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의 깊은 호흡] 복수는 존재하는가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았다. 다섯 명의 동급생들에게 극심한 학교폭력을 당한 여자 고등학생이 오랜 기간의 준비 끝에 어른이 되어 그들에게 복수를 벌이는 내용이다.
이렇게 다양하게 사악한 인간 군상들이 많이 나오는 드라마도 흔치 않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인간, 그래서 저지른 잘못을 인정할 생각이 없는 인간, 지은 죄를 얼마든지 합리화하는 인간, 타인의 약점을 쥐며 흥정하는 인간, 자기보다 취약한 사람만 보면 착취하려는 인간, 타인을 이용하고 쓸모가 없어지면 바로 버리는 인간, 돈과 권력이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 자신의 불행과 콤플렉스를 명분 삼아 가장 가까운 이에게 만만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
이러한 인간들의 주변에는 다양하게 비열한 인간 군상들이 한 벌로 존재한다. 강자에게 붙어 기생하는 방법밖에 모르는 인간, 약자를 괴롭히는 것을 도와 자신도 강자임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인간, 내가 당할지도 모르니까 약자를 외면하거나 손절하는 인간, 자신도 피해자면서 가해자 편에 붙으려는 인간,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인간, 이간질하는 인간,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인간, 돈이라면 시키는 뭐든 할 인간, 그래서 상황에 따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인간…. 이런 쓰레기들과 관계를 맺는다면 아마도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될 것이다.
이 드라마가 인기인 이유는 학폭이라는 자극적 소재나 빠른 전개, 배우들의 열연도 있겠지만 우리가 아는 인간의 사악함과 비열함을 촘촘하고 적나라하게 짚어 주기 때문이 아닐까. 당연한 공식대로 드라마는 권선징악을 이야기한다. 사악하고 비열한 인간들은 모두 벌을 받는다. 그러나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서는 많은 경우 권선징악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다. 아니 드라마조차도 권선징악의 과정이 너무 힘겹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감이 있다. 사적 복수를 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부터 피를 말리는데, 피해자는 피해자됨을 아무리 증명하려 해도 가망성은 희박하고 대부분의 주변 어른들은 봐도 못 본 척을 하며 자기 안위만을 살피거나 상황을 악용한다. 피해자는 모든 지력과 기력과 정신력을 다해 우뚝 일어나 스스로를 지키면서 가해자를 징벌해야만 한다. 지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지옥의 판을 직접 새로 짜야 하는 것이다. ‘징악’의 결론까지 가는 도중에 우리들의 대부분은 아마도 포기할 것이다. 너무도 힘들어서.
실제 현실 사회를 둘러보아도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 곤궁을 겪거나 손해를 보고, 사악하고 비열한 인간들은 자기 잇속을 잘 챙겨 세속의 영광을 취한다. 사람들이 다 자기 같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은 인간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머리 굴리는 데 도가 트였다. 가장 큰 특징은 ‘뻔뻔함’으로 얼굴이 두껍기 때문에 잘못을 저질렀어도 거리낌이 없고 도리어 목소리가 더 커지고 당당하다.
선한 사람들도 더 악착같이 모질게 굴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들의 특징은 ‘수치심’이다. 어떤 행동들은 인간으로서 하기에 파렴치하기에 선을 넘지 않으려고 스스로의 행동을 제어한다. 자신의 선한 의지를 알아봐주는 소수 동류들의 위로로 잠시 윤리적 만족을 얻지만 실제로는 손해를 감수하며 살아간다. 그들도 머리로는 안다. 자기한테 더 이로운 방법이 있음을. 하지만 타고난 성향이 그래서 도저히 그렇게 못하는 것이다. 이들은 사적 복수를 잘 하지도 못할뿐더러 설사 했다 한들 속시원해하기는커녕 실제로는 더한 내상과 타격을 입을 것이다. 사악한 인간들은 선한 이들의 이러한 ‘나약한’ 성향을 후각으로 간파하고 비웃는다. 그리고 그 특성을 이용하여 세상을 쥐락펴락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바보처럼 이타적이기보다 안전하게 이기적이기를, 얻어맞고 들어올 바엔 차라리 때리는 쪽이기를 내심 바란다.
나는 지금 드라마 얘기를 하고 있는가, 뉴스 얘기를 하고 있는가. 고 김진영 철학자가 말했듯 ‘몰락은 가깝고 구원은 멀다’.
임경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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