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4. 모두가 떠나도 마르지 않는 황금빛 광부의 샘

방기준 2023. 3. 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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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구름 모여드는 모운동 마을서 시작
광업소·삭도 등 폐광 흔적 고스란히
철분 품은 전망대 황금폭포 이색 풍경
폐열차 ‘석항트레인스테이’ 로 추억여행

광업소와 삭도·동발 등 폐광 흔적과 탄광산업의 주역이었던 광부들의 흔적을 더듬으며 걷는, 말 그대로 ‘광부의 길’이다. 구름이 모여드는 최대의 광산도시 모운동(暮雲洞)마을에서 운탄고도 3길의 첫 발을 떼면, 광부들의 땅을 딛는 작업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영월의 탄광들 가운데 가장 질 좋은 무연탄이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던 옛 옥동광업소가 멀지 않다.
 

▲ 영월 운탄고도 1330 3길의 잣나무 숲길

■ 운탄고도 3길= 광부의 삶을 돌아보며 걷는 길

광부들은 갑번과 을번·병번 하루 3교대로 나눠 검은 다이아몬드를 캐냈다. ‘땅속 깊이 개미굴처럼 이어진 갱도로 흩어져 그들이 파고 또 팠던 것은 시꺼먼 탄 뿐이었을까, 그들의 운명이거나 팍팍한 삶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며 말 그대로 광부의 길을 걷게 된다.

머지 않아 보이는 전망대에선 폐갱도 안에서 불그레한 물이 쉼 없이 흘러 나와 물줄기를 쏟아내는 황금폭포를 만나게 된다. 광산의 철분 때문에 황금색으로 보인다는 것을, 이제 모르는 사람 빼고는 다 안다.

또 광부들의 공중목욕탕으로 슬그머니 들어서면 누가 썼는지 모르는 낙서들이 어지럽다. 탄광가는 숲길로 들어서기 전, 한 광부가 무연히 나타난다. ‘휴식’이라는 제목이 붙은 조각상이다. 그곳을 그냥 지나가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그의 곁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그래도 그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삭도(索道)와 동발 등도 탄광산업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삭도는 자동차로 접근이 어려울 때 석탄을 운반하던 중요한 수단이었다. 공중에 매달린 밧줄에 운반기를 설치해 여객이나 화물을 운송하는 수단을 보통 삭도라 불렀다. 2㎞ 넘게 갱도를 뚫어 망경대산을 관통하며 캐낸 석탄은 소래기바가지 삭도를 이용해 석항역까지 보내졌다. 삭도는 탄을 운송하는 것 말고도 장마철이나 겨울철 폭설이 내려 길이 끊기면 생필품을 실어 나르는 데도 쓰였다.

원래 ‘지게 몸체의 맨 아랫부분에 있는 양쪽 다리’를 가리키는 동발은 땅을 팔 때 갱이 무너지지 않게 만들어 세워졌다.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어졌다가 차츰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지었다. 동발제작소임을 알리는 누런 표지판에는 실제 동발이 세워진 모습이 찍힌 흑백사진 2장이 박혀 있는데,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진다.

광부의 길을 지나면 해발 1088m의 영월 산솔면과 김삿갓면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우뚝 솟은 운탄고도 3길의 두번째 기항지인 망경대산(望景臺山)과 만난다. 시간이 흐르며 많이 가려지긴 했지만 산자락에 흩어진 광산의 흔적들을 통해 석탄산업 호황기였던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탄광 개발이 얼마나 맹렬하게 이뤄졌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 낙엽송 숲길

탄광들이 차례차례 폐광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멈춘 숲은 점점 우거지고 자연은 빠르게 복원되고 있으나 광부들의 숨 가빴던 삶과 애틋한 사연은 고요히 묻혀 버렸다.

비포장의 망경대산 임도를 따라가면 왼편으로 고랭지 채소밭에 닿는데, 바위가 거의 없는 초목으로 넓게 이뤄진 육산의 특징을 보여준다. 산 아래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철컹철컹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 소리가 들릴 즈음 운탄고도 3길 종점을 향한 마지막 기항지 석항역이 아스라이 보인다. 길을 내려가면 석항역 부지에 폐열차를 활용해 추억여행을 즐길 수 있는 노스탤지어 체험시설인 석항트레인스테이의 이국적인 풍경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정선 경계를 훌쩍 넘으면 운탄고도 3길의 종착지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禮)와 아름다움(美)’이 가득한 예미마을의 자그마한 역에 도착한다. 트레킹을 하며 운탄고도의 의미와 가치, 광부의 삶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이 길은 모운동에서 정선 신동읍 예미역까지 총 길이 16.83㎞이다. 방기준


■ 3길 주변의 명소들

△망경대산

운탄고도 1길의 출발지인 영월읍 청령포에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애절한 삶이 어려 있다면, 망경대산에는 단종의 충직한 신하 추익한(1383-1457)의 간절한 기원이 깃들어 있다. 추익한은 홍문관부수찬·호조정랑·한성부윤 등을 거친 뒤 1433년(세종 15년) 관직에서 물러나 영월로 낙향해 망경대산 아랫녘인 당시 상동면 화원리에서 시를 짓고 책을 읽으며 조용히 살았다.

그러던 중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사육신의 한 사람인 형조참판 박팽년으로부터 단종을 잘 보필해 달라는 서신을 받는다. 산에서 머루와 다래를 따서 바치는 등 단종을 정성껏 보살폈는데 어느 날 곤룡포를 입고 백마를 탄 단종이 태백산으로 가는 꿈을 꾸게 된다. 급히 청령포로 달려간 그를 기다리는 것은 사약을 받은 단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였다. 단종의 폐위 소식을 들은 추익한이 산 위에 올라 한양 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애절한 사연을 품고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의 멋진 능선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월군이 운영하는 망경대산자연휴양림은 트레킹 후 머물며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곳이다.

△석항트레인스테이

석항역은 1991년 소화물 취급이 중지되고, 1995년에 설치됐던 승차권 단말기가 2004년에 철거된 후 2009년 여객 취급마저 중단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이에 영월군이 코레일에서 지원된 폐열차 9량을 활용, 68명 수용 객실 9실과 식당·카페·샤워실 등 편의시설을 갖춘 뒤 2013년에 문을 열고 여행객들을 맞으며 사람들의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와 소소하지만 여유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객실은 4인실, 6인실의 가족실과 12인실로 운영되는 도미토리가 있다.

대도시의 소음에 지친 사람이라면 이 곳의 조용함에 놀랄지도 모른다. 해질 무렵 방문하면 양쪽에 늘어선 기차 사이로 지는 해를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다. 민간위탁업체가 지난해 4월 운영을 포기해 현재는 손님을 받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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