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심취' KBO의 뜬구름…"태어나 처음 보는 공" 창피하지도 않나

김민경 기자 2023. 3. 16.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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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구연 KBO 총재 ⓒ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도쿄(일본), 김민경 기자] "일본 투수들 공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공이었다."

한국 최고 타자이자 지난해 KBO리그 MVP 이정후(25, 키움 히어로즈)의 솔직한 후기다. 이정후는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나선 한국 대표팀 선수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세계의 주목을 받는 선수였다. 지난해 타격 5관왕(타율, 안타, 타점, 출루율, 장타율)과 MVP라는 타이틀이 눈에 띄기도 했으나 올 시즌 뒤 미국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더 눈길을 끌었다.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쇼케이스는 완벽했다. 조별리그 4경기에서 타율 0.429(14타수 6안타), OPS 1.071, 2볼넷, 5타점을 기록했다. 이정후는 일본 투수들의 공이 낯설고 까다로웠다고 했으나 공략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이정후는 지난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 조별리그 B조 일본과 경기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한 유일한 한국 타자였다.

이정후는 이번 대표팀에서 국제대회 경험이 많은 편에 속했다. 대회 전까지 2017년 APBC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12, 2020 도쿄올림픽까지 4차례 태극마크를 달고 24경기를 뛰었다. 야수 가운데는 베테랑 김현수(LG, 59경기) 양의지(두산, 31경기) 박병호(kt, 27경기) 다음으로 국제대회 출전 수가 많았다.

그런 이정후도 이번 대회에 나선 일본 투수들의 공을 타석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KBO)리그에서는 본 적이 없는 공"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KBO는 이정후의 이 발언을 뼈아프게 받아들이면서도 창피하게 생각해야 한다.

한국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WBC 준우승이라는 영광에 꽤 오랜 기간 취해 있는 사이 일본 야구는 꾸준히 국제대회에서 우승 또는 그에 준하는 성적을 내며 성장해 있었다. 이제 일본은 한국이 '한일전'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투지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자존심 상해도 똑바로 마주해야 할 현실이다.

이정후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한국에도 좋은 투수들이 많지만 (일본 투수들은) 볼끝, 공의 힘이 달랐고 코너코너 들어오는 제구력이 정말 좋더라.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KBO가 적어도 10년 전에는 내놓아야 했던 해법까지 제시했다. 한국이 2013년 WBC에서 처음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겪었던 그때 말이다.

▲ 이정후 ⓒ 연합뉴스

이정후는 "우리나라는 국제대회 있으면 그때만 대표팀을 소집하는데 일본은 매년 소집한다고 들었다. KBO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 모르지만 친선경기를 통해 경험을 쌓으면 좋겠다. 어린 투수들이 큰 무대가 처음이라 긴장한 것 같은데 미리 경험시켜주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KBO는 지난해 3월 허구연 총재 선임 이후 줄곧 메이저리그 연계 사업에 심취해 있었다. 딱히 어떤 성과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열릴 예정이었던 'MLB 월드투어: 코리아 시리즈'가 첫 업적이 되나 했는데,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취소 통보로 무산됐다. 그리고 지금은 2024년 KBO 개막전을 미국 메이저리그 구장에서 개최하는 안건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에서 KBO리그 개막전을 치르면 국제 경쟁력이 올라가는 것일까. KBO가 단순히 미국은 곧 우물 밖이라는 생각부터 버리지 않으면, 한국은 3년 뒤에 또 열릴 WBC에서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선수들은 "3회 연속(2013, 2017, 2023년) 1라운드 탈락은 변명할 수 없는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KBO는 단순히 메이저리그를 좇을 게 아니라 KBO리그 자체 수준과 국제대회 경쟁력을 키울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허 총재는 취임식에서 "우리 야구계가 베이징 대회 이후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현실을 직시하지 못해 생긴 결과다. 우리가 어느 정도 와 있는지 선수들이 몸으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일전은 어떤 형태든 교류전을 갖고, A매치를 열어 국민께 다가가야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선수들만 계속 세계와 격차를 몸으로 느끼고 있을 뿐,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한 KBO의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더는 국제대회에서 선수들이 세계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지 않을 방법을 찾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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