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전두환 손자의 ‘폭로’
2002년이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에게 인사를 간 정치인을 따라 연희동을 찾았다. 밖에서 보이지 않고 접근도 어려운 집은 성채 같았다. “저 잔디마당에 비자금 금고를 묻어놨단 얘기가 있습니다.” 한 기자의 질문에 거실에서 담소하던 전씨는 “이봐 기자양반. 내려가서 파보쇼. 뭐 나오면 다 가져”라고 호기롭게 웃었다. “전 재산 29만원”이라는 문제의 법정 발언은 이듬해에 나왔다. 그렇게 비밀 많은 연희동 저택의 정적이 15일 한 손자의 폭로로 깨졌다.
차남 전재용씨 아들인 우원씨는 소셜미디어에 “전 할아버지가 학살자라고 생각한다. 나라 지킨 영웅이 아니라 범죄자”라고 직격했다. 전씨 일가의호화생활을 보여주는 글과 사진·동영상도 쏟아냈다. 이순자씨로 지칭한 여성은 연희동 집에 구비한 스크린골프장에서 골프채를 휘둘렀고, 전씨 딸 효선씨 자녀의 “초호화 결혼식” 사진도 소개했다. 아버지 재용씨는 “미국 시민권자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법 감시망을 벗어나려고 전도사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다”고 했고, 작은아버지 재만씨는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와이너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천문학적 돈이 드는 와이너리와 재용씨가 쓰는 출처 모를 돈은 “검은돈 냄새가 난다”고도 했다. 제3자는 알 수 없는 연희동 집과 전씨 가족의 속살을 까발린 것이다.
손자는 “가족들의 범죄 사기 행각”을 밝히려 폭로했다고 했다. 지인들의 마약·성범죄를 공개하며 “저도 처벌받겠다”고 했다. 그는 “뉴욕 회계법인에서 일한다”며 신원 증명을 위해 전씨와 찍은 어린 시절 사진과 가족관계증명서를 공개했다. 가족들이 본인의 정신과 치료(우울증·ADHD) 기록으로 “(나를 공격하는) 프레임을 씌울 것”이라고도 봤다. 사실상 내부고발자에 준하는 행동을 한 것이다. 재용씨는 “아들이 많이 아프다”며 이 글과 사진이 아들의 것임을 인정했다.
전씨 일가의 호화생활은 시민의 공분을 일으킨다. 전씨는 2021년 사자명예훼손 재판 도중 숨졌지만, 추징금 2205억원 중 925억원은 미수금으로 남았다. 손자의 글엔 “그 집에 제정신 가진 사람도 있다”는 격려 댓글이 달렸다. 이번 폭로가 추징금을 쫓아서 끝까지 받아내는 새 단서가 됐으면 싶다.
이기수 논설위원 ksle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건희, 마포대교 순찰···“경청, 조치, 개선” 통치자 같은 언행
- 김동연 “25만원 지원금, 국민 70~80% 지급하는 게 현실적”
- [단독] 안세하 학폭 폭로 “강제로 싸움시켜”···소속사 “명백한 허위”
- “이준석 성접대 증거 없다” 검찰 결론에···강신업 “무고 혐의 항고할 것”
- [양권모 칼럼] 참으로 ‘별난’ 대통령
- 박지원, 한동훈에 “대통령에 세게 나가라···아니면 ‘땡감’으로 떨어져”
- 산사태에 주검으로 돌아온 버스 승객들···베트남 태풍 ‘야기’로 105명 사망·실종
- 문재인 평산책방 직원 피습 사건에 이재명 “끔찍한 범죄···적대정치 종식을”
- 세금으로 만든 ‘김건희 키링’···산자부 “물품관리대장 원본 없음”
- 청계천서 헤드폰 끼고 ‘야한 책멍’ 즐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