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외인 앞세운 LG, 올시즌 사고칠까?
올시즌 가장 돌풍을 일으키고있는 팀으로는 단연 창원 LG 세이커스를 들 수 있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었던 안양 KGC와 서울 SK같은 경우 다소의 전력 손실을 감안하더라도 상위권후보로 꼽혔다. 울산 현대모비스 또한 두터운 선수층을 감안했을때 현재의 성적이 어색하지않다.
반면 LG는 올시즌 역시 하위권으로 꼽혔다. 겉으로 보이는 전력 자체는 나빠보이지 않지만 매시즌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낸 이유가 컸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LG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한것은 3회에 불과하다. 2013~14시즌 2위로 정점을 찍고 다음 시즌 4위에 올랐으나 이후 3시즌 연속 8~9위에 그쳤다.
2018~19시즌 3위로 부활하나 싶었지만 다시금 지난 시즌까지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팬들을 실망시켰다. 우승에 대한 구단의 의지도 강하고 전력보강도 꾸준히 하고 있던 상태였던지라 더욱 아쉬움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올시즌은 다른 모습이다. 시즌초 부터 기복없이 꾸준한 모습을 보이며 2위(승률 0.660)에 올라있는 가운데 선두 KGC를 2.5게임 차이로 바짝 뒤쫓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막판 뒤집기도 가능한 상태다.
이처럼 LG가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고있는 배경에는 ‘신임 조상현 감독의 리더십’, ‘두터운 선수층’ 등 여러 가지 이유가 거론되고있지만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이다는 외국인선수 구성에서 성공한 요인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집트 왕자’ 아셈 마레이(30‧206cm)가 올시즌 역시 튼실하게 제몫을 해주고있는 가운데 단테 커닝햄(35‧203cm)이 ‘1옵션같은 2옵션’으로 맹활약을 과시중이다. 무엇보다 둘다 코트 안팎에서 성실함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팀워크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LG는 팬들의 열기가 가장 뜨거운 팀 중 하나다. 시즌이 시작되면 체육관은 수시로 만원 관중으로 가득차기 일쑤고, 팬클럽이나 매니아 층도 잘 구축되어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팬들은 한번도 마지막에 웃어보지 못했다. 오랜 역사에 비해 단 한 차례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정상에 대한 목마름은 그 어떤 팀보다도 강렬하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두차례 챔피언 결정전(2000~01, 2013~14)에 진출했으나 모두 패배의 쓴맛을 봤으며 4강 플레이오프에서 2승 7패, 6강 플레이오프에서 4승 5패로 큰 경기에 서 유독 약한 모습을 노출했다. 전력 문제만은 아니다. 창단 초창기부터 전력 보강을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고 꾸준히 좋은 선수과 지도자들이 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중요한 순간에 끝점을 찍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데로 팀 전력에서 외국인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역대 우승팀을 보면 모두 외국인선수가 제몫을 해줬다. LG또한 빼어난 외국인선수들이 많았다. LG를 대표하던 외국인선수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동안 우승을 위해 시도했던 수차례의 자체적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수 전원이 펼치는 팀 디펜스가 중심이 됐던 극단적 수비농구에 다수의 슈터진을 앞세운 공격 농구까지 극과 극의 팀컬러를 오갔는가 하면, 대어급 선수들로 라인업을 짜서 힘과 세기를 바탕으로 한 밸런스 농구를 펼치기도 했다. 이충희 초대 감독은 강력한 압박을 바탕으로 한 수비 농구를 펼쳤다. 현역 시절 슈터로 명성을 날리던 그와 다소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당시 LG 선수층을 생각했을 때는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었다.
당시 LG는 양희승 정도를 제외하고는 검증된 토종 공격 자원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설상가상으로 양희승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풀타임을 소화하기 어려웠다. 양희승을 제외하면 이름값 있는 선수들로는 박재헌, 박규현, 박훈근 등 '박 트리오'가 있었고 그 외 김태진, 윤호영 등이 뒤를 받치고 있었다.
따라서 이충희 감독은 한발 더 뛰는 압박형 수비 농구를 주문했고, LG 선수들은 충실하게 요구에 부응해갔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깬 정규리그 2위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이러한 LG 수비 농구의 중심에는 '득점 머신' 버나드 블런트(51·188㎝)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아무리 수비를 잘한다 해도 누군가는 득점을 해줘야 경기를 이길 수 있었고, 그러한 역할을 블런트가 착실히 수행해줬다.
블런트는 득점루트가 부족했던 팀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했다. 이충희 감독은 아이솔레이션을 통해 블런트에게 몰아주는 전략을 택했는데 지역방어가 허용되지 않았던 당시 프로농구에서 1:1로 블런트를 막아낼 선수는 거의 없었다. 블런트는 신장은 크지 않았지만 운동 능력이 탁월하고 내외곽을 모두 갖추고 있던지라 어떤 상황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득점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블런트가 독불장군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득점을 몰아주는 팀 사정상 적극적으로 나섰을 뿐이지 수비가 몰린다 싶으면 빈공간의 동료들에게 볼을 빼주는 등 영리한 플레이도 곧잘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블런트에 대한 LG팬의 감정은 좋지 않다. 1999~2000시즌을 코앞에 두고 돌연 구단을 이탈해 미국으로 '야반도주'한 것을 비롯, 미국 하부리그인 IBL의 트렌튼 스타즈와 이중계약을 체결하며 소속팀에 치명타를 안겨줬기 때문이다. 어쩌면 초창기부터 LG를 대표하는 용병이 될 수 있었던 선수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사실 블런트는 드래프트 당시 KCC(당시 현대) 신선우 감독이 점찍어놓은 선수였다. 분위기 자체도 KCC로 블런트가 가는 흐름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충희 감독은 과감히 블런트를 선택했고 신 감독이 어쩔 수 없이 울며겨자먹기로 뽑은 선수가 조니 맥도웰이다. 결과론이지만 KCC와 LG의 우승전선은 이때를 기점으로 갈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비 농구에 이어 LG가 꺼내든 또 하나의 비장의 카드는 다름 아닌 공격 농구였다. 이충희 감독의 수비 농구와는 상반된 패턴으로 이 같은 전술은 여자농구와 아마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김태환 감독의 손에서 이뤄졌다. 김태환 감독은 조성원과 조우현의 '조조 쌍포'에 이정래 등 뛰어난 슈터들을 속속 영입하며 외곽위주의 막강한 화력 농구를 펼쳤다.
포지션 불문 언제 어디서든 외곽슛이 터질 수 있는 라인업이었다. 여기에는 내외곽을 불문하고 정교한 슈팅력이 일품이었던 백인용병 에릭 이버츠(48·198㎝)가 화룡점정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버츠는 흑인 용병들처럼 탄력 넘치는 플레이는 펼치지 못했으나 기본기에 착실한 안정감있는 플레이로 LG 공격 농구를 이끌었다, 외국인 선수로서는 드물게 3점슛 타이틀까지 차지한 적이 있을 정도로 당시 LG 외곽 농구와 찰떡궁합이었다.
이후에도 우승을 향한 LG의 다양한 변화는 계속해서 시도됐다. KCC 왕조를 이끈 지도자 신선우 감독을 비롯 국가대표 출신 조상현, 현주엽 영입 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공격적인 전력 보강에 심혈을 기울였다. 라이언 페리맨, 찰스 민랜드, 올루미데 오예데지 등 우승을 경험했던 외국인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LG의 외국인선수 구성이 유독 돋보였던 시절로는 2010년대 중반 데이본 제퍼슨(36‧198cm), 크리스 메시(45‧199.5cm)가 함께 뛰던 당시가 꼽힌다. 하지만 올시즌 역시 그때와 비교해 꿇리지않는다는 평가다. 외려 선수단과의 융화, 성실성 등에서 현재의 마레이, 커닝햄 조합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이들도 많다. ‘물 들어올 때 노저어라’는 말이 있다. 안팎으로 분위기가 좋은 LG가 성실한 외인들을 앞세워 올시즌 진짜로 사고를 칠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문복주 기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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