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클래식]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와 ‘똑똑똑’

김성현 기자 2023. 3.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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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이번 주는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와 ‘똑똑똑’ 등 신작 4편입니다.

이니셰린의 밴시, 영화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

우정이란 이렇게도 깨지기 쉬운 것이다. 허구헌 날 붙어다니며 술잔을 기울이던 단짝 친구 ‘콜름’(브렌단 글리슨)이 어느 날 ‘파우릭’(콜린 패럴)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그날부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콜름은 인기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고개 돌릴 뿐이다. 마을에 하나뿐인 술집에서도 딴 자리에 앉으라고 대놓고 면박을 준다. 아일랜드의 외딴 섬마을. 금세 소문이 안 퍼질 수 없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는 다 큰 성인 남성들이 마치 열두 살 아이들처럼 티격태격하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초반은 지극히 사적이고 일상적이고 신변잡기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건 그 이유를 좀처럼 속시원하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작곡도 하는 콜름은 단지 “무의미한 수다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이니셰린은 영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섬. 밴시(Banshee)는 죽음을 예고하는 아일랜드 전설 속의 여성 혼령이다. 파국은 영화 제목에도 예고되어 있다.

2017년 영화 ‘쓰리 빌보드’로 아카데미 2관왕에 올랐던 마틴 맥도나 감독의 신작. 아일랜드계 영국 감독인 그의 이번 신작 역시 지난해 베네치아 영화제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콜린 패럴)을 거머쥐었다. 지난 1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작품·각본·남우주연상의 3관왕에 올랐다.

전작 ‘쓰리 빌보드’에서 파국 직전까지 오로지 직진하는 인물상을 보여주었던 감독은 이번 신작에서도 신념의 유용성과 한계에 대해 되묻는다. 외딴섬의 이웃 사촌이라는 제한적 공간과 등장 인물 때문에 초반에는 한갓지고 낭만적인 전원 코믹극처럼 보인다. 하지만 콜름이 절교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자해를 시도하는 순간부터 희극에서 비극으로 급격하게 바뀌고 영화에 시종 감돌던 웃음기도 자취를 감춘다.

1920년대 초반 아일랜드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통해서 당시 내전(內戰) 상황에 대한 비유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실제로 영국 자치령에 찬성하는 아일랜드 자유국과 북부를 포함한 완전 독립을 주창하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사이에 1년 여간 치열한 내전이 벌어졌다. 맥도나 감독 역시 “아일랜드에서 더 큰 전쟁이 일어나고 있을 때 두 남자 사이에 일어나는 작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한 마을에 사는 이웃의 극한 대립은 실제 역사의 반영인 셈이다. 갈등은 임계점에 다다르는 순간, 맹목적으로 돌변하는 속성이 있다. 영화는 예고된 파국을 막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서늘한 경고가 된다.

영화 '어떤 영웅'. /영화사 진진

영화 ‘어떤 영웅’

이란 감독 아스가르 파라디의 영화 주인공들은 불분명한 선악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2021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인 ‘어떤 영웅’ 역시 마찬가지. 빚을 갚지 못해서 감옥에 들어간 남자 주인공은 임시 석방된 뒤 금화가 든 가방을 주웠다고 신고해서 미디어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 이면의 불순한 동기가 탄로 나면서 명예가 추락될 위기에 처한다. 도덕적 딜레마에 처한 등장인물의 군상은 현진건의 단편을 연상시키는 묘미가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선행의 조건을 깨닫게 된다.

/유니버설 픽처스

영화 ‘똑똑똑’

영화 ‘식스 센스’와 ‘23 아이덴티티’의 M. 나이트 시아말란 감독은 반전(反轉)의 명수. 하지만 이번 ‘똑똑똑’에서는 허를 찌르는 반전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제목처럼 휴가를 떠난 가족의 별장에 낯선 방문객들이 무단 침입하는 장면이 출발점. 언뜻 공포물의 장르적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는 듯하지만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가족 한 명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대목부터 일종의 종교극으로 변모한다. 영화는 요한계시록을 화면에 옮길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에 가깝다. 이런 설정에 대한 믿음에 따라서 관객들의 호불호도 나뉠 것 같다.

대외비, 영화

영화 ‘대외비’

만년 국회의원 후보 신세인 ‘해웅’(조진웅). 또다시 공천 탈락의 고배를 마시지만 해운대 재개발 계획이 담긴 대외비 문서를 손에 넣은 뒤 지역 조폭 ‘필도’(김무열)와 의기투합한다. 영화 ‘대외비’는 199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정치인과 조폭의 공생 관계를 다룬 범죄극.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냉혹한 그룹 회장을 연기했던 배우 이성민이 숨은 권력 실세 역을 맡아서 다시 한번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각본은 예상을 벗어나는 법이 드물지만, 오늘날로 시대 배경을 옮겨도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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