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씨 母 “징용배상문제, 우리 대에서 끊고 미래 세대는 편안했으면”
도쿄=이상훈 특파원 2023. 3. 1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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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수현이는 한국과 일본이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어요. 양국에 똑같이 손해라면서 가까이 지내야 한다고 했어요. 지나고 보니 그 말이 유언이었네요." 2001년 1월 26일 일본 도쿄 JR 신오쿠보역 승강장에서 선로로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전동차에 치여 숨진 고 이수현 씨(당시 27세) 어머니 신윤찬 씨(73)는 16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떠난 남편과도 얘기했지만 이건(징용 배상 문제) 우리 대(代)에서 끊어 해결이 되고 미래 세대는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신 씨는 "아들 덕분에 양국에서 많은 분을 만났는데 한일은 정말 서로 멀리할 수 없는 나라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며 "과거는 잊어서는 안 되지만, 그런 과거가 있다는 걸 기억하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과거로 인해 우리가 더 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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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수현이는 한국과 일본이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어요. 양국에 똑같이 손해라면서 가까이 지내야 한다고 했어요. 지나고 보니 그 말이 유언이었네요.”
2001년 1월 26일 일본 도쿄 JR 신오쿠보역 승강장에서 선로로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전동차에 치여 숨진 고 이수현 씨(당시 27세) 어머니 신윤찬 씨(73)는 16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국경을 넘은 이 씨의 희생정신은 지금까지도 한일 양국 우호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신 씨는 “(이번 정상회담을 보고) 아들이 (한일 관계에) 빛이 비친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일본 탄광에 끌려갔던 강제동원 피해자다. 이 때문에 신 씨는 최근 몇 년간 한일 관계가 강제 징용 배상 문제로 얼어붙은 것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세상을 떠난 남편과도 얘기했지만 이건(징용 배상 문제) 우리 대(代)에서 끊어 해결이 되고 미래 세대는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신 씨는 “아들 덕분에 양국에서 많은 분을 만났는데 한일은 정말 서로 멀리할 수 없는 나라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며 “과거는 잊어서는 안 되지만, 그런 과거가 있다는 걸 기억하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과거로 인해 우리가 더 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오쿠보역에는 이 씨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동판이 벽에 새겨져 있다. 신 씨는 3년 만인 올 1월 아들 추모식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는 “(한일 관계가 어려워) 코리아타운 가게들이 많이 힘들었을 텐데 이번에 붐비는 모습을 보고 내가 부자가 된 것처럼 기뻤다”라고 전했다.
2001년 1월 26일 일본 도쿄 JR 신오쿠보역 승강장에서 선로로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전동차에 치여 숨진 고 이수현 씨(당시 27세) 어머니 신윤찬 씨(73)는 16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국경을 넘은 이 씨의 희생정신은 지금까지도 한일 양국 우호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신 씨는 “(이번 정상회담을 보고) 아들이 (한일 관계에) 빛이 비친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일본 탄광에 끌려갔던 강제동원 피해자다. 이 때문에 신 씨는 최근 몇 년간 한일 관계가 강제 징용 배상 문제로 얼어붙은 것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세상을 떠난 남편과도 얘기했지만 이건(징용 배상 문제) 우리 대(代)에서 끊어 해결이 되고 미래 세대는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신 씨는 “아들 덕분에 양국에서 많은 분을 만났는데 한일은 정말 서로 멀리할 수 없는 나라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며 “과거는 잊어서는 안 되지만, 그런 과거가 있다는 걸 기억하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과거로 인해 우리가 더 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오쿠보역에는 이 씨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동판이 벽에 새겨져 있다. 신 씨는 3년 만인 올 1월 아들 추모식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는 “(한일 관계가 어려워) 코리아타운 가게들이 많이 힘들었을 텐데 이번에 붐비는 모습을 보고 내가 부자가 된 것처럼 기뻤다”라고 전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도쿄=김민지 특파원 mettym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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