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소불위의 현수막 특권... “이게 뭡니까”
“이게 뭡니까.” 왕년의 유행어가 절로 튀어나오는 한판 코미디다. 다름 아닌 정치 현수막 소동이다. 생업에 바쁜 시민들은 “웬 꼴사나운 현수막들이 저토록 펄럭이나”했다. 알고 보니 지난해 말 국회가 슬그머니 통과시킨 법 하나 때문이었다. 옥외광고물법을 바꾼 것이다. 정치 현수막은 언제, 어디든지, 얼마든지 마구잡이로 내걸어도 괜찮다는 법이다. 법 개정 명분도 그럴싸하다. 일상에서 정당 활동을 활성화해 정치문화 발전을 기한다나. 그래서 정치 현수막은 별도의 신고·허가·금지 등을 모두 뛰어 넘도록 했다. 그들 국회의원을 뽑아 준 시민들은 실종가족 찾는 현수막 하나 걸려 해도 보통 고생이 아니다.
그래선지 지난 연말부터 정치 현수막이 쏟아졌다. 특히 예산 국회 끝 무렵엔 거리마다 만국기처럼 펄럭였다. ‘이런저런 예산 몇조, 몇천억원 제가 따왔습니다’ 똑같은 예산인데도 서로 자기가 따왔다고도 했다. 그 무렵 예산 자랑 현수막은 전국을 뒤덮었다. 그 예산들 모두 합하면 엄청난 금액일 것이다. 이전의 ‘설 추석 잘 보내시라’, ‘수능시험 잘 보라’ 현수막은 애교 수준이다. 예산 자랑이 끝나니 서로 헐뜯기, 자화자찬의 현수막이 거리를 메운다. 가장 최근에는 ‘이완용’ 현수막까지 등장했다. 이러다 ‘충무공’까지 현수막에 끌려올지 모르겠다.
급기야 지난달 인천에서는 이런 현수막에 시민이 다치기도 했다. 송도국제도시 한 사거리에서 20대 대학생이 정치 현수막 줄에 목이 걸려 넘어진 것이다. 난방비 폭탄을 서로 떠넘기는 현수막이었다든가. 시야를 가리는 현수막 쳐다보느라 운전도 보행도 위험할 지경이다. 소상공인들은 비싼 돈 들인 간판이 가려져 영업까지 방해 받는다. 인천 주안역 광장은 ‘수사하라’, ‘책임지라’ 등의 현수막을 온통 뒤집어 쓴 모습이다. 전부 국민 세금이다. 유정복 인천시장도 한 소리 했다. “정치 과잉, 정치 혐오만 부추긴다”, “사전 선거 운동이다”. 사뭇 날카로운 지적이다.
지난 1월 세종시가 지역 2곳에 ‘정치 게시대’를 마련했다. 정식 명칭은 ‘정치 현수막 우선 지정게시대’다. 함부로 떼 버릴 수도 없으니 한군데에다 몰아넣자는 아이디어다. 정치 현수막 수용소쯤 되겠다. 이 수용소 설치에 또 세금 2천만원을 썼다고 한다. 국민이 쥐여 준 입법권을 어떻게 이렇게 주무를 수가 있나. 문제는 끝 간 데를 모르는 그들의 특권의식이다. 200가지가 넘는다는 국회의원 특권에 현수막 특권까지 필요했나. 이러다가는 마침내 그들 가족까지 그 특권들을 누리도록 할지도 모른다. 궤도를 한참 벗어난 입법 특권의 민낯을 쳐다보며, 시민들은 또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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