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칼럼] 지식생산국이 선진국이다
분열공화국 초래하고
과거에 갇혀 미래 못봐
이젠 지식생산국 도전을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친다. 국민 통합은 어렵지 않았다. '잘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국민들은 농촌과 공단에서 땀 흘려 일한다. 이어 화이트칼라는 '반독재'라는 단어 하나로 뭉쳐 '87년 체제'를 구축한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은 다음 국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분열과 갈등 공화국을 맞는다. 양대 정당은 한쪽 가치에 치우쳐 나라를 두 쪽 내다시피 한다.
그사이 그나마 등장한 국가 비전이 '선진국'. 민간 부문에서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에 이어 3만달러와 5만달러 비전을 연이어 제시한다. 한국의 비전은 선진국이라는 제언이다. 역대 대통령들도 유사 비전을 내세우지만 국론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지식창출엔 실패한다.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변하는 시대에 맞게 국론을 모으는 지식창출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선진국은 당시 그런 지식생산국이었다. 중국이 아주 오래전 송나라 때 그랬고, 세계를 제패했던 영국에 이어 요즘 최강국 미국이 그렇다.
우리는 외부에서 들여온 지식에 기대어 틀에 박힌 이념에 갇힌 채 감정과 감성에 의존한 의견과 판단이 난무한다. 일제강점기 직전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에선 제국주의가 판치는데 우리는 수입지식에 의존한 채, 과거에 갇혀 살았다. 쇄국정책의 결과는 식민지였다.
최근 국제 정세도 구한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러시아는 인접국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지 1년이 넘었다. 앞서 중국은 홍콩에 보장한 일국양제를 폐기한다. 대만 침공도 공식화한다. 2019년 1월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 통일을 위해 무력 사용을 예외로 두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요즘 북한은 남한을 핵무기로 공격하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쯤 되면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는 잠재적 화약고다.
이런 정세를 감안해 내놓은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은 고육지책이다. 그러나 반대 여론이 적지 않다. 지식수입국의 한계다.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의 최진석 이사장은 "우리는 지식을 수입하다 보니 옳고 그름을 가리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생각하고 사유할 능력이 끊겨 오랜 세월 진영논리에 갇힌 결과라고 한다.
이젠 지식생산이 절실하다. 수입지식에 의존한 정치와의 단절을 위해서다. 지식생산을 위해선 서로 다른 의견이나 주장과의 부딪힘도 필요하다. 말싸움이 될 수도 있고 큰 토론일 수도 있다. 대표적인 지식생산 공간은 포럼이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은 미국과 유럽 각국의 어젠다 생산현장이다. 독일 출신 유대인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이 주최자이지만 스위스 대통령과 독일 총리가 개막식에 늘 참석한다. 국가 주도 행사나 마찬가지다.
서방국 중심 다보스포럼에 대항해 중국 당국이 만든 게 보아오포럼이다. 일본 최대 경제신문 닛케이가 주최하는 '아시아의 미래' 포럼도 유사한 판이다. 언론 행사이지만 일본 총리는 아세안 각국 정치지도자들이 참석한 포럼 만찬을 직접 주재한다. 각국은 포럼을 활용해 세계 각국 지도자들을 초청하고 그들만의 의견과 지식을 주입한다. 자연스러운 지식수출 과정이다.
우리 정부도 이 판을 제대로 활용했다면 2018년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도 쉽게 돌파할 수 있었다. 최근 내놓은 정부 해법은 국제 정세와 복합경제위기를 감안한 고뇌에 찬 결단이다. 다른 진영과 상대국 일본 의견도 듣는 공개토론을 가졌다면 감정이나 감성에 의존한 반발을 최소화했을 것이다.
16일 열리는 한일정상회담은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공론의 장을 여는 또 다른 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세계 번영이란 비전을 제시하고 일본의 동참을 끌어낼 수 있는 기회이다.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한 걸음 다가서기 위한 지식생산국에 도전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김명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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