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0만명 주주’ 삼성전자 주총장 달군 동학개미… “반도체 위기인데 대책 뭔가” “짜여진 답변, 주주를 호구로 보나”
반도체 경쟁력 약화 우려 목소리도
한종희 부회장 “위기 극복 비결은 본질 집중”
“삼성 반도체, 원대한 꿈 있어… 어려워도 담대히 나갈 것”
“한국 산업의 근간인 반도체가 국가간 패권 경쟁으로 위기인데 삼성전자의 대책은 무엇인가.”
“주주와 상생활동을 지속하겠다는 회사 말을 믿고 투자했는데, 어떻게 주가를 관리하길래 이 모양이냐.”
“신사업 투자와 M&A와 관련해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왜 모든 질문에 준비한 답변으로만 답하고 동문서답하느냐.”
580만명의 동학개미 주주를 보유한 삼성전자의 제54회 정기 주주총회가 15일 열렸다. 이날 주총에서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사업 경쟁력 약화와 국가 간 반도체 패권 경쟁에 대한 주주들의 우려가 잇따랐다. 낮아진 주가와 회사의 신성장 동력과 관련한 주주들의 날 선 질문도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대외적으로 어려운 환경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본질에 집중해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강조했다.
◇ 남녀노소 참석… “주가 하락, 사업 전망 악화 걱정돼서 왔다”
경기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주총에는 백발노인부터 초등학생까지 남녀노소 600여명의 주주가 참석했다.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었던 작년(1600여명), 2021년(900명)보다 적은 인원이 모였지만, 대내외적으로 악화한 경영 환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예년보다 높았다.
3년째 주총에 참석하고 있다는 대학생 김환희(25)씨는 “작년보다 삼성전자 주가가 많이 떨어졌는데, 올해 반도체 시장이 더 악화한다는 전망에 걱정이 돼 회사의 사업 방향을 직접 듣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지난해 이날 삼성전자의 주가는 종가 기준 6만9500원이었으나, 이날 삼성전자의 주가는 오후 1시 기준 5만9900원으로 13.8% 떨어졌다.
부모님을 대리해 왔다는 대학생 김하선(21)씨는 “삼성전자 주식은 없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니만큼 올해 삼성전자의 사업 내용이 궁금해서 왔다”고 말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주총장을 찾은 초등학교 4학년 김모(11)군은 “삼성전자가 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이라고 해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서 왔다”며 “주총은 처음인데 사람들도 많고 신기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사전 전자투표를 진행했고, 온라인 생중계도 병행했다. 올해 주총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강조해 주총 우편물을 전혀 발송하지 않고 전자공고로 대체했다.
◇ DX부문 “로봇·AI·전장 등 신성장 동력 적극 발굴할 것”
주총에서는 한종희 DX부문장(부회장)과 이정배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이 나와 사업 부문별 경영현황에 관해 설명하고 주주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정부 반도체 투자 발표 행사로 주총에 불참했다.
한 부회장은 인사말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위기를 극복해 온 비결은 본질에 집중한다는 진리였다”며 “앞으로도 기술을 통해 고객이 더욱 풍요로운 일상을 즐길 수 있도록 새로운 가치와 가능성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한 부회장은 “지난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삼성전자는 많은 분들의 노력과 격려에 힘입어 처음으로 매출 300조원을 넘어서며 2년 연속 사상 최대 매출을 경신했다”며 주주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어 한 부회장은 “주주환원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 2022년 기준으로 연간 9조8000억원의 배당을 지급할 계획이며,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통합 세트 제품을 담당하는 DX부문의 올해 두가지 과제로 한 부회장은 ▲환경·사회의 지속 가능성 제고와 ▲미래 시장과 라이프스타일 창출을 꼽았다. 그러면서 향후 본격화될 로봇 시대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한 부회장은 “삼성전자는 다양한 로봇에 필요한 핵심 기술 개발을 강화하고 고객이 실생활에서 로봇을 경험하고 유용함을 체감할 수 있는 제품 개발을 확대할 방침”이라며 “로봇 외로도 차세대 AI, 디스플레이, 네트워크, 그린 테크 등 미래 기술 혁신을 통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와 편의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업에 대한 주주들의 날카로운 질문도 이어졌다. 한 주주는 “2020년 한종희 부회장은 국내에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는데, 왜 이를 번복하고 사업을 다시 시작했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한 부회장은 “소비자들의 제품 선택권 확대를 위해 올해부터 국내에 OLED TV를 도입했다”며 “OLED의 경우 작년 하반기 글로벌 본격 도입 이후 회사가 목표한 수준의 판매량을 기록해 올해는 전년 대비 판매 확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신사업 투자와 M&A(인수합병)와 관련해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부회장은 “회사는 중장기적으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성장 동력 육성 발굴도 적극 반영해 지속 성장하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것”이라며 “특히 AI, 로봇, 전장 등 신규 분야는 기존 사업과도 시너지가 매우 큰 만큼 상호 유기적인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 “DS부문, 원대한 꿈 있다… 올해 전화위복 기회로 만들 것”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은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 등 어려운 사업 환경을 강조하며 “모두가 나빠진 환경에서 혼자 잘하기는 어렵지만, DS부문은 위기 때마다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도전과 혁신을 통해 성장의 기회로 전환한 역사가 있다. 올해도 어려운 상황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사장은 “올해도 글로벌 불안 요인 지속으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며, 실물경제 둔화에 따른 IT 수요 부진 본격화와 고객사들의 재고 조정으로 인한 반도체 수요 감소가 전망된다”며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기술 리더십을 위한 R&D 투자는 계획대로 추진하고, 설비 투자는 시황 변동성을 고려하여 탄력적으로 운영하되 클린룸 확보 및 미래 대응 투자는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제품 라인업 효율화 및 라인 설비 보완성 강화 등 투자 효율 제고와 체질 개선을 위한 활동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장기 지속 성장을 추구하는 DS부문에는 원대한 꿈이 있다”며 “경쟁 우위의 차별화된 기술 및 제품 역량과 규모의 경쟁 공간의 제조 경쟁력을 기반으로 고객과 파트너의 성장 및 인류의 인텔리전트한 미래 사회 실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미래를 향해 과감하고 담대히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주주들의 목소리도 줄을 이었다. 한 주주는 “올해 메모리 시장이 반토막 난다는 전망도 있는데, 회복할 때까지 버티는 전략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이 사장은 은 “올해 이후 반도체 시장은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신규 응용처 중심으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며 “5G, AI 등 신규 응용처의 수요 성장이 기대되며 특히 데이터센터는 고성능 CPU 출시, 메타버스 AI 자율주행 등으로 메모리 수요를 지속 견인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답했다.
또 다른 주주는 “우리나라의 산업 근간인 반도체가 미국의 반도체지원법 등 국가 간 패권 경쟁으로 위기인데 정부는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는 것 같다”며 “삼성전자의 대책이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이 사장은 “지난달 말 미국 반도체지원법의 세부 시행령이 발표된 이후, 회사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전략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고 답했다.
◇ “왜 준비한 답변만 읽고 동문서답하느냐” 호통도
안건으로 상정된 한종희 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과 재무제표 승인,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은 모두 원안 가결됐다. 당초 관심이 높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이 이번에 포함되지 않은 데 대해 한 부회장은 “관련해 검토된 바는 없으며 이 자리에서 말하기는 어려운 점 양해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이날 주총에서는 낮아진 주가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한 주주는 “10만원대 가까이 올랐을 때 주식을 샀다”며 “상생활동을 지속하겠다는 회사의 말을 믿었는데 어떻게 5만원대로 내려오도록 주식을 관리하는지 의문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발언에 주주들은 손뼉을 치며 호응했다.
이에 한종희 부회장은 “이사회와 경영진은 지속성장 기반 강화를 위해 시설 투자 확대와 M&A 등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 중이며 이것이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에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주주들은 최근 주가 부진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사주 소각 등 주주가치 제고 조치를 요구했다.
한 부회장 등 질문을 받은 이사들이 준비된 답변만 보고 읽는 데 대한 지적도 잇따랐다. 한 주주는 한 부회장을 향해 “짜여진 답변만 그대로 읽고 주주들의 질문에 맞지 않는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뒤이어 다른 주주도 “왜 모든 답변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끝내느냐”며 “삼성전자가 성장하는 데 주주도 상당한 기여를 했는데 주주를 호구로 보는 것이냐”고 호통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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