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조 똥통에 들어가래요"…그치지 않는 경비원 갑질
지난 14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10여년간 근무해온 경비원이 "나를 죽음으로 끌고 가는 관리소장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책임져야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 9일 같은 아파트에서 근무했던 70대 청소노동자도 관리소장에게 해고 통보를 받고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경비원은 유서에서 "소장이 미화원 죽음의 책임도 져야 한다"고 썼다.
16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해 10월 경비노동자와 청소노동자 등 총 9명을 상대로 심층면접을 진행한 결과 아파트 등 공동주택 노동자들이 입주민 용역회사의 갑질에 노출돼있다고 밝혔다.
특히 경비원 등이 갑질에 노출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간접 고용 구조'와 '초단기 근로계약기간 설정'이라는 관행에 있다고 지적했다.
관리소장 갑질에도 '직장 내 괴롭힘' 적용 안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공동주택 경비원은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으로 일하고 있어 극심한 고용 불안 속에서 해고, 임금 삭감, 직장 내 괴롭힘 등 갑질에 고스란히 노출돼있을 뿐 아니라 부당한 업무 지시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가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었다.
강남 아파트 경비원이 갑질 가해자로 지목한 관리소장은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아파트 관리를 위탁받은 B업체 소속이고, 경비원은 B업체가 경비 업무를 위탁한 C경비업체 소속이었다.
사망한 경비원에 대한 관리소장의 갑질은 같은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아 경비원은 관리소장을 신고할 수조차 없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0년 12월 발행한 '공동주택 경비근로자 업무 범위 명확화의 고용영향분석'에 따르면 경비노동자(27만 명) 중 위탁관리 단지의 비율이 80%를 상회했다. 자치 관리인 경우에도 경비·미화 업무를 용역회사에 하도급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간접고용 비율은 9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됐다. 또 조사 응답자 3150명 가운데 응답자의 94%가 1년 이하 단기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부 안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입주민들 고성·모욕·간섭
#"괴롭힘의 내용은 자존심 상하게도 너 공부 잘해라. 못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고 대놓고 한다. 비하하는 발언을 한다. 듣는 사람 따라 다른데, 그 소리가 더 듣기 싫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특정되지 않고, 나이 많은 사람이 더 그런다. 40~50대의 남성·여성이고 초등학교 다닌 사람들(자녀가 있는)"(경비원 C씨)
#"아침에 8시쯤 분리수거 때문에 차가 분리수거 때문에 차가 오면은 내놓아서 실어 가게끔 준비해야 하는데 차 때문에 놓을 수 없더라고. 차를 옮겨달라고 해서 차를 다른 데 옮겨주면 좋겠다고 직접 이야기를 했거든요. 인터폰으로 안 하고, 깨웠다고 아침에 일하고 겨우 잠들려고 그러는데 깨웠다고 별 쌍욕을 다 하고 하…반장이 왔더라고, 둘이 말(하고) 나는 가만히 있고 일단은 막 (나에게) 삿대질을 하는 거야"(경비원 B씨)
직장갑질119는 경비원에 대한 괴롭힘이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입주민과의 갈등에서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직장갑질119 심층면접에 참여한 9명의 공동주택 노동자 전부가 입주민으로부터 갑질과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괴롭힘 내용은 △고성·모욕·외모 멸시하는 표현 △천한 업무라고 폄훼하는 경우 △업무상 적정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업무지시와 간섭 등이 있었다.
지난 2020년 5월 서울 강북구 우이동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가 입주민의 갑질로 사망한 이후 공동주택관리법이 개정됐지만 실효성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동주택 노동자들, 초단기계약…극심한 고용불안 시달려
#"여의도 아파트에서 젊은 입주민에게 차를 좀 빼달라고 요청했다가 경비 주제에 무슨 말을 하냐며 관리사무소에 이야기해서 그만두게 하겠다며 협박한 경우가 있었다."(경비원 A씨)
직장갑질119는 보고서에서 "(사망한 강남 아파트) 경비원은 계약 해지를 당할 수 있다는 극심한 고용불안 때문에 갑질에 대해 문제 제기조차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직장갑질119가 심층면접을 진행한 총 9명의 면접대상자 중 경비회사에 고용된 경비원 5명 모두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받았다. 청소회사와 관리회사에 고용된 미화반장과 기전실 및 관리소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는 1년 단위의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었다.
이들은 "용역회사 계약기간과 무관하게 경비노동자는 3개월짜리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1개월 단위 근로계약 체결자도 있음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공동주택 노동자의 대부분은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해 1년 미만의 단기 근로계약을 반복해서 체결한다. 입주민과의 갈등이 발생할 경우 입주민들은 단기계약 해지를 이용해 공동주택 노동자의 교체를 요구하는 경우가 잦고 근로계약이 갱신되지 않는 상황도 발생했다.
직장갑질119 면접 참여자 중 입주민들에게 교체 요구, 해고 종용을 받았다는 응답을 한 이는 4명이었으며, 실제 동료가 입주민의 민원으로 근로관계가 종료됐다고 응답한 사람도 2명이 있었다.
직장갑질119는 짧은 근로계약기간은 노동자에게 소속감이 생길 시간을 주지 않고, 입주민은 공동주택 노동자와의 유대감을 형성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①갑질금지법 도급인 적용 ②하청업체 고용승계 ③노조법 2조 개정
직장갑질119는 공동주택 노동자를 갑질로부터 보호하는 방안으로 △실효성 있는 공동주택 노동자 보호 체계 마련 △직접 서비스를 제공받는 입주민 및 입주자 대표회의에 대한 책임 강화 △직접 고용 구조로의 전환 등을 제안했다.
특히 공동주택 노동자 보호 체계 마련을 위해 △용역회사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 △입주자 대표 회의의 책임 강화(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도급인으로 확대) △갑질하는 입주민 제재 △입주민 갑질에 대한 입주자대표회의·관리사무소의 보호 체계 마련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으로는 입주민이나 원청업체 관리소장으로부터 아파트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76조의2) 적용 대상을 입주민, 원청회사 등 특수관계인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갑질119 임득균 노무사는 "3개월, 6개월 단위의 초단기 근로계약, 관리회사에 경비회사까지 있는 다단계 고용 구조, 다수의 입주민·관리사무소 등 수많은 갑들로부터 업무지시를 받는 구조에서 경비노동자들은 너무나 쉽게 갑질에 노출된다"며 "2014년, 2020년에도 갑질로 인해 경비노동자가 사망했지만 갑질은 없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임 노무사는 "갑질을 행한 입주민·관리소장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고, 3개월 초단기 계약 구조와 용역회사에 고용된 다단계 고용구조로 인한 고용 불안 때문에 갑질에도 참고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입주민·관리소장 등의 갑질 방지 및 처벌 규정을 강화하고, 고용불안을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야만 갑질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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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희영 기자 mat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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