과후 숙제지도 시간을 연다. 교사가 있고 사범대 학생들이 봉사를 나온다. 고등학생들도 동급생 공부를 도운 시간을 의무사회봉사 시간으로 인정받고 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님을 기대하지는 말자. 대신 그의 10분의 1 정도 열정을 끌어낼 여유를 갖도록 1교실 2교사 이상의 체제를 갖추면 어떨까. 임용 적채 인원도 수천이다. 대한민국은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뤘고 초일류 불평등국가가 됐다. 1+1이다. 기울어진 풍요가 가져올 날들은 백야일까, 극야일까? 교실에 돈줄을 풀어 새판을 짜길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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