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제대회 부진? '나무 배트'는 죄가 없다
(MHN스포츠 김현희 기자) '어떻게 이렇게 똑같은 변명을 할까?'
이번에도 나무 배트 타령이다. 국제대회에서 성인 대표팀이 부진할 때마다 나오는 '고교야구 나무 배트 사용' 이슈가 또 다시 제기됐다.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참가했던 대한민국 대표팀은 결국 2승 2패로 8강행 티켓을 내주어야 했다. 8강행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 있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큰 수치였다. '체코가 4점을 먼저 주고, 경기는 승리해야 하는' 상황을 기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프로화가 진행된 아시아 야구 선진국 중에서 일본만이 유일하게 8강 본선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알루미늄 배트 사용으로 전환?
나무 배트는 죄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국제 대회에서 선수들이 부진한 것에는 고교 시절부터 나무 배트를 사용하여 배트에 맞추는 잔기술만 배웠다는 것에 원인을 찾는 이들이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왔다.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했을 때에는 반발력이 커 투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해야 했고, 그로 인하여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상당히 그럴 듯한 논리다.
실제로 나무 배트 사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8~9년만 해도 이러한 논리는 맞는 듯 했다. 특히, 2009년 대통령배 대회에서는 홈런이 딱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그나마 동산고 최지만(피츠버그)이 기록한 그라운드 홈런 뿐이었다. 외야 홈런은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다. '장타력 실종' 타령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단순한 이 상황 하나만 봐서는 곤란하다.
이후 나무 배트에 적응한 어린 선수들의 모습과 성장 과정을 함께 봐야 한다. 나무 배트에 적응하기 위해 기초 훈련 및 웨이트 트레이닝에 열심인 선수들이 등장했고, 이로 인하여 나무 배트 사용으로도 비거리가 제법 늘어 외야 홈런을 기록하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실제로 서울고 시절의 강백호(KT)를 비롯 경남고 시절의 김범석(LG) 모두 고교 시절 두 자릿 수 홈런을 기록했다. 천안북일고 시절의 변우혁(KIA)과 박찬혁(키움), 경남고 시절의 한동희(롯데)와 노시환(한화)도 마찬가지다. 나무 배트 사용으로 인하여 장타력이 실종됐다는 논리는 이제 옛날 이야기가 됐다.
타자들이 힘이 붙으면서 투수들도 덩달아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에 장타를 하용하지 않기 위해 구속 증가 및 변화구 습득에 애를 썼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 140km에 이르는 볼로는 고교 무대에서도 명함을 못 내밀 수준이 됐다. 특히, 타자들이 나무 배트 적응을 위하여 시행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투수들도 동참하면서 같이 힘이 붙는, 선 순환 구조를 지니게 됐다.
따라서 지금의 나무 배트 사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왜 알루미늄 배트에서 지금의 정책으로 변화됐는지'에 대한 프로세스를 간과한 것이다. 일례로 알루미늄 배트 사용에 대해 찬성 입장을 보였던 추신수도 "하긴 우리 때에도 나무 배트, 알루미늄 배트 간에 잘 치는 선수들은 잘 쳤다. 배트 문제가 아닌 것 같다."라며 유보적인 입장으로 선화한 바 있다.
고교 감독들도 알루미늄 배트로의 회귀에 대해서는 대부분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야구 감독은 "왜 알루미늄에서 나무로 전환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우리 감독들은 관리나 비용 차원에서 알루미늄 배트를 쓰는 것이 더 낫다. 하지만, 결국 이 친구들은 프로에서 성공해야 할 인재들이다. 고교 무대에서 알루미늄 방망이를 쓰다가 프로에서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 둔 이들도 상당히 많다."라며, 알루미늄 배트 사용으로의 회귀 의견에 일침을 놓기도 했다.
설령 알루미늄 배트 사용으로 회귀한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앞서 본인의 의견을 피력한 고교야구 감독도 "알루미늄 배트의 사용에 대한 적응 기간은 없을 것 같은가? 분명히 있다."라고 전제하면서 "타구 비거리는 늘어나겠지만, 그로 인하여 부작용도 많다."라며 되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것이라 경고했다.
특히, 반발력이 좋은 알루미늄 배트는 '진정한 거포'를 찾아내는 데 상당히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과거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했을 때와는 상황이 또 달리진 것이다. 그렇다면, 투수들 입장에서는 힘으로 타자를 제압하는 데 한계를 느껴 '변화구 위주 투구'를 선보일 가능성도 크다. 그렇다면 '구속 실종'이라는 이슈가 학생야구를 덮을 위험도 존재한다.
현 상황 속에서 학생야구 선수들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이다. 기본을 더욱 철저하게 하는 훈련 과정을 매뉴얼화하는 방법, 스스로 기본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코칭스태프 스스로가 멘토가 되어야 하는 등의 노하우가 있을 수 있다.
즉, '나무 배트'는 아무런 죄가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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