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조원 손실 나도 멀쩡한 펀드 [박동휘의 생각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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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지난해 역대 최악의 수익률을 냈다.
전주에 있는 기금운용본부를 서울로 재이전하는 방안을 포함해 '운용 개혁'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니 그나마 다행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제1의 이해관계자여야 할 수익자, 다시 말해 국민들이 수익률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선 제도의 설계 도면을 뜯어고치는 일 못지 않게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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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지난해 역대 최악의 수익률을 냈다. ‘-8.22%’. 금액으로는 79조6000억원 평가손실이다. 이쯤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 이 숫자를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대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무도 관심없는 기금운용 수익률
우선 대통령실은 귀를 쫑긋했을 것이다. 연금 개혁을 임기 중 최대 과제로 꼽고 있으니 관심을 가질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전주에 있는 기금운용본부를 서울로 재이전하는 방안을 포함해 ‘운용 개혁’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니 그나마 다행이다.
교수 집단과 언론도 저마다 비판과 해법을 내놓을테지만, 시간이 지나면 포연은 곧 사그러들 것이다. 국민연금의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애초부터 그들은 투자 수익률을 높여 연금 고갈 속도를 늦추는데에 큰 관심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제1의 이해관계자여야 할 수익자, 다시 말해 국민들이 수익률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국민연금은 설계 당시부터 지금까지 원금과 고수익이 보장된 ‘복지 상품’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투자 수익률을 거뒀든 말든, 수급 시점이 되면 국가가 지급하기로 한 돈을 받도록 돼 있다. 지금도 국민연금 납부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수급 시점에 매달 얼마를 받을 수 있는 지 확인할 수 있다.
국가가 지급 보증한 복지 상품, 수익자와 기금운용 이해관계 불일치 현상 발생
전문가들은 이를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라고 부른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국민에게 노후 보장을 약속한 제도다. ‘추상적 실체’ 간의 거래여서 필연적으로 대리인의 운영에 따른 이해관계 불일치 현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의 국민연금 제도는 부분적립식이다. 기금을 적립하되 지급할 연금액의 100%를 쌓는 게 아니라, 후세대 부담을 담보로 지급할 연금액의 일부만을 적립하는 방식이다. 운용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개혁은 연금 파산을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선 제도의 설계 도면을 뜯어고치는 일 못지 않게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 내고 덜 받냐, 더 내고 더 받냐는 등의 언발에 오줌누기식 설계 변경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대리인 문제를 해소하려면 민간 금융사에 맡긴 DC형 퇴직연금처럼 완전적립식으로 제도 근간을 바꾸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도 나온다. 재정학 전공자인 박종상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약 250조원 정도로 추산되는 미적립 부채를 장기 국채 발행으로 해소해 60세 전후의 수급자에겐 약속된 연금액을 지급하고, 이후 세대에 대해선 완전적립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세계 1등 펀드, K금융 선진화 기회로 삼아야
‘낸 만큼 받는’ 방식으로 설계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면 이해관계의 불일치 문제도 단번에 해소될 수 있다. 수익률이 수령액을 좌우하므로 기금운용본부가 정치에 좌우되는 일을 국민이 용납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복지가 아닌 원금보장형 저축으로 바꾸는 이 같은 코페르니스쿠스적 전환엔 필연적으로 반발이 따를 것이다. 주무 부처 타이틀을 떼야 할 복지부의 반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개혁은 말 그대로 완전히 새롭게 뜯어고치는 일이다. 개선과는 다르다. 게다가 기금운용 개혁은 K금융 선진화와도 직결된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선진국 연금 제도 중 가장 젊다. 작년 말 890조원 규모에서 꾸준히 적립금 규모가 늘어나 2040년이면 1755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규모면에선 10년 안에 세계 1위 연금 펀드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고갈에 대한 우려만 할 것이 아니라, 세계 1등의 지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 지에 대해서도 치열한 논의가 필요하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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