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아영의 레인보] “많이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묻는 당신에게
“저희도 좀 분석해주시면 안 돼요?”
지난 1월 세계 여성의날(3월8일)을 위한 기획 기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성별 임금격차는 27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를 달리고 있지만 언론에서 그 원인을 다각도로 들여다본 적은 거의 없다. 이제는 차별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신입 채용부터 얼마나 공정한지 들여다보고자 했다. 공공기관들이 면접 성비·최종 합격자 성비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국회의원 보좌직원들과 어떻게 데이터를 구할 수 있을지 상의하고 있을 때였다. 한 보좌직원이 “국회야말로 제일 분석이 필요한 곳”이라며 국회도 분석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얼마 후 국회의원 보좌직원 성비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를 분석한 결과 가장 높은 직급인 4급 보좌관·5급 선임비서관에 여성이 아예 없는 국회의원실이 133개(44%)에 달한다는 사실이 처음 드러났다. 수치를 분석하고 생각보다 비율이 높아서 적잖이 놀랐다. 여성 보좌직원들은 “국회야말로 성평등에서 제일 먼 곳”이라는 씁쓸한 말을 남겼다.
“국회의원 절반, 고위 보좌직에 여성 안 쓴다”는 기사가 나간 여성의날, 국회 사무처는 “여성 보좌직원은 늘어나고 있습니다”라는 설명자료를 냈다. 2020년에 비해 4급 비율은 3%포인트 늘었지만 5급은 전혀 늘어나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늘었다’고 했다. 확인해보니 2015년 대비 여성 인원이 증가했다는 것이었다. 8년 전인 2015년보다 여성 비율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따라왔다.
간접차별의 일면 처음으로 확인
성별 임금격차 기획 기사를 준비하면서 “이 정도면 좋아진 것 아니냐”라는 반응을 종종 들었다. 성별 임금격차가 OECD 국가 중 가장 큰 사회라는 ‘결과’가 있는데도 “많이 나아지지 않았어요?”라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보였다. 주로 남성들이었다. 여성들은 달랐다. “변화 속도가 너무 늦다”는 반응이 많았다. “남성 연구자들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만 이야기해요. 남성과 여성 노동의 이중구조는 이야기하지 않죠.” 여성들의 노동 이야기는 여전히 비가시화되어 있다. 주류의 시선에서 잘 보이지 않기에 논의도 잘 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좋아지지 않았느냐”와 “속도가 너무 늦다”는 양쪽의 인식 격차가 한국의 현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직접 차별하는 시대는 지났다. 기업 채용에서도 ‘남성 우대’를 조건으로 둘 수 없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기도 하지만 이제 ‘그 정도로는 좋아졌다’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고용주는 차별 의도가 없었어도, 중립적으로 보이는 고용 관행이 특정 집단에 불평등한 영향을 끼치면 ‘간접차별’이라 한다. 간접차별도 법적 용어다.
이번 취재에서 그 ‘간접차별’의 일면을 처음 확인할 수 있었다. 특별취재팀은 314개 공공기관이 2019~2022년 4년간 진행한 채용의 면접·최종 합격자 성비 데이터를 국내 언론 중 최초로 입수해 분석했다. 과거 몇몇 특정 기관의 성차별적 채용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적은 있지만 학계나 언론에서 이렇게 광범위한 데이터 분석으로 채용에서의 여성 차별 경향성을 입증한 곳은 없었다.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면접자 수부터 남성이 여성보다 1만8000여명 더 많았고 채용 결과도 남성이 여성보다 6814명 더 뽑혔다. 상대적으로 차별이 없을 것으로 예상됐던 공공기관인 데다, 인적자본 차이를 찾기 어려운 ‘신입 채용’인데도 결과는 놀라웠다. 서류 전형부터가 아니라 어느 정도 성비를 고려해 대상자를 선발했을 가능성이 높은 면접 전형부터의 성비 자료인데도 그랬다.
바꾸기 위해, 계속 얘기하렵니다
‘여성이 싫어서 안 뽑았다’고 말하는 회사나 기관은 없다. ‘차별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남성 관리자가 많고 남성 직원이 많은 곳에서 남성 신입을 많이 뽑는 ‘구조’는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한 취재원은 말했다. “한 남성 면접관이 목소리 크고 남자답다며 ‘일 잘할 거 같다’고 계속 남성에게만 점수를 높게 주는 거예요. 면접위원 성비부터 맞춰야 해요.” 우리는 모두 주관적 존재이기에 다양하게 섞여야 한다.
갈 길은 멀지만 위로가 되는 말도 있었다. “핀란드는 성평등 수준이 세계 상위권인데도 여성들이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요.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었더니 핀란드 여성이 답했대요. ‘꾸준히 이야기해야 바뀐다.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요. 그 다음부터 저도 계속 얘기해요. 얘기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으니까요.”
임아영 소통·젠더 데스크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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