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톡]'의료 블랙홀'된 간호법·의사면허 취소법

송연순 기자 2023. 3. 1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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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주도 국회 본회의 직회부…이달 23일 처리 앞둬
의협 반발로 필수 의료강화 등 현안 논의도 '올 스톱'
보건복지의료연대회원들이 지난달 9일 국회 앞에서 열린 간호법안 제정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관련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간호법 제정안'과 '의사면허취소법' 법안 처리가 오는 23일로 예정된 가운데 이를 반대하는 보건의료단체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13개 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와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국회에서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 폐기를 거듭 촉구했다. 보건의료단체는 "더불어민주당은 보건의료인들을 분열시키고 간호사에게만 특혜를 주는 간호법과 위헌적이며 의료인들을 탄압하는 의사면허취소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범위와 처우개선, 숙련된 간호인력 확보를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 등을 담고 있다. 의사면허취소법은 변호사·공인회계사 등 다른 전문직처럼 의사도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으면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이다.

◇간호법·의사면허취소법 왜 반대하나

간호법 제정안의 핵심은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간호인력과 간호에 관한 사항을 독자적 법률로 제정해 간호서비스의 질을 향상하겠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간호사·전문간호사·간호조무사(간호사등)의 면허와 자격, 업무범위를 규정하고 권리 및 처우개선, 인력양성 방안 등을 명문화했다.

기존 의료법에 있던 간호인력 관련 법령과 달라진 점은 우선 간호사의 권리 및 처우개선이 담겼다는 것이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간호사 등의 장기근속 유도 및 숙련인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지원해야 한다. 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간호사 확보를 위해 의료기관에 재정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보건의료단체들은 "간호법 제정은 특정 직역군에 혜택을 주는 것으로, 간호법 제정보다는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근거해 모든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수급 계획과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한간호협회는 "초고령 사회와 주기적인 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해 국민건강과 환자안전을 확보하려면 간호법이 조속히 제정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 면허를 취소하도록 허용하는 의사면허취소법과 관련, 이 법안의 제정을 반대하는 보건의료단체들은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과잉입법"이라고 보는데 반해 시민단체들은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에 대한 특혜로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달 9일 표결을 거쳐 법사위에 계류된 두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으로 지정해 본회의에 부의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다수당의 횡포라며 강력 반발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이유 없이 법안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반박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이 본회의 부의 요구를 받은 날부터 30일 내에 여야 대표가 합의해 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여야가 이날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두 법안 모두 이후 열리는 첫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에 부쳐진다. 민주당은 오는 23일 열릴 본회의에서 두 법안에 대한 투표를 진행할 방침이다. 여당 내에서는 양곡관리법, 간호법 등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법안에 대해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 간호법 핵심 쟁점은

현 의료법은 1951년 제정된 '국민의료법'에서 출발한다.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됐지만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의료법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에 대한 면허 취득부터, 자격요건 등 기본적인 내용부터 의료행위 전반을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기관'에서 의사의 진단과 치료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전통적 의료행위를 효과적으로 규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간호계는 70여 년 된 이 의료법의 틀 안에서는 다양해지는 간호 업무를 제대로 규정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간호법 제정안은 간호사의 처우개선과 업무범위를 종합하고 있다. 간호법 제정 논의가 시작되면서 초기에 발의된 법안은 간호사의 업무를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고 규정했으나 의사들의 반발로 삭제됐다. 이번에 본회의로 직행한 간호법의 간호사 업무범위는 의료법 조항을 그대로 적용해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보조'로 규정했다. 그럼에도 의협 등은 간호법 제정안에 들어 있는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부분에 우려를 표출하고 있다. 간호사들이 '지역사회'란 문구를 근거로 의사의 지도·감독에서 벗어나서 별도의 의료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간호계는 "의료법과 동일하게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정했기 때문에 지역사회 내용이 포함됐어도 의사의 지도·감독을 벗어나 독자적 진료를 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간호사의 권익을 우선하며 간호조무사 등 다른 직역들이 간호사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간호계는 "간호법의 목적은 '간호사 등' 인력의 업무범위와 법적 책임을 보다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취지이므로 타 보건의료직역 업무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 필수 의료강화 논의에도 불똥

간호법이 모든 의료개혁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의사단체는 의사면허취소법까지 간호법과 연동해 반대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의료계의 중지를 모아 추진돼야 할 필수의료 강화 등 의료개혁 논의도 제동이 걸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16일 지역의사 부족, 필수분야 의사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한 의료 인력 확충을 위해 의협과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했다. 그러나 지난달 16일로 예정됐던 의료현안협의체 논의는 의협이 간호법·의사면허취소법이 국회 본회의 안건으로 직회부된 데 반발해 불참을 통보하면서 결국 진행되지 못했다. 복지부는 지난달 27일 의협에 협의체 복귀를 공식 요청했지만 의협은 재차 불참 의사를 밝혔다.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의료 인력 확대 등을 의사단체와 논의해 정하기로 했지만 이 협상이 20일 넘게 중단됐다.

의협은 현안 협의의 중요성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간호법·의사면허취소법으로 새 비대위원장이 선출되고 이에 대해 총력 대응을 주문한 상황인 만큼 당장 현안협의체에 응하기 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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