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모로코 남자가 대만 가려다 제주 와서 ‘K뮤지션’ 된 사연은···[서울 밖 뮤지션들]

최민지 기자 2023. 3.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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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출신 오마르
대만 유학 하려다 한국으로
“상상력 한계 짓기 싫다”
국적·장르 불명 음악 활동
전세계 ‘코리안 웨이브’에
외국인 뮤지션도 함께 하길
모로코 출신 뮤지션 오마르(OMAR)가 13일 제주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 위치한 자신의 소품 상점에서 반려견 폴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주|성동훈 기자

제주 조천읍 북촌리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조용한 마을이다. 제주 앞바다의 찰싹대는 파도와 갈매기 울음 소리가 전부인 이곳에 심장을 울리는 일렉트로닉 음악이 ‘쿵쿵’ 울려퍼졌다. 모로코 출신 뮤지션 오마르 베나실라(38)의 작은 작업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지난 13일 돌담으로 둘러싸인 자택 겸 작업실에서 오마르를 만났다. 오마르는 ‘시드 드 무어’(Seed de Moor)라는 솔로 프로젝트로 활동하는 동시, 자신의 이름을 딴 밴드 ‘오마르와 동방전력’의 프론트맨이기도 하다. 제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14년차 뮤지션 오마르의 음악 세계는 제주의 날씨처럼 변화무쌍하고 다채로웠다.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난 그가 어쩌다 먼 이국 땅에서 음악을 하게 됐을까. 오마르의 사연은 그의 말대로 “아주 길고 복잡한 이야기”였다. 오마르는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했다. 21세 되던 해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대만으로 유학을 떠났다. 어린 시절 일본 만화를 보고 자란 그에게 아시아는 유럽이나 북미보다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런데 일이 꼬였다. 먼저 유학해 있던 친구를 통해 보낸 학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사관도 없어 어찌할 바를 몰랐던 그는 태국, 중국 등 선택지를 고려하다 ‘한국에 가면 일을 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2007년의 일이다.

“한국에 오고 나서 어린 시절 꿈이었던 음악을 시작했어요. 흥미로운 뮤지션들을 많이 만났고 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음악인으로 살게 되었죠.”

모로코 뮤지션 오마르(OMAR)가 13일 제주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곡을 하고 있다. 제주|성동훈 기자

2009년 첫 밴드인 ‘수리수리마하수리’를 결성했다. 한국인 멤버 2명과 오마르로 구성된 이 다국적 밴드는 국적과 장르 불명의 독특한 음악을 만든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마르 또한 커리어를 착실히 쌓아갔다. 2011년 가수 노영심의 단독 콘서트에 게스트로 섰고, 재즈 뮤지션 이건민 트리오의 앨범 작업에도 참여했다. 2013년에는 프로젝트 밴드인 ‘화이트 리드 캐러밴’을 결성, 한국 전통 악기 대금을 결합한 밴드 음악을 시도했다.

2016년 오마르를 주축으로 결성된 ‘오마르와 동방전력’은 그의 음악 세계를 한층 넓혔다. 2018년 정규 앨범 <워킹 마일스>, 2021년 싱글 <선샤인>을 냈는데 오마르가 작사와 작곡을 맡았다. 모든 곡에는 한국에 사는 이방인으로서, 제주에 사는 뮤지션으로서의 삶이 그대로 담겼다. 정규 앨범 수록곡인 ‘노가다 블루스’는 건축 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쓴 곡이다.

2018년에는 모로코 현지 대표 페스티벌인 ‘비자 포 뮤직’ 무대에 섰다. 모로코와 이집트, 한국 출신이 함께 만든 이들의 음악은 ‘북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와 함께 아프로비트, 데저트 블루스로 구분됐다.

오마르는 그러나 자신의 음악을 특정 장르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내가 어떤 장르를 한다고 정의 내리고 싶지 않다”며 “나의 상상력에 한계를 짓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뿌리가 음악에 녹아 있음을 인정했다. “모로코는 다민족, 다문화국가예요.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이 있죠. 어렸을 때부터 서양 음악을 포함해 많은 음악을 들었고, 한국에 오고 나서는 한국의 음악도 흥미롭게 들었어요. 이 모든 것들을 내가 가진 ‘DNA’와 결합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2010년대 ‘제주살이’ 바람이 불었다.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소박한 삶을 찾아 제주로 이주했다. 뮤지션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오마르도 그중 한 명이었다. “서울은 한국 아트 신의 중심이지만 너무 바쁘고 사람도 많아요. 그에 반해 제주는 붐비지 않고 스트레스도 적죠.”

모로코 출신 뮤지션 오마르(OMAR)가 13일 제주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주|성동훈 기자

2015년 제주에 온 뒤 오마르의 인생은 바뀌었다. 제주가 그에게 준 혼자만의 시간과 넉넉한 공간은 창의력을 발휘할 힘을 줬다. 이듬해에는 제주에 정착한 다른 뮤지션들과 ‘오마르와 동방전력’을 결성했다. 평생의 인연도 만났다. 2년 전 오마르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오마르는 제주가 뮤지션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제주는 시골이지만 다른 시골과는 다릅니다. 아티스트도, 음악을 들려줄 클럽이나 페스티벌도 많아요.” 비행기로 1시간이면 서울에 닿으니, 역설적으로 가장 서울과 가까운 비수도권이라고도 말했다.

오마르는 서울에 자주 간다. 솔로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난해 여름에는 거의 매 주말 서울을 찾았다. 그는 “물론 제주에만 있기는 음악계가 너무 작다”며 “발 한쪽은 제주에, 한쪽은 서울에 놓고 지내려 한다”고 말했다.

오마르는 올 한 해 솔로 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다. 작곡, 녹음 등 작업을 마친 뒤 올해 안에 앨범을 내는 것이 목표다. ‘오마르와 동방전력’의 음악이 기타와 베이스, 드럼으로 만든 것이라면 솔로 프로젝트는 기계로 만들어 낸 일렉트로닉 뮤직이 될 예정이라고 오마르는 귀띔했다.

가까운 미래에는 한국을 넘어 미국, 유럽 등지로 활동 무대를 넓혀볼 생각도 하고 있다. “요즘 한국 음악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있잖아요. 주로 K팝이지만요. 이 ‘코리안 웨이브’에 저와 같은 외국인 뮤지션도 함께할 수 있길 바라요. 우리 음악은 한국에서 만들어졌고, 분명 이 흐름의 일부거든요.”

<시리즈 끝>

모로코 출신 뮤지션 오마르(OMAR)가 13일 제주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바다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제주|성동훈 기자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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