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인·외면··· 우리는 모두 아동 학대 방조자"

송영규 선임기자 2023. 3. 1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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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오랜 괴롭힘·폭행에 무방비 노출
통계상 한 해 사망자 40명 달해
실제론 이보다 3~4배 이상 많아
주변선 '가족 일'··· 보고도 못본 척
'아이들은 소중한 존재' 인식 필요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서울경제]

“모든 아동 학대에는 가해자가 있다는 것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학대가 일어나던 그 오랜 기간 주변의 묵인, 방임 또는 외면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아동 학대의 방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혜정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아동 학대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이유를 “인식 부족에 따른 무관심”이라고 지적했다. 공 대표가 아동 학대에 관심을 가진 것은 정확히 10년 전 지속적인 괴롭힘과 폭행으로 동거남의 딸을 숨지게 했던 울산 계모 사건, 일명 ‘서현이 사건’ 때문이었다. 사건의 참혹성과 피해 아동의 친모가 그의 지인이었다는 사실은 아동 학대가 자신의 주변에서도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들이 고통받는 일 없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그래서 생겼다.

아동 학대의 특징은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서현이 사건뿐 아니라 같은 해 발생한 ‘칠곡 계모 사건’도, 2020년 벌어진 ‘가방 속 아이 폭행’ 사건도, 얼마 전 일어난 인천 초등생 사건 모두 장기간에 걸친 폭행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보호받을 권리는 가족이라는, 부모라는 무기 앞에 무력했다. 공 대표는 “피해 아동들은 살아 있어도 산 것 같지 않은 삶을 몇 개월, 몇 년에 걸쳐 살아왔다”며 “덜덜 떨며 거리를 돌아다니고 유난히 말라 보이는데도 신고하지 않은 주변인들은 모두 외면자들”이라고 일갈했다.

흔히 아동 학대라고 하면 계부·계모를 많이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친부·친모일 경우가 훨씬 많다. 무려 64%에 달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부모는 자식을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탓이다. 그는 “부모들은 내 아이들은 ‘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러한 삐뚤어진 인식이 결국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동 학대 발생 건수는 일반인의 상상보다 훨씬 많다. 2020년 신고 건수는 5만 2000건에 달하고 이 중 학대로 판정된 것만 3만 7000건이나 된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도 한두 건이 아니다. 통계상 한 해 40명의 아이들이 학대로 목숨을 잃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3~4배 더 많을 것이라는 게 공 대표의 판단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사회적 관심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그는 “예전에는 아이를 때려도 신고하는 경우가 적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아동 학대 피해 아동 발견율도 처음 활동할 때만 해도 아동 학대 초창기에는 1000명당 1.5명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5.2명까지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가장 의지해야 할 사람으로부터 받는 핍박, 사랑하는 이로부터 받는 배척은 온 인생을 송두리째 무시당하는 경험으로 자리 잡는다. 어려서부터 학대를 받은 사람들이 공격성과 좌절감, 대인 관계 결여 등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자신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공 대표는 “학대에 대한 경험은 어느 순간 스멀스멀 올라와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어진다”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는 한 아동 학대는 대물림된다”고 지적했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교육을 통해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두 명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모든 국민이 학대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막을 수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공 대표는 “10년간 법을 바꾸네, 시스템을 바꾸네 했지만 실제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차라리 예비군 훈련장을 찾아 아동 학대의 심각성을 알리는 등 생활 현장 곳곳에서 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동들에게 ‘너희는 맞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공 대표는 “미국에서는 어려서부터 선생님이 때리면 아이들이 신고하도록 가르치고 있다”며 “한국도 아이들이 ‘우리는 소중해’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송영규 선임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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