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풍경, 책 밖의 이야기] 출판사 이름에 대하여

기자 2023. 3. 1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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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제법 읽는 독자라면 꾸준히 찾아 읽는 저자의 이름 몇몇을 떠올릴 수 있을 테고, 기억에 남는 책 제목도 수십 개는 적어볼 수 있을 터이다. 한데 책의 구성 요소이자 책을 만들고 전하는 이름 가운데 가장 덜 알려진 것은 역시 출판사명이 아닐까 싶다. 이런 현실과는 다르게 출판사 문을 여는 즈음에 가장 고민하는 대목이 출판사명이고 이것이 확정되고서야 비로소 출판사 창업이라는 결단을 내리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 과연 책에 있어 혹은 출판사에 있어 이름이란 무엇인지 종종 생각해보게 된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사람의 이름이 그러하듯 출판사 이름에도 유행이 있는데, 연원은 다르지만 출판사 이름에 ‘월’이 들어간 ‘사월의책’과 ‘오월의봄’ 그리고 ‘○○의○’이라는 구성에서 비슷한 ‘봄날의책’은 모두 2010년대 초반에 문을 열었고, 표기가 다르고 펴내는 책도 다르지만 발음과 의미가 유사해 주문이 잘못 들어오는 경우도 왕왕 있다는 ‘후마니타스’와 ‘휴머니스트’가 모두 2000년대 초 첫 책을 선보였다는 점을 보면, 출판사 이름에 트렌드와 시대정신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엉뚱한 생각을 이어가게 된다.

시대정신이라 생각하면 오랜 시간 활동해온 출판사를 떠올리게 되는데, 지금은 공식적으로도 ‘창비’라 불리는 과거 ‘창작과비평사’와 비공식적으로는 ‘문지’라 불리는 공식 이름 ‘문학과지성사’의 경우가 펴내는 책의 분야와 내용, 당대의 상황과 지향을 모두 담아낸 이름이겠다. 이보다 앞선 곳으로는 ‘민음사’ ‘현암사’ ‘을유문화사’가 떠오르는데 민음사는 ‘백성의 올곧은 소리를 담는다’는 의미를, 현암사는 창업자의 호에서 따온 ‘현암’을 바탕으로 1945년 광복 이후 “우리말 우리글로 된 책의 보급이야말로 해방된 조국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믿음을, 을유문화사는 1945년 을유년 “광복의 감격과 의의를 기리며 ‘출판은 곧 건국 사업’이라는 사명감”을 담아 출판사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출판사 이름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단연 숲과 나무다. 숲은 숲 출판사부터 푸른숲, 깃드는숲, 느린숲, 더숲 등이, 나무는 봄나무, 은행나무, 갈매나무, 모과나무, 통나무 등 종류별로 출판사 이름이 있는 데다 소나무의 경우 ‘소나무’ 출판사도 있고 ‘늘푸른소나무’ 출판사도 있을 정도다. 이 마음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나무의마음, 나무의철학, 사람과나무사이, 나무생각, 나무옆의자, 나무발전소 등등 다양한 상황과 생각으로 뻗어나가니 종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출판사의 숲과 나무 사랑을 알 수 있겠다.

최근에는 과거에 비해 무게감을 덜어내고, 특별한 의미보다는 느낌과 분위기를 담아낸 출판사 이름이 눈에 띄는데, ‘유유’ ‘티티’ ‘심심’처럼 두 글자의 반복으로 운율을 만드는 경우도 있고, ‘유유히’처럼 부사를 활용해 ‘한가하고 여유가 있고 느리게’ ‘깊고 그윽하게’ 같은 의미를 자연스레 담아내는 사례도 재미나다. 이쯤 되면 독자 역시 출판사 이름 하나쯤 떠올려보며 그 이름으로 만드는 책과 세계를 꿈꿔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싶은데, 출판인들이 모이면 이런 이름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누며 반응을 살피기도 한다. 필자가 그렇게 떠올린 이름은 ‘뜻밖의책’인데, 뻔한 예상을 넘어서는 책을 펴낼 정도가 되어야 출판사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지은 이름이다. 이 이름은 같은 의미로 여러 변주가 있는데, 세 글자로는 ‘감탄사’, 한 글자로는 ‘짠’이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없으며 유행도 지난 터라 결단을 위해서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겠다. 오늘도 명실상부를 위해 애쓰는 출판사와 그 이름을 고민했을 그때의 결단들에 응원과 박수를 전한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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