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프림, 현대모비스 이끄는 터프가이
올시즌 울산 현대모비스가 잘나가는 배경에는 풍부한 선수층 등 기본 전력 자체가 안정된 것도 있겠지만 여기에 더해 아시아 쿼터제로 들어온 필리핀 가드 ‘춘삼이’ 론제이 아바리엔토스(23‧178cm)와 외국인선수 게이지 프림(23‧205cm)이 대박난 이유가 크다. 아바리엔토스는 45경기에서 평균 12.93득점, 4.71어시스트, 2.84리바운드, 1.47스틸로 단신 외국인선수급 기록을 내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올시즌 아시아쿼터제의 효과를 가장 많이 받은 팀중 하나로 평가되는 이유다.
거기에 더해 외국인선수 프림 역시 48경기에서 평균 18.73득점(3위), 2.25어시스트, 10.96리바운드(4위), 1.44스틸(4위)로 펄펄 날고 있다. 프림같은 경우 당초 저스틴 녹스(34‧203cm)에 이은 2옵션 외국인선수로 데려왔다. 하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활약상이 높아지면서 현재는 팀내 1옵션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녹스 역시 꾸준하게 팀에 공헌하고 있다. 적어도 외국인선수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팀도 부럽지않은 현대모비스다.
현대모비스는 전신 기아 시절부터 외국인선수 잘뽑기로 유명한 팀이다. 현대모비스 최초의 스타 용병은 단연 클리프 리드다. 1996년 11월 11일, UCLA체육관에서 치러진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리드는 일찌감치 최고의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으로 지목되었다.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현대모비스(당시 기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리드를 품에 안았고 이는 탁월한 선택이 됐다.
물론 결과론이지만 리드 외에도 제이슨 윌리포드, 에릭 이버츠 등 그에 못지않은 뛰어난 외국인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당시 팀에게 필요했던 것은 다재다능함도, 무시무시한 득점력도 아닌 튼실하게 포스트를 지켜주는 유형이었다. 신장은 크지 않았지만 높은 점프력을 바탕으로 파워풀한 플레이를 펼치던 리드는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 안성맞춤이었다.
개막전에서 6개의 덩크슛을 터트리며 단숨에 팬들의 주목을 받았던 리드의 골밑 플레이는 매우 위력적이었다. 탁월한 개인기로 상대 수비를 찢어버리거나 알고도 못 막는 포스트업을 구사하는 유형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도 높이 뛰어 리바운드를 잡아내고 어지간한 골밑 공격은 거미손 블록슛으로 쳐내버렸다. 많은 국내 지도자들이 외국인선수에게 바라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KCC(당시 현대)와의 챔피언 결정전 첫 맞대결은 지금까지도 명승부로 불린다. '농구 천재'로 불리던 국내 최고 스타 허재가 마지막 불꽃을 활활 불태우며 승부를 최종전까지 몰고 갔기 때문이다. 이를 인정받아 준우승팀에서 챔피언결정전 최우수 선수로 등극하는 기염까지 토해낸다.
당시 허재는 사실상 외국인선수 한 명으로 싸워야됐던 상태에서 제이 웹과 조니 맥도웰이라는 두명의 최상급 용병이 가동되던 KCC 포스트를 맹폭했다. 많은 언론의 관심이 허재가 펼치는 노장투혼에 집중된 것도 어쩌면 당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가운데 잊어서는 안되는 선수가 있으니 바로 리드였다. 리드는 웹, 맥도웰 두명과 싸우며 필사적으로 리바운드를 걷어내는 투혼을 선보였다. 리드가 골밑에서 2대1로 버티어주지 않았다면 승부는 일찌감치 갈렸을 공산도 컸다.
‘탱크' 조니 맥도웰의 전성시대가 계속되던 시절, 현대 모비스는 새로운 대항마를 야심차게 영입한다. '백인 탱크', '하얀 맥도웰' 등으로 불렸던 존 와센버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이버츠 등 센스와 슈팅을 주무기로 하던 기존 백인 용병들과 달리 통통 튀는 탄력적 움직임과 과감한 돌파를 통해 골밑을 공략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와센버그는 KBL에 오기 전 2차례나 용병 트라이아웃에서 미역국을 먹었을 정도로 각팀들에게 관심 밖 선수였다. 사이즈가 좋은 것도, 그렇다고 공격 옵션이 다양한 것도 아닌데다 농구에서는 오히려 '역차별'받는 백인 선수라는 점도 이유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엄청나게 잘 뛰어다닌다'는 공통의 평가는 꾸준히 있어왔다.
와센버그는 LG에서 ’야반도주‘사건을 일으킨 버나드 블런트와 세인트 조셉 대학 동문이다. 백인이지만 파워풀한 플레이를 펼쳤는데 NAIA 및 1997년 영국 프리미어리그 MVP까지 받은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플레이 스타일에서는 호불호가 뚜렷했다. 순간적인 스피드를 활용해 수비수를 가볍게 제치고 골밑을 파고드는 것은 물론 속공시에도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리는 등 기동성과 파워를 살린 림어택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하지만 외곽슛이 아예 없다시피 한지라 대부분의 공격 패턴이 골밑 위주였다. 정통 센터 타입이 아닌 단신 포워드라고 봤을 때 아쉬운 부분이었다. 골밑 지배력이 뛰어난 외국인 센터가 파트너로 함께 하지 않는 이상 활용도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파워풀한 골밑 플레이만큼 성격도 화끈(?)했다. 1999년 12월 5일 SK전에서 상대 외국인 선수 로데릭 하니발과 멱살잡이를 벌인 장면이 대표적이다.
대체 용병으로 잠깐 현대모비스에 몸을 담았던 마리오 루카스는 활약 기간은 짧았지만 특유의 캐릭터와 개성을 통해 지금까지도 매니아팬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주전 센터 토시로 저머니의 발목 부상으로 인해 현대모비스는 부랴부랴 대체 용병을 알아봤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들어온 선수가 루카스다.
1999~2000시즌 당시 구단별로 외국인선수의 부상이 잦았다. 떄문에 유달리 많은 대체 외국인 선수들이 KBL무대를 밟았고 그로인해 당시 현대모비스는 저머니를 대신할 외국인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어쩔 수 없이 전자랜드(당시 신세기) 대체 용병으로 뛰었던 모리스 로빈슨을 쓰게 해달라고 KBL측에 요청했지만 규정상 불가라는 답변만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구세주처럼 등장한 선수가 루카스였다. 205cm의 좋은 사이즈에 다양한 테크닉까지 겸비한 그는 이전해 8월 트라이아웃에서 상위 지명이 유력시 되었으나 발목 부상으로 도중 하차해 각팀 관계자들을 아쉽게 한바 있었다. 현대모비스는 우연한 기회에 루카스가 미국 멤피스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긴급히 연락을 취해 데려오는데 성공한다.
루카스에 대한 현대모비스의 기대는 상당히 컸다. 버넬 싱글턴의 골밑 플레이와 재키 존슨의 외곽을 동시에 갖췄다는 평가가 있었을 정도다. 1996~1997시즌 칠레리그 MVP를 비롯 인도네시아, 중국 리그 등에서 맹활약하며 실력을 검증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루카스는 기량 자체는 뛰어난 선수였다. 만약 몸상태만 좋았다면 단테 존스, 제러드 설린저처럼 대체 외국인선수 돌풍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부상이었다. 아쉽게도 현대모비스에 대체 외국인선수로 들어왔을 때의 루카스는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오른쪽 무릎은 십자인대 수술을 했고 왼쪽 무릎은 반월상 연골이 손상되어 역시 수술을 받았다. 무릎 부상도 낫지 않은데다 그로 인해 근력 자체도 다른 선수들의 절반 수준도 안 되는 것으로 드러나 경기 자체를 뛰기 힘든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카스는 예상외(?)로 상당한 골밑 지배력을 발휘했다. 잘 뛰지는 못하지만 놀랄 만한 위치 선정과 긴팔을 활용해 이른바 '앉은뱅이 리바운드'를 선보였다. 볼의 낙하 지점을 정확히 예측해 미리 자리잡고 있어 점프 없이도 곧잘 공을 낚아챘다. 지켜보던 이들의 헛웃음을 자아내게 만들 정도였다.
2000년 2월 20일 KGC(당시 SBS)전에서 19개, 22일 삼성전에서 15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양팀 최다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팀에 미안했던지 최선을 다해 플레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때문에 당시 언론에서는 그에게 '상이용병(?)'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만약 루카스의 몸상태가 멀쩡했다면 어떤 경기력을 선보였을지 새삼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이청하 기자, KBL 제공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