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된 서점에서 훔쳐본 미래

한겨레21 2023. 3. 1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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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책방 기행]책의 2500년 역사에서 가장 난폭한 변화를 겪고 있는 지난 30년
최근 대형 서점 체인 반스앤노블의 변화를 이끄는 제임스 돈트가 운영하는 영국 런던 매릴리본에 있는 돈트북스(Daunt Books). 유리 천창과 이층 서가가 매력적인 서점 내부. 셔터스톡

2022년 필자가 쓴 <동네책방 생존탐구>의 일본어판이 쿠온출판사에서 발행됐다. 일본 서점인이 쓴 리뷰를 읽으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일본 서점인들은 한국 책방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며 친근함을 표현했다. 유통구조와 문화는 다를지언정 국경을 넘어 모든 서점인이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했다.

2023년 초부터 챗지피티(ChatGPT)의 등장과 매출 감소 등으로 출판서점계가 술렁이고 있다. 물론 출판과 서점업은 정점을 지난 산업이다. 당장 사라질 리야 없겠지만 점진적 매출 감소는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디지털 전환기에 접어든 지금, 출판서점인이라면 과연 미래가 존재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묻고 싶어졌다. 대체 다른 나라의 책방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만국의 서점은 안녕한가.

도서정가제를 1990년 폐지한 영국, 고수한 프랑스

<동네책방 생존탐구>가 국내 책방의 오늘을 살펴본 작업이었다면, 이번에는 유럽 서점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서점을 살필 예정이다.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건 동경 때문이 아니라 유럽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서점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출판서점업은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산업이다. 책과 서점을 둘러싼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응당 역사가 깃들어 있고 그렇게 자리잡은 이유가 있다. 출판서점 시스템에 관한 제도나 규칙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거쳤고 한 나라가 택한 정치와 시민의식의 결과에 가깝다. 예컨대 영국과 프랑스는 도서정가제를 두고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영국은 도서정가제를 1990년대 말 폐지했으나 프랑스는 고수했다. 두 나라가 왜 서로 다른 선택을 했는지는 긴 역사에 뿌리를 대고 있다. 또한 이 결정은 서로 다른 양상을 지닌 서점산업을 낳았다.

출판서점업은 과거부터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 전문성을 닦은 직종이다. 심지어 중세에는 아무나 서점을 할 수 없었다. 반드시 길드(상호부조적 동업 조합) 에 소속돼야 서점을 열 수 있었으니, 도제 수업이 필수였다. 길게는 7년까지 도제로 일하며 서점인으로 훈련했다. 또 18세기 무렵까지 서적상은 인쇄와 출판 그리고 서점 운영을 겸했다. 시간이 흐르며 출판업과 서점업이 점차 분업화의 길을 걸었다.

근대적 의미에서 책의 역사는 2500여 년, 서점의 역사는 500여 년 된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이후 생겨난 15세기의 서점이나 20세기의 서점이나 기본 운영 방식에 큰 차이는 없었다. 이에 비해 지난 30여 년간 책과 서점의 역사는 난폭할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예컨대 1990년대 시작된 대형 체인 서점은 전통적 의미의 개인 서점과 전혀 달랐다. 서점 또한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움직였다. 유통이 제조를 지배하고 대규모 자본이 규격화와 대형화를 꾀하는 시장 논리가 서점업에도 자리잡았다. 창고형 매장에서 소비재를 싼값에 팔듯 가격 할인을 무기로 책도 판매됐다. 온라인서점과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 이후 책의 물성이나 형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오랫동안 경외의 대상이던 아날로그 책은 이제 존재 자체마저 위협받는다.

1990년대 5천개 서점이 2019년 2320개로

인간의 역사에는 그럼에도 생각지 않은 반동이 일어난다. 2015년쯤 시작된 국내의 동네책방 붐도 비슷하다. 유명 가수와 아나운서가 혹은 광고 카피라이터가 책방 주인이 됐다. 얼마 전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책방을 할 예정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이런 현상은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한 차례 붕괴를 겪은 미국의 독립서점들은 조직적으로 행동을 펼치며 부활했다.

1990년대 국내에는 5천 개 넘는 서점이 있었다. 2019년 2320개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였다. 2021년에는 2528개로 집계돼 20년 만에 소폭 늘었다. 서울 홍익대 앞 ‘땡스북스’나 경기도 김포 ‘꿈틀책방’ 그리고 전북 전주 ‘잘익은언어들’처럼 5~10년 차인 동네책방이 어렵사리 자리를 잡고 있다. 대체 책방이 무엇이기에 아무도 응원하지 않은 서점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을까. 혹시 여기에 서점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

앞으로의 책방이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할지 혹은 정말 살아남을지 단언할 수 없다. 미래를 안다는 건 인간의 소명이 아닐 테다. 다만 종이책이 존재하리라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다. 전자책과 오디오북 그리고 동영상 콘텐츠가 공존하는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종이책의 장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오미 배런의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는 흥미로운 사례가 나온다. 1918년 헨리 포드는 모델 T를 출시했다. 그러나 미국 모든 주에서 운전면허가 의무화되기까지 40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자동차만 있다면 운전은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운전하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례처럼, 오디오북이나 영상 콘텐츠가 존재한다고 모두가 잘 활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디지털 미디어를 가장 잘 이용할 사람은 종이책을 잘 읽을 수 있는 사람이다. 종이책 읽기는 모든 읽기와 학습의 디폴트(기본값)다.

종이책과 여타 미디어의 공존

종이책과 여타의 미디어가 공존한다면 서점 역시 필요할 테다. 다만 미래의 서점이 어떤 모습이 돼야 할지는 숙제다. 복고가 새롭게 해석한 과거이듯 서점의 미래도 과거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서점의 원형을 간직한 곳을 하나씩 찾아보기로 한다.

한미화 <동네책방 생존탐구> 저자

*한미화 출판평론가가 유럽 서점의 역사와 오늘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유럽의 서점을 돌아보며 우리 서점의 내일을 생각해본다. 3주마다 연재합니다.

유리 천창과 이층 서가가 매력적인 영국 런던 매릴본에 있는 돈트북스 서점 내부. 셔터스톡
‘서점의 도시’라 불러도 좋을 영국 에든버러의 토핑앤컴퍼니 서점 외부. @juliasbookcase
에든버러의 아름다운 서점 골든헤어북스. 서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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