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 별궁이 학교로, 다시 박물관으로…켜켜이 쌓인 역사를 거닐다

2023. 3. 1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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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세연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서울공예박물관
종로 옛 풍문여고 5개동 리모델링
한국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으로
경성시절엔 '안동별궁' 있었던 곳
학교 특유 긴 평면구조에 낮은 천장
고아한 공예품들 집중해 보기 좋아
작품같은 창밖 한옥 풍경도 볼거리
옛 풍문여고를 개조한 서울공예박물관 본관.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의 2에는 2017년까지 풍문여고가 있었다. 오랜 시간 감고당길의 시작을 알리던 학교는 이제 강남구 자곡로로 이전했고, 지금 그 자리에는 2021년에 개관한 서울공예박물관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예 전문 공립박물관이다.

풍문여고 교사였던 5개 동을 리모델링하고 안내동과 공예별당을 포함해 총 7개의 건물로 구성된 이곳은 학교를 둘러싸던 담장의 일부를 없애고 건물과 마당을 외부에 그대로 드러냈다.

공예박물관 부지로 진입하는 방향이나 관람을 시작해야 하는 건물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아 방문객마다 각자 다양한 시작점을 가질 수 있다. 이곳에 놓여 있는 심상치 않은 인포데스크들은 공예가들의 작품이다.

전시 3동의 외벽을 장식하고 있는 도자 편들, 전시 1동 앞에 놓여 있는 원형 의자들, 안내동 상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조형물들 역시 공예작품이다. 공예품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의 눈과 손이 닿는 모든 것에서 공예를 전달하는 이런 구성은 방문객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공예에 호감을 가지게 한다.

그렇게 공예의 아름다움에 녹아드는 순간, 감상의 방향을 바꾸게 한 동행인의 말이 있었다.

“예전 학교들은 좀 으스스해. 괴담이 많은 이유가 있어.”

 학교였던 박물관이 전달하는 특별한 공예적 경험

화려한 파사드로 눈길을 끄는 어린이박물관.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학교 건물의 상당수는 1962년 의무화된 표준설계도를 기준으로 지어졌다. 그래서 서로가 다른 학교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동일한 경험과 인상을 가질 수 있다. 이런 학교는 긴 평면이 특징이다. 한쪽은 복도, 한쪽은 동일한 간격의 교실들로 구성돼 있다. 이것들이 쌓아 올려진 건물이 반복적으로 배치된다. 학교란 원래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폐쇄적인 장소 아니던가. 이런 곳이 모두에게 열린 박물관으로 바뀌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학교의 공간 구조를 많이 유지하고 있는 서울공예박물관에서 가장 으스스한 곳은 전시 3동의 계단실이다. 박물관으로 거듭나며 마감도, 조명도 새로워졌지만 199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나온 이들은 이곳이 ‘학교’라는 곳 특유의 분위기를 낸다는 걸, 어쩌면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교사였던 건물 형태 역시 그대로 유지돼 각 건물은 긴 평면을 가진다. 이것은 전시 동선에 그대로 반영된다. 편복도형인 전시 1동과 2동에서는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일정한 방향을 갖고 이동하게 한다. 이 방식은 명확한 전시 스토리와 함께 극대화된다. 낮은 높이의 천장과 다수의 전시공간은 폭이 좁고 낮은 공간이 된다. 하지만 이런 공간감은 고아한 공예품들을 아늑하게 담고 있다. 오히려 이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집중하기 좋은 장소로 만든다.

학교가 남긴 것들 중 방문객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건물의 입면이다. 외부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전시 1동과 전시 3동의 외관에는 각각의 교실에 공평하게 내어준 창에 의해 기하학적 패턴과 리듬감이 극대화돼 나타난다. 이 중 전시 1동은 외관에 현대적 물성을 더해 옛것과 새것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건물로 재탄생했고, 전시 3동은 1965년에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외벽 패널을 사용해 지어진 건물의 역사성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건물에 패턴을 만드는 크지 않은 창은 공간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시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 창을 보면 북촌 한옥의 낮은 지붕들이 만드는 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우리나라 공예의 맥을 이어오는 장소의 풍경이 박물관 안으로 들어와 공예품과 함께 인지되는 이때, 장소의 의미가 깊이 체감되며 완전한 공예적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닫혀 있던 장소에서 시민들에게 열린 장소로

풍문여고 이전에 이 장소는 왕가를 위한 공간이었다. 오랜 시간 특정인을 위한 장소였던 곳이 2021년이 돼서야 담장을 허물고 모두를 위한 장소가 된 것이다. 이 동네에서 이와 같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옛 국군기무사령부와 국군서울지구병원이 있던 자리의 담을 허물고 그곳에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새롭게 개관한 것이 지금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다. 그리고 최근, 경복궁 교차로에서부터 덕성여중까지 이어지던 높은 담이 그 높이를 낮추고 오랜 시간 감춰져 있던 땅을 시민들에게 공원으로 개방했다. 식산은행 사택, 미대사관 숙소 등으로 활용돼왔고 오랜 시간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서 굳건히 닫혀 있던 장소가 ‘열린송현’이 되어 맞은편에 있는 서울공예박물관의 열린 마당과 함께한다. 가장 폐쇄적이었던 장소가 이제는 가장 열린 장소가 된 셈이다.

서울공예박물관을 거닐다 보면 “여기가 예전에는 풍문여고였는데”로 시작하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경성 시민들에게는 안동별궁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풍문여고였을 것이고, 앞으로의 시민들에게는 서울공예박물관이 될, 시간의 레이어가 두꺼운 이 장소에서 앞으로 더 많은 개인의 역사가 만들어질 것을 기대한다.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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