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NO 가드의 ‘진심’…보호대 빼고 WBC 치른 에드먼

백종인 2023. 3. 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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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도쿄(일본), 손용호 기자] 4차전 중국과의 최종전을 마친 에드먼이 이강철 감독에게 90도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2023.03.13 /spjj@osen.co.kr

[OSEN=백종인 객원기자] 지난 1일 이른 아침이다. 오전 6시부터 인천공항이 북적인다. 잠시 후. 허름한 공항 패션이 등장한다. 후줄근한 후드 티, 면도도 못한 모습이다. 오랜 비행에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그가 입국장을 나오자, 인파가 몰려든다. 카메라 플래시 수십개가 터지고, 마이크가 한 무더기 앞에 놓인다. 얼떨떨한 표정이다. 어설픈 한국어 몇 문장이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저는 토미입니다.”

뜻밖의 관심에 깜짝 놀란다. “기자 몇 명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깜짝 놀랐다. 그만큼 한국 대표팀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걸 알게 됐다.”

그의 하나하나가 화제였다. 특히 첫 식사 메뉴가 그랬다. 나성범, 구창모 등과 함께 순댓국을 즐기는 장면이 SNS에 올라왔다. “어렸을 적부터 외할머니 집에서 한식을 많이 먹어봤다. 갈비, 잡채, 오이소박이를 무척 좋아한다.”

이강철 감독도 그의 합류를 무척 반겼다. “되게 적극적이다. 동료들과 한국말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훈련도 열심히 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김)하성이에게 훈련 내용을 열심히 물어보는 모습을 보니 데려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주가 지났다. 지난 13일이다. 대표팀의 마지막 일정이 끝났다. 중국전을 마친 도쿄돔 믹스트존이다. 미안함과 아쉬움이 담긴 담담한 몇 마디를 남겼다.

“좋은 경험이었다. 여러 선수들을 알게 돼 기쁘다. 한국사람들이 야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 알게 됐다. 기대만큼의 플레이를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선수들) 모두 힘들어했다. 3년 뒤에 상황이나 내 경력이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다시 한번 좋은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

[OSEN=인천공항, 조은정 기자] 한국에 도착한 날 인천공항에는 많은 팬들이 나와 에드먼의 합류를 환영했다. 2023.03.01 /cej@osen.co.kr

순댓국 러버는 이튿날 귀국(미국)했다. 한국 입국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나리타 공항 출국장을 조용히 빠져나갔다.

그의 합류에는 ‘사상 첫’이라는 의미가 붙었다. WBC를 순혈주의로 일관했던 우리 팀의 첫 외국인 선수였다. 한국인 어머니, 일본계 혼혈 아내, 골드글러버, 스탠포드 출신의 수재, 카디널스 동료 라스 눗바(일본 대표)와의 한일전. 다양한 관전 포인트를 제공했다. 특히 김하성과의 콤비는 기대가 컸다. 수비에서, 그리고 테이블 세팅에서. 역대급이라는 평가가 어울렸다.

그러나 실제는 달랐다. 공수 모두에서 탐탁치 않았다. 수비에서는 악송구(한일전)가 나왔고, 공격력도 터지지 않았다. 3경기에서 11타수 2안타, 타율 0.182에 2타점 1득점뿐이다. OPS는 0.432에 그쳤다. 호주전 도루 실패는 27번째 아웃이었다.

중요한 두 경기에서는 1번 타자로 중용됐지만, 체코 전에서는 9번으로 밀려났다. 마지막 중국과 경기에서는 아예 벤치를 지켰다. 경미한 부상 탓이라는 설명이었다. 일본 대표팀 눗바의 대활약과 대조적이었다.

대표팀 기간 내내 보호대를 하지 않고 타석에 들어선 에드먼

아쉬움이 가득한 며칠 간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그랬다. 그 역시 마찬가지다. 회한을 안고 어머니의 나라를 떠나야했다.

하지만 얘기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인상적인 모습이다. 바로 그의 타석들이다. 12번을 나오며 한결 같았다. 몸 어디에도 보호대를 차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NO 가드’ 상태다.

대부분 타자는 2~3군데에 보호대를 착용한다. 앞쪽 팔꿈치, 손등, 정강이, 발등을 공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다. 투수로부터, 또는 자기가 친 파울 타구로부터다. 검투사 헬멧까지 포함하면 가릴 곳은 점점 많아진다.

그런데 그는 무방비(?) 상태였다. 1라운드 3경기만이 아니다. 오릭스, 한신과 벌인 공식 평가전부터 그랬다. 보호 장구 없이 헬멧과 배트만 들고 타석에 들어섰다.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우리 대표팀 누구도 그런 타자는 없다. 심지어 호주나 체코, 중국 선수들도 그러지 않는다. 아마 사회인 리그에서도 그런 모습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보편적인 것을 넘어서 필수화 되다시피 했다.

도대체 왜 그럴까. 무슨 의미일까.

[OSEN=오사카, 손용호 기자] 왼쪽이 이정후의 모습이다. 검투사 헬멧에 오른손, 팔꿈치, 다리에 보호대를 차고 있다. 오른쪽은 가드 없이 타석에 들어선 에드먼이다. / spjj@osen.co.kr
소속팀 경기 때는 팔꿈치와 다리, 발등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타격한다.

예전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원로 야구인 백인천 씨의 지적이다. 그는 타자들의 지나친 보호대에 비판적이었다. 설명은 손뼉을 빠르게 두 번 치는 데서 시작된다. “아웃, 세이프는 (손뼉 두 번) ‘따닥’ 하는 차이다. 그만큼 순간적이다. 그런데 온 몸에 걸리적거리는 걸 차고 달리면, 아무래도 스피드에서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4할 타자의 말은 이어진다. “우리 때는 스파이크 바닥의 징도 갈아서 신었다. 너무 길면 땅에 깊이 박히게 되고, 그럼 달리는 데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라떼는~’이다. 요즘과는 동떨어지는 얘기다. 미세한 스피드 차이보다는 잔부상을 줄이는 게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 장비도 많이 경량화되고, 착용감이 좋아졌다. 때문에 보호대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현수 에드먼도 마찬가지다. 소속 팀에서는 보호대를 차고 타석에 들어선다. 정강이+발등, 팔꿈치에 가드를 착용한다. 정규시즌은 물론 포스트시즌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이번 대회 때는 달랐다. 잃어버리고 안 가져와서? 그럴 리는 없다. 만약 그랬다면 새로 구입하거나, 빌리면 된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내 맨 몸(?)이었다. 심지어 주자로 나가서 슬라이딩 장갑도 끼지 않았다.

그건 어떤 의도라고 믿는다. 어머니의 나라를 대표한다는, 테이블 세터라는. 무거운 책임감, 그리고 헌신이라고 믿는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그 진심만은 믿고 싶다. 그가 경기 전 국민의례에 대해 한 얘기다. “한국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는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매우 영광이고, 감격스럽다. 국가가 연주될 때 가슴에 손을 얹는 것은 특별한 감정이다. 한국팀으로 경기하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런 마음으로 가슴에 손을 얹었다.”

/ goorada@osen.co.kr

[OSEN=오사카, 손용호 기자] 지난 6일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열린 오릭스와 평가전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한국 선수단. 맨 왼쪽이 토미 현수 에드먼이다. / spj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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