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새 아파트 받자”… 상가 1실이 123개로 쪼개진 노후 단지

김송이 기자 2023. 3. 1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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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단지, 상가 쪼개기 꼼수 빈번
상가 조합원도 조건 충족하면 아파트 분양권 생겨
상가 쪼개기가 성행하면서 재건축 과정서 분쟁 급증

재건축을 앞둔 단지들을 중심으로 속칭 ‘상가 쪼개기’ 꼼수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가를 쪼개는 이유는 상가 조합원도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상가 조합원 문제가 재건축 사업성을 낮추는 것은 물론 사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1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부산 해운대구 우동 ‘대우마리나 1차’ 아파트 지하 상가 1실을 사들인 한 법인은 상가를 123개로 쪼개 매도하고 있다. 부동산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전용면적 1109.59㎡ 1실로 이뤄진 상가는 지난해 10월 각 전용 9.02㎡ 총 123실로 구분등기됐다.

구분등기는 하나의 부동산이 여러 개로 구분돼 독립적으로 사용되는 경우 각 독립된 소유권을 등기해주는 것을 뜻한다. 지분등기와 함께 대표적인 ‘상가 쪼개기’ 수법이다. 상가 쪼개기를 통해 기존 53실이던 대우마리나1차 상가는 현재 175실로 들어났다. 전체 상가의 70% 이상은 전용 9.02㎡ 지하 상가다.

해당 상가 중개업자 등은 “전체 상가 175실 중 지하상가주가 123실이다. 해운대 대우마리나 전체 재건축은 지하 상가주 123명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구분상가는 차후 조합원으로서의 자격에도 문제가 없다”고 홍보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 '대우마리나 아파트' 단지 내 상가의 모습 / 독자 제공

◇쪼개기로 상가 조합원 증가… “상가가 재건축 좌우”

문제는 이처럼 쪼개진 상가가 재건축 과정에서 여러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통상 단지 내 상가 조합원은 아파트 재건축이 추진될 경우 새로 짓는 상가의 분양권을 받는다. 그러나 재건축 과정에서 상가를 짓지 않거나, 권리차액(상가 조합원 신규 분양가-종전 재산가액) 등이 조합이 정한 조건을 충족할 경우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도 있다.

전제 조건은 조합 정관에 상가 소유주가 아파트를 받을 수 있도록 명시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991년 준공된 대우 마리나 아파트 재건축 조합이 설립되기 위해선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상 전체 소유주의 75% 이상, 각 동마다 50%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상가도 각 동에 포함되기 때문에 이 단지가 재건축이 되려면, 지하 상가주들의 정관 개정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재건축 ‘캐스팅보터’가 되는 상가 조합원들이 원할 경우 산정 비율 조정도 불가피하다. ‘산정 비율’은 상가 조합원이 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지를 좌우하는 숫자로, 대개 1.0이다. 분양주택의 최소 분양가에 ‘산정 비율’을 곱한 값보다 상가 가치가 커야 상가 소유주가 새 아파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상가 소유주들은 산정 비율을 낮추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A 아파트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B씨의 권리가액은 10억원이다. A단지가 재건축을 통해 새 아파트를 탈바꿈하고, 가장 작은 면적인 59㎡의 분양가는 12억원이다. 분양가에 곱하는 산정비율이 1이면, B씨는 새 아파트 가치(12억원)보다 상가 가치(10억원)가 더 작아 분양권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조합 정관 변경을 비율을 0.1로 낮추면 새 아파트의 가치는 1억2000만원이 돼 B씨에게도 입주권이 생긴다.

부산의 한 노후 아파트 주민은 “재건축 연한이 차 재건축을 추진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데, 단지 상가에서 쪼개기가 이뤄져 벌써부터 주민들의 근심이 크다”면서 “이미 쪼개기 상가 소유주들과의 갈등으로 재건축이 지연된 사례도 많아 시작하기도 전에 겁이 난다”고 했다.

서울 시내 한 아파트 단지 내 상가 모습 / 조선DB

◇법이 못 막는 ‘상가 쪼개기’… 곳곳서 분쟁 이어져

부동산 업계에서는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상가 쪼개기 등은 투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재개발 지역에서는 원칙상 금지돼 있지만, 재건축의 경우 조합이 설립되기 전에는 이를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도정법은 투기 억제를 위해 다음 항에 해당하는 경우 시·도지사가 건축물을 분양 받을 권리를 산정하는 기준일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1필지 토지가 여러 개 필지로 분할 ▲단독 또는 다가구 주택이 다세대 주택으로 전환 등이다. 주택, 상가 등 건축물이 분할되거나 공유자 수가 증가되는 ‘쪼개기’에 대한 규정은 없는 상황이다.

이 사각지대를 파고드는 쪼개기가 성행하면서 분쟁도 많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2차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지난 2020년 신반포2차 재건축조합은 조합 정관을 통해 새 아파트에 곱할 비율을 1이 아닌 0.1로 변경했다.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조합이 상가 조합원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이후 신반포2차에선 일부 조합원들이 “상가 소유주들에게 아파트를 줘서는 안 된다”며 조합 집행부 해임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공사가 중단됐던 둔촌주공 아파트도 상가 지분 소유주를 중심으로 한 상가 갈등으로 시공사업단과의 합의가 늦어졌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상가 조합원이 늘어나면 그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고, 일반분양 물량이 줄어 일반 조합원들의 이익이 침해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재건축 활성화를 공언한 만큼 재건축 연한이 된 아파트들의 지분쪼개기를 일괄 금지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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