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 당한다! ‘미스터 기본기’ 팀 던컨

김종수 2023. 3. 16.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트윈 타워, 강팀 도약의 유리한 조건④

 

‘해군 제독’ 데이비드 로빈슨(57‧216cm)과 '빅 펀더멘털' 팀 던컨(46‧211cm)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빈슨이 이끌던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꾸준하게 플레이오프에 참가하던 단골이었다. 반면 던컨은 대학 시절부터 ‘예약된 1순위’로 불렸던 선수다. 보통 1순위 지명권이 최하위권팀에게 돌아가는 것을 감안했을 때 던컨의 샌안토니오 행을 예상한 이들은 많지않았다.


특히 명가 재건을 꿈꾸고있던 보스턴 셀틱스는 던컨 영입에 사활을 걸고있었다. 탱킹을 통해 동부 최하위 성적을 만들어냈고(?), 거기에 더해 댈러스 매버릭스의 지명권도 트레이드로 가져온 상태인지라 1픽을 뽑을 확률을 무려 35% 수준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워낙 확률 자체가 높았던지라 당시 언론에서도 던컨의 보스턴 행을 유력하게 점치고 있던 분위기였다.


만약 바램대로 던컨을 데려갔다면 빌 러셀, 래리 버드의 시대에 이어 새로운 보스턴의 황금기가 찾아왔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농구의 매력은 ‘각본대로 되지않는다’는 사실이다. 확률 자체는 보스턴이 높았지만 던컨을 품에 안은 것은 샌안토니오였다.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거두고있던 샌안토니오는 직전 시즌 로빈슨이 6경기만에 무릎부상으로 시즌아웃되는 악재를 당한다.


팀의 기둥이 빠지자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스퍼스 시스템은 멈춰버렸고 결국 20승 62패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자존심을 구기고 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십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가 되었다. 딱 한시즌 부진한 성적을 기록한 덕분에 드래프트에서 3번째로 높은 확률을 가져갈 수 있었고 이는 전체 1순위 지명권으로 연결되고 만다. 뜻밖의 대운을 안아든 샌안토니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던컨을 지명한다.


샌안토니오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전까지의 샌안토니오는 디비전 우승은 제법 많이 했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하던 아픔을 곱씹고 있던 팀이었다. 파이널 우승은 커녕 컨퍼런스 우승조차 기록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익히 잘 알려진데로 던컨의 합류 이후 디비전 우승 12회, 컨퍼런스 우승 6회를 추가했고 무엇보다 5번이나 파이널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발돋움하기에 이른다.


로빈슨이 그랬듯 던컨과 샌안토니오의 만남 역시 서로에게 완벽한 윈윈으로 평가된다. 비록 샌안토니오가 빅마켓, 전국구 인기팀은 아니었지만 이는 던컨에게 별 문제가 되지않았다. 던컨 역시 로빈슨이 그랬듯 끼가 많거나 관심받는 것을 즐기는 유형의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미없을 정도로 농구에만 전념하고 집과 체육관만 오가는 캐릭터임을 감안했을 때 팀과의 궁합은 무척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샌안토니오에 지명된 것은 던컨 입장에서 이래저래 행운이었다. 보통 전체 1순위급 대어를 가져가는 팀은 약체이거나 리빌딩 과정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샌안토니오는 로빈슨의 부상으로 딱 한시즌만 못했을 뿐 이미 전력이 완성되어있던 팀이었던지라 던컨의 가세는 그야말로 화룡점정 그 자체였다. 샌안토니오는 단숨에 우승권 팀으로 격상했고 던컨 또한 강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타가키 케이스케 원작의 인기격투만화 ‘파이터 바키’를 보면 기술의 숙련도에 대한 유명한 장면이 하나 있다. 핵심 등장인물 중 '무신(武神)' 오로치 돗포는 어느 날 최강의 격투 괴물인 '투귀(鬪鬼)' 한마 유지로와 생사를 건 대결을 펼친다. 계속해서 유지로에게 밀리던 돗포는 어떤 특정한 기술을 통해 승부의 흐름을 반전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 기술은 다름 아닌 평범한 정권 지르기였다. 가라데를 베이스로 하는 돗포 입장에서는 복서의 잽만큼이나 단순하기 그지 없는 기술이었는데 그렇기에 더욱 무서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1000번씩 수십 년간 갈고 닦은 정권 지르기이기에 그 어떤 화려한 기술보다도 깊이와 무게감이 있었다. 이를 입증하듯 온갖 다양한 기술에도 꿈쩍도 안했던 유지로는 돗포의 정권지르기를 상당히 어려워하며 고전한다. 기술이 문제가 아닌 쓰는 사람이 얼마나 능숙하냐에 따라 위력이 달라진다는 것을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

 

 


농구 선수로서의 던컨이 딱 그랬다. ‘미스터 기본기’라는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플레이 자체를 보면 특별할 것도 없고 화려함과도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 단순한 움직임에 무수히 많은 선수들이 알고도 당하기 일쑤였다. 앞서 예를 든 만화속 돗포의 정권지르기처럼 기술 자체는 평범하기 그지없었으나 던컨이 쓰게되면 어지간한 필살기 이상의 위력이 발휘됐다고 볼 수 있다.


높은 완성도와 상위급 피지컬에 더해 유연성, 순발력 등이 더해져 효과가 극대화됐다. 농구의 기본공식과도 같겠지만 던컨 또한 상대가 자신보다 작으면 포스트업으로 밀어붙여서 골밑슛을 노리고 발이 느리거나 큰 선수와 붙게될 경우 페이스업으로 공략한다. 그가운데 빛을 발하는 공격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미드레인지였다.


직접 클린슛으로 들어갈 때도 있지만 뱅크슛으로 던질때 특히 정확도가 높아졌는데 각이 잘 안나올듯 싶은 상황에서도 높은 성공률을 자랑했다. 3점슛 라인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던컨이 공을 잡게되면 수비수들은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준수한 기동력에 힘까지 좋은 던컨이 어떤 공격을 시도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비수의 유형에 따라 페이스업, 포스트업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던지라 가벼운 움직임만 보여줘도 빈틈이 만들어지며 바로 슛공간이 생겼다. 그러한 과정에서 백보드를 맞고 들어가는 자로 잰듯한 뱅크슛은 아주 위력적이었다. 특히 45도 각도에서의 정확성은 ‘쏘면 들어간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카림 압둘자바의 스카이 훅슛, 마이클 조던의 페이드 어웨이 슛, 덕 노비츠키의 학다리 페이드 어웨이 슛, 스테판 커리의 로고샷 등은 화려함과 희소성 등에서 능히 최상급 필살기라 불릴만하다.


당하는 상대 입장에서는 ‘무슨 저런 기술이 다있을까?’라며 경악스러운 느낌이 들 수 있다. 반면 던컨의 뱅크슛은 특별할 것이 없어보였다. 농구선수라면 누구나 어렵지않게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당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깊은 내상을 입기도 했다. 막을 수 있을 듯 싶은데 당하고, 다시 해봐도 또 당했기 때문이다.


골밑슛 역시 마찬가지다. 던컨은 화려함보다는 철저히 실속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포스트인근에서 찬스가 났다싶으면 점프도 많이 뛰지않고 긴팔을 뻗어서 백보드를 가볍게 툭 맞추며 쉽게 슛을 넣었다. 그야말로 기본적인 골밑슛인데 워낙 간결한 동작으로 반박자 빠르게 들어갔던지라 수비수가 블록슛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블록슛에 능한 선수들도 움찔하며 허무하게 득점을 내주기 일쑤다.


그나마 화려하다고 표현할만한 플레이로는 '스핀 무브(spin move)' 정도가 있다. 스핀 무브는 축 발을 기준으로 회전하는 동작을 말하는데 던컨은 그야말로 엄청난 숙련도를 자랑했다. 포스트 인근에서 힘좋은 던컨이 포스트업을 시도하면 상대는 밀리지 않으려고 온힘을 다해 버티어 냈다.


그런 상황에서 한두번 몸을 ‘퉁퉁’ 부딪히면서 상대 무게 중심을 파악하고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서 쉽게 수비를 제쳐버리고 득점을 올렸다. 좋은 신체조건과 더불어 안정적인 볼 핸들링 능력 및 움직임을 읽어내는 감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물론 가장 큰 무기는 공격도 공격이었지만 탄탄한 수비와 동료들을 살려주는 스크린 세팅이었다. 던컨의 플레이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팀 전체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기복없는 기둥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

#사진_아디다스 코리아 제공, AP/연합뉴스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