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82)하늘 댛일쪽을 잡고

김종길 기자 2023. 3.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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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음(契) 이야기다. 옛사람들은 나뭇조각이나 두꺼운 종이에 무늬 또는 글씨를 쓰고 도장(證印)을 찍은 뒤 둘로 쪼개서 나누어 가졌다. 잘 두었다가 뒷날에 맞추어 약속의 증거로 삼았다. 나무나 종이에 쓴 무늬․글이 약속 어음(契)이요, 그 반은 믿음의 ‘맞쪽’(符信)이다.

둘로 쪼갰을 때 모난 쪽이 ‘어음 수쪽’(右契)이요, 오목한 쪽이 ‘어음 암쪽’(左溪)이다. 빚진 이가 ‘암쪽’을 갖고 빌려준 이가 ‘수쪽’을 갖는다. 뜬금없이 노자 늙은이는 79월에 이런 말을 한다.

다스리는 이는 어음의 암쪽을 잡고 사람을 나무라지 않는다.

속알 있는 이는 어음을 맡고 속알 없는 이는 사무침을 맡는다.

왜 어음에 빗대어 말했을까? 빗댄 말은 뒤에 오는 ‘참말’(眞言)을 꾸미는 것이니 빗댄 말에서 참을 찾으려 들면 안 된다. 다만, 빗댄 말은 늙은이가 참말의 그물코로 풀어 놓은 아주 빼어난 꿍꿍이니 잘 살펴야 한다. 그 빗댄 말에 참으로 가는 길이 있으니까.

늙은이는 6월에 이런 말을 했다.

골검(谷神)은 감한 암(玄牝)이요, 감한 암의 입이다. 아래아를 넣은 ‘한’은 가없고 끝없다는 뜻의 아득함이다. 가마득하고 까마득하다는 뜻. 그 입을 일러 하늘땅의 뿌리란다. 다석 류영모는 감한 암의 ‘암’과 어음 암쪽의 ‘암’을 ‘’으로 풀었다. 암에 끝소리 ‘ㅎ’을 붙였다. 늘 하시는 하느님의 숨 하나가 붙은 것.

늙은이는 또 61월에 이런 말을 했다.

풀면서 말했듯이, 큰 땅을 가졌다고 큰 사람의 큰 나라, 그이(君子)의 큰 나라는 아니다. 아사달을 하늘 사람이 연 땅이라 했듯이, 큰 나라는 크고 큰 집집 한늘(宇宙)이 내려 열어야 제대로다.

하늘 어음의 암쪽은 주고 나누고 베풀어도 그대로다. 나무라지 않고 남으라 하지 않는 까닭이다. 하늘 어음의 암쪽을 들임 받으면 아낌과 사랑이 가득하다.

하늘에 속한 큰 나라는 아래 흐름이요, 세상의 사타구니며, 세상의 암(牝)이지 않은가. 죽지 않는 골검(谷神)이 늘 가만가만 조용조용 있어서 수(牡)를 이기는 것이다. 늙은이 6월과 같은 뜻의 암이다. 두 글월에 나오는 ‘암’은 암컷을 뜻하는 빈(牝)이요, 골을 뜻하는 곡(谷)이다. 그런데 79월의 암은 ‘어음 암쪽’(左契)의 ‘암’(左)이다. 왜 암이 왼쪽일까?

어음을 쪼개면 반드시 볼록 솟은 모난 쪽(凸)과 오목하게 쑥 들어간 쪽(凹)이 생긴다. 빌려준 이가 오른쪽 즉 ‘수쪽’(右契)을 가지고, 빚진 이는 왼쪽 즉 ‘암쪽’(左契)을 가지는 오래된 약속에서 비롯한다. 그렇다면 ‘어음 암쪽’의 ‘암’도 감한 ‘암’일까?

옛글에 이런 말이 있다.

“왼쪽오른쪽은 자리를 반듯하게 함이요(左右定位), 왼쪽은 오른쪽의 짝이며(左, 右之對), 사람 길은 오른쪽이고(人道尙右) 오른쪽은 높인다(以右爲尊).” <중운(增韻)> 중

“길을 갈 때 사내는 오른쪽으로 가고(男子由右), 아내는 왼쪽으로 간다(婦人由左).” <예왕제(禮王制)> 중

“윗사람은 오른쪽에 자리 잡고 아랫사람은 왼쪽에 자리 잡는다.” ‘왼쪽을 돌아본다.’는 ‘좌고’(左顧)에서 비롯한 말.

위 옛글을 바꾸어 말하면, 사람 길이 오른쪽이니 그이(君子)의 길은 왼쪽이고 왼쪽을 높인다. 늙은이 31월에 “그이 앉는 자리에는 왼쪽을 높이고 … 좋은 일엔 왼쪽을 세고 … 곁장군이 왼쪽에 가고”로 말했다. 그곳은 어미(엄, 암)가 가는 길이다. 그리고 아랫사람이 자리 잡은 터다. 그러니 ‘암쪽’(左契)의 ‘암’도 골검이요, 감한 암이요, 세상의 암이리라.

암은 아래 흐름요, 골검이요, 어미요, 그이의 길이다.

흥미롭게도 ‘어음 암쪽’ 가진 이를 ‘빚쟁이’라 하는데, 그 뜻은 “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면서 또 “빚을 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서로가 다 빚쟁이다. 채권자가 채무자요, 채무자가 채권자인 셈이다. ‘암’ 하나에 큰 뜻이 들어있다. 그러니 더 궁금하다.

도대체 어음을 빗댄 까닭은 무엇일까? 늙은이가 빚쟁이로 어음 암쪽을 빗댄 데에는 큰 까닭이 숨어 있을 터! 꿍꿍을 피워 올려 보자.

옛조선(古朝鮮)을 세운 환웅(桓雄)은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가지고 왔다. 등걸 임금인 단군(檀君)은 하늘땅사람의 올 다스림을 위해 <천부경(天符經)>을 남겼다. 다석 류영모는 <다석일지>에 ‘천부경’을 풀어 놓았다. 1963년 12월 21일에 처음 풀었고, 1968년 10월 30일에 마쳤다. 6년 동안 여섯 번 풀었다. ‘천부경’(天符經)의 우리말 뜻은 이렇다.

천부경의 ‘부’(符)는 앞서 살폈던 어음(契)이요, 믿음의 맞쪽(符信)이다. 다석이 ‘천부경’의 ‘부’를 ‘어음찍’이라고 바꾼 이유다. 그러므로 ‘천부경’도 ‘어음 암쪽’(左契)이리라. 사람과의 약속이 아닌, 하늘과의 약속으로서. 다석이 ‘어음찍’을 하늘에 ‘댛일쪽’이라고 달리 푼 이유다. 하늘이 온씨알에게 내려 준 말씀의 실줄이요, 약속의 증거요, 믿음의 맞쪽이니까 말이다. 그걸 꼭 잡고 올라야 하리라.

한글로 바꾼 79월을 보자.

사슴뿔과 깨달이가 말을 잇는다. 둘은 서술에 올라 숨을 터 솟을 때마다 하늘 어음의 암쪽을 잡았다. 흙낟알 님자로 하늘을 모시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천제단(天祭壇)에서, 세상 임금으로 온갖 그늘진 자리에 들어가 참올(眞理)의 말씀을 내는 길 위에서, 하늘 어음의 암쪽을 잡고 사람들에게 나누었다. 하늘 어음의 암쪽은 주고 나누고 베풀어도 그대로다. 나무라지 않고 남으라 하지 않는 까닭이다. 하늘 어음의 암쪽을 들임 받으면 아낌과 사랑이 가득하다. 잡은 이는 알음알이 없이도 늘 착한사람과 더불어 나눈다. 함께 가는 길이다.

깨달이 : 사람 사이에는 큰 원망이 있어 그것을 풀어도 반드시 남은 원망이 있기 마련이야. 남은 원망조차 없게 하려면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 다스리는 이는 어음의 암쪽을 잡고 사람을 나무라지 않음으로써 다 풀어버리지.

사슴뿔 : 어음의 암쪽을 잡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깨달이 : 어음이 나오니 세상 사람들은 모두 빚쟁이 다툼을 말하는 줄 알아. 아니지. 이 글월 끝에 ‘하늘 길’이 나와. 노자 늙은이는 하늘 길에 더불어 짝이 되는 어음을 말하고 있어. 하늘에 맞춘 어음 암쪽(左契)은 신령한 감한 암이요, 집집 우주 어머니요, 하늘땅이 하나로 맞붙는 둥긂이거든. 그것은 아래 흐름이요, 세상의 사타구니며, 세상의 암이지. 그걸 잡았으니 사람을 나무랄 일이 없어. 저절로 흐르니 남은 원망 따위도 다 풀어져 버려.

사슴뿔 : 옳거니! 그래서 속알 있는 이는 어음을 맡고, 속알 없는 이는 사무침을 맡는다고 하는구나!

깨달이 : 그래. 속알 있는 이는 하늘에 댛일 쪽인 어음을 맡는 거야. 속알 없는 이는 맞쪽이 없어 하늘땅을 잃었으니 사무칠 수밖에.

사슴뿔 : 하늘 길은 알음알이 없이 늘 착한사람과 더불음이여.

깨달이 : 하늘 길을 더불어 가는 어음은 쪼개진 바 없지. 아름아리요, 알음알이야. 한 아름의 동아리잖아. 암쪽은 사실 둘이 아니거든. 하늘땅은 늘 하나로 돌아가는 짝이잖아. 알음알이 없이 그 하나를 품은 이가 늘 착한 사람이야.

사슴뿔 : 빗댄 말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걸 이제야 알겠네. 그럼 79월을 새겨볼까!


☞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81)흙낟알 님자
     https://www.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303090700001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배,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
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 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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