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일본 10엔빵의 숨겨진 비밀
최근 일본 도쿄, 오사카, 오키나와의 돈키호테 점포에 있는 한 식품코너에 일본 젊은이와 관광객이 줄을 서서 무언가를 사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판매코너 앞에 붙어 있는 포스터에 '대왕 치즈 10엔빵'이라고 써 있어 일본도 치솟는 물가에 맞서 최저가 상품을 속속 내놓는 상황에서 급기야 10엔짜리 빵까지 출시된 건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 '10엔빵'은 10엔짜리 동전 하나로 살 수 있는 싼 빵이 아니라 500엔(약 4850원)을 줘야 살 수 있는 10엔짜리 동전 모양의 거대한 과자다.
카스텔라 같은 달콤한 반죽에 진한 치즈를 넣어 양손으로 치즈를 길게 늘어뜨리는 임팩트가 큰 비주얼은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 적절해서 그런지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붐이 일고 있다. 현재 돈키호테 시부야점, 도톤보리점, 국제거리점 3개 점포와 도쿄 하라주쿠, 오사카 도톤보리에 가두점 2곳이 있다. 이 점포를 운영하는 B.N.사에 따르면 앞으로 매장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그런데 이 파죽의 10엔빵 인기비결을 들여다보니 놀랄 만한 '히트의 법칙'이 숨어 있었다.
이 법칙은 다름아닌 '한국에서 히트한 것을 그대로 복사하면 대박'이란 것이다.
사실 이 10엔빵의 오리지널은 한국에서 판매된 '경주 10원빵'이다. 경주지역 관광명소 중 하나인 불국사 경내에 있는 국보 다보탑이 한국 10원 동전에 그려져 있어 10원짜리 거대한 동전 모양의 과자를 관광기념품으로 내놓았을 때 SNS에서 큰 화제가 됐다. 신용카드와 현금 없는 결제가 널리 보급돼서 젊은이들은 동전을 볼 기회가 거의 없기에 복고 콘셉트로 인기를 얻은 것이다.
이 빵은 바로 일본 한류의 성지인 도쿄의 신오쿠보에 등장했다. 처음에는 오리지널 '10원빵'이 팔렸지만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한 B.N.사가 '10엔빵'으로 리메이크했다. 이 회사는 한국의 인기 화장품을 수입·판매하고 한식당을 운영하는 한류 전문회사다.
'훌륭한 기업은 돈이 없는 사람들도 감당할 수 있는 값싼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는 디플레이션 마인드가 너무 강해져서 이제 일본 기업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없고 아무 스스럼없이 한국 히트작을 베끼는 게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이 현상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게 바로 '양념치킨'이다. 달콤하고 매운 소스를 곁들인 이 프라이드치킨은 한국의 국민요리라고 할 정도로 대 히트작인데 당연히 일본에서도 몇 년 전부터 신오쿠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현지에서는 양념치킨을 번역하지 않고 일본식 발음인 '얀뇨무치킨'이라고 표기할 만큼 그대로 베꼈다. 신오쿠보에 상륙한 이후 에바라식품이라는 곳에서 업소용으로 소스를 만들어 전국 이자카야에 공급하면서 '모방'이 급속도로 확대되기 시작해 수년 만에 소스시장이 5배 이상 성장했고 2021년에는 이 상품으로 에바라식품이 그해 가공식품 히트상까지 거머쥐었다.
한류를 뛰어넘는 이 '한국 복사' 현상은 음식분야만이 아니다. 2020년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인기드라마 '이태원 클래스'가 대표적이다. 과거 일본영화는 스필버그와 타란티노 같은 서양 감독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 일본 방송국은 단순히 이 성공적 모델을 "적절히 베끼자"고 결정했고 그렇게 탄생한 드라마가 TV아사히의 '롯폰기 클라쓰'다.
미국드라마 '24'를 리메이크한 '24 JAPAN'이 실패한 경험이 있어 불안해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대히트했다. 모든 에피소드의 평균 시청률이 9%를 넘겼고 같은 기간 드라마 중 전국 3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경향은 일본이 자랑한 '아이돌문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일본인이 '경영의 신'으로 존경하는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1965년에 언급한 다음과 같은 고통스러운 변명을 아직도 신봉하는 걸까.
"일본 사람들은 단순한 모방자가 아니라 흡수하고 소화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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