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계란 투척보다도...무관심이 더 무섭다
지난 14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이번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B조 3위(2승2패)로 조 2위까지 주어지는 8강행 티켓을 놓친 야구대표팀이 조기 귀국하는 현장엔 팬들보단 취재진이 더 많아 보였다. 오후 5시 25분쯤부터 검은색 양복에 넥타이를 맨 감독과 선수들이 차례대로 나타났다. 아무런 환영사도 없었다. 대신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소리만 요란했다. 대표팀 모두를 볼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 인파가 몰려들지도 않았다.
몇 안 되는 팬들이 사인을 요청했지만, 선수들은 연신 “죄송하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선수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떨군 채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갔고 뿔뿔이 흩어졌다.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선수단을 대표해 인터뷰에 나선 사람은 굳은 표정의 이강철 감독뿐이었다. 이마저도 3분 남짓했다.
불과 2주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앞서 1일엔 똑같은 장소가 새벽부터 팬들로 북적였다. 2023 WBC를 앞두고 합류한 메이저리그(MLB) 출신 토미 에드먼(28·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을 보기 위해 곳곳에서 야구팬들이 모여든 것이다. 에드먼이 등장하자 ‘웰컴 투 코리아’라는 우렁찬 환호로 그를 반겼다. 기자가 만난 한 중학생은 어머니와 함께 경기도 의정부에서 왔다고 했다. “앞으로 보기 힘든 선수라고 생각해 새벽 5시부터 기다렸다”던 학생은 사인볼을 받곤 활짝 웃었다. 피곤해 하는 기색도 없었다. 이런 팬들 덕분에 야구라는 종목이 지탱되고 야구대표팀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야구대표팀 귀국을 기다리던 취재진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기대에 못 미친 축구대표팀의 귀국 때 모습이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당시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일찍 짐을 싼 축구대표팀은 일렬로 도열해 공항에서 해단식을 가졌다. 선수단은 현장을 가득 메운 축구팬에게 고개를 숙이며 다음 대회를 기약했다. 그러나 그 순간 발밑으로 엿과 계란 등이 날아왔고 야유가 쏟아졌다.
이번 야구대표팀은 축구팀보다 더 초라한 성적을 냈는데도 현장에선 계란이나 욕설은 등장하지 않았다. 별다른 귀국 인사와 해단식이 없었기 때문에 돌발 상황이 벌어질 여지가 애초에 없기도 했다. 허구연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허 총재는 다른 일정 때문에 선수단보다 늦게 입국했다고 한다.
팬들은 이번 WBC를 통해 한국 야구의 부끄러운 민낯을 봤다. 격려나 비난은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애정이 있을 때 나온다. 이날 야구대표팀 귀국엔 격려도 비난도 없었다. 차갑게 식은 관심과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애정 어린 비판조차 없이 무관심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이 한국 프로야구의 최대 위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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