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은이, 덤덤했는데…” 한채진이 또 눈물을 쏟았던 이유

최창환 2023. 3. 1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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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창환 기자] 길었던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한채진(39, 174cm)은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홈 팬들 앞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 모습을 보며 유독 많은 눈물을 쏟은 동료가 있었다. 한채진에겐 실과 바늘 같았던 그 이름, 이경은이었다. 한채진은 “그래서 나도 더 울었다”라며 마지막 순간을 돌아봤다.

한채진이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신한은행 SOL 2022~2023 여자프로농구를 끝으로 FA 자격을 취득하지만, 그는 일찌감치 구단에 은퇴 의사를 밝혔다. 이에 인천 신한은행은 13일 아산 우리은행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이 끝난 후 한채진이 공식적으로 팬들에게 은퇴 인사를 전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은퇴식은 2023~2024시즌 홈 개막전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한채진은 ‘철의 여인’이라 불렸다. 정규리그, 플레이오프에서 각각 최고령 출전 기록을 새로 썼다. 한국 나이로 마흔이지만, 우리은행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 선발 출전하는 등 현역 마지막 경기까지 경쟁력을 보여줬다.

구나단 신한은행 감독은 시즌 초반 “다음 시즌에도 뛰어준다면 고마운 거고, 은퇴한다 해도 잡을 수 없다. (한)채진이는 팀을 위해 헌신해왔기 때문에 의사를 존중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현역 연장 여부는 오로지 한채진에 달렸다는 의미였다.

고민을 거듭하던 한채진이 결심을 굳힌 건 시즌 중반이었다. 스스로에게도 끝없이 질문한 끝에 은퇴를 결정했다. “경기가 거듭될수록 그만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됐다”라며 은퇴 과정을 돌아본 한채진은 은퇴 선언 후 동료들과 있었던 비화에 대해서도 전했다.

은퇴는 언제 결심했나?
못 믿겠지만 매 시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였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더 강해졌는데 진짜 결심한 건 올 시즌 중반이었다. 신랑은 시즌 시작할 때부터 올 시즌까지만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그땐 ‘그만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경기가 거듭될수록 마음을 굳히게 됐다.

마음만 먹으면 한 시즌 더 뛰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는데?
행복하게 농구를 할 시기는 지난 것 같았다. 그동안 정말 힘들어도 농구가 하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버텨왔다. 처음 FA 자격(2008년)을 얻고 금호생명으로 갈 때도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 알다시피 금호생명에서 받은 연봉은 적었다. 그렇지만 의지가 넘쳤고, 뛰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다. 신한은행으로 다시 돌아온 이후에도 (김)단비와 함께 해서 농구를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올 시즌은 ‘그만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도 막상 경기장에 가면 지기 싫다는 승부욕이 다시 생겼지만, 많이 힘들었고 지친 것도 사실이었다.

은퇴는 일찌감치 결정했지만, 공식적으로 발표하진 않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보통 은퇴는 시즌 끝난 후 FA 협상 기간에 발표한다. 나도 그때 얘기하려고 했다. FA 협상할 때가 되면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시작하기 전 감독님께 말씀드리면서 다시 마음을 굳혔고, 구단에서도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줬다.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기 전까진 긴가민가하는 후배들도 있었다. 후배들이 이름을 외쳐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통산 최다 경기가 눈앞이었는데?
기록만 세우고 은퇴하라는 얘기도 있었다(웃음). 구단에서 다음 시즌에 기록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훈련도 안 하고 경기만 나가서 기록을 세우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아쉽지만 누구보다 행복하게 은퇴했다고 생각한다. 분란이 있어서 은퇴한 것도 아니고 구단에서 박수도 쳐줬다. 선수들도, 팬들도 더 할 수 있는데 아쉽다고 말씀해주셨다. 생일에 은퇴해서 잊지 못할 것 같다. 최다 경기 기록은 못 세웠지만, 감사하게도 신한은행에서 이룰 수 있는 건 모두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 한채진은 정규리그에서 597경기를 소화해 임영희(전 우리은행, 600경기)에 이어 통산 최다 경기 2위에 오르며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어떤 감정이 들었나?
플레이오프 1차전까지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졌으니 다음 경기는 열심히 해서 이기자는 생각뿐이었고, 4쿼터 시작할 때까지도 괜찮았다. 그런데 4쿼터 중반부터 계속 벤치에 있었고, 마지막 작전타임 이후에도 투입되지 않았다. ‘이제 마무리됐구나’ 싶었는데 (강)계리가 “들어가서 마무리해야죠”라고 했고, 감독님도 투입해주셨다. 사실 그때부터 울고 있었다. (우리은행 선수들도 계속 득점 기회를 만들어줬는데?)슛이 들어갔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울어서 손발 다 떨리고 있었다. 위성우 감독님도 고생했다고 하셨는데 정신이 없어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더 기억나진 않는다. 이후 문자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경기 종료 부저가 울린 직후부터 이경은이 많이 울던데?
그래서 나도 더 울었다. 미리 은퇴 얘기했을 때 (이)경은이는 덤덤했다. 은퇴하는 날 아침까지도 “이제 그만해야지”라고 농담하던 선수다. 경은이가 갑자기 우니 나도 더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단비가 울컥하고 있는 모습도 보이고…. (박)혜진이, (김)정은이, (고)아라 등 우리은행에는 비슷한 나이의 선수가 많다. 함께한 시간이 많았던 선수들이 고생했다고 말해주니 짠했다. ‘내가 꾸준히 잘 달려왔구나’ 싶었다. 경은이 혼자 남겨두고 떠나는 게 조금 그렇지만…. 뭐, 그래도 잘하지 않겠나(웃음).

※ 한채진은 단일리그가 도입된 2007~2008시즌부터 2022~2023시즌까지 16시즌 가운데 14시즌을 이경은과 함께 했다. 한채진, 이경은 등 KDB생명 주전 5명은 ‘독수리 5자매’라 불리기도 했다.

납회식에서는 김소니아가 대성통곡을 하더라.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내가 다시 주장이 된 후 (김)소니아에게 많은 얘기를 해줬다. “이 팀에 왔으니까 이런 것도 배워야 해”, “이런 부분은 네가 얘기해야지”, “다음부터 언니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등등…. 그런 얘기할 때마다 알려주지 말라고, 그만두지 말라고 했다. 갑자기 울면서 “언니를 더 빨리 만났으면 좋았을 것 같다”라고 하더라. 소니아와는 우리 팀에 오기 전 올스타게임 때부터 알게 됐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친해졌다. 정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2위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했기 때문에 4강 대진에 따라선 챔피언결정전도 노릴만한 시즌이었다. 챔피언결정전에 못 오른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당연히 아쉽다. 이변이 일어날 수 있는 게 스포츠이기 때문에 챔피언결정전에 가거나 우승까지 하며 은퇴하면 얼마나 멋있겠나. 그래도 의미 있는 시즌을 치렀다고 생각한다. 우승은 하늘에서 점찍어주는 것이다. 주위에서 상 욕심 없냐고 물어보는데 나이가 점점 드니 상 받는 것보단 안 다치고 마무리하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선수 생활을 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1경기를 꼽는다면?
너무 오랫동안 뛰어서 모르겠다. 이긴 경기는 다 좋았다. 진 경기도 힘들었지만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게다가 마지막 경기에서 잊지 못할 추억도 생겼다. 하도 울어서…(웃음). 어느 선수가 생일에 은퇴할 수 있겠나. 금호생명, KDB생명 시절에 (김)보미, (정)미란이, 경은이, (신)정자 언니, (홍)현희 언니, (조)은주 언니와 너무 힘들게 운동했던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함께 산도 많이 뛰고 얘기도 많이 나눴던 동료들이다.

당분간 계획은?
쉬어야 하지 않겠나. 연락드릴 사람도 많다. 은퇴하니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팬들에게 못다 한 말이 있다면?
나이가 들면서 팬들이 많아졌다. 멀리서도 찾아와주셨는데 군산에서 온 팬들도 있었다. 일일이 챙겨드리지 못하고 이름도 못 외워서 죄송하지만, 오래된 팬들은 내가 이름을 못 외운다는 걸 안다. 이름 외우는 데에 1년 걸린 팬도 있었다. 그래서 서운해하는 팬들도 있을 텐데 그래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한다. 경기장 찾아와 응원해주셔서 감사했다. 팬들 덕분에 이 나이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사진_점프볼DB(문복주 기자), 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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