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새시대]日, 사과 대신 "역대 내각 역사인식 계승" 얘기하는 까닭은?

노민호 기자 2023. 3. 15.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집권 자민당 주류가 '극우'… 내달 지방선거 의식
"역대 정권엔 아베·스가도 포함… 자유롭지 못해"

[편집자주] 한일정상회담이 16일 열린다. 약 4년 10개월만에 일본에서 열리는 한일정상회담은 정치·외교·안보·사회·경제 전 분야에서 교류의 물꼬를 틀 전망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일 양국간 미래지향적 발전이라는 측면을 넘어, 국제질서 재편과정에서 동북아 안보 지형의 한 축인 한미일 지각판을 완성하는 토대를 마련한다는 의미가 있다. 뉴스1는 정치부·외교안보부·산업1부·국제부 기자가 참여하는 도쿄 특별취재팀을 구성, 한일 간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현지 취재로 전한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 News1 DB

(도쿄=뉴스1) 노민호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간의 한일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정부는 이번 회담을 앞두고 국내 여론 악화 등 부담에도 '한일관계 개선' 동력을 이어가고자 일본 측을 배려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을 내놨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일본 측도 이번 회담을 계기로 우리 측 선의에 '호응'해주길 바라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이 이번 회담에서 우리 측 기대에 걸맞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진 여전히 미지수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16일 일본 도쿄를 방문, 기시다 총리와 회담한 뒤 공동 회견에 임할 예정이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우리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에 따른 후속 조치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눌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지난 6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와 관련, '제3자 변제'를 골격으로 하는 해법 최종안을 공식 발표했다.

여기엔 2018년 10~11월 대법원 확정 판결을 통해 일본 피고기업들(일본제철·미쓰비시(三菱)중공업)에 승소한 원고(피해자)들에게 우리 행정안전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에서 민간 기업의 기부금으로 마련한 배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일부 피해자 측 요구와 달리 배상금 재원 마련 과정에 일본 피고기업이 참여할 가능성은 현재 '제로'(0)에 가깝다.

일본 측이 그간 한일 외교당국 간 협의과정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한국 측에 제공한 총 5억달러 상당의 유·무상 경제협력을 통해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같은 이유에서 그간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판결 역시 '인정할 수 없다'며 맞서온 상황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피해자 측 요구사항 가운데 하나인 '진정성 있는 사죄'와 관련해서도 "1998년 '김대중-오부치(小淵) 선언' 등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내놓는 수준에서 갈음했다.

ⓒ News1 DB

우리 정부는 "장기적 관점"에서 일본 피고기업들이 배상금 재원 마련에 참여할 가능성을 열어두곤 있지만, 일본 측의 '사과'까지 함께 담보하기엔 일본 내부 사정상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15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기시다 총리는 이번 한일정상회담 뒤 공동 회견에서도 강제동원 등 한일 간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는 수준의 입장만 재확인할 가능성이 크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사망 이후에도 집권 자민당 내에 극우·우익 성향 인사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올 4월 일본에서 통일지방선거가 치러질 예정인 것과도 무관치 않다. 기시다 총리 입장에선 한일관계보다는 당내외 여론 관리가 급선무가 될 수밖에 없단 것이다.

게다가 일본 특유의 정치 문화도 기시다 총리가 스스로 한일 간 과거사에 대한 '사과' '사죄' 표현을 입에 올리기 어렵게 만들고 있단 지적도 나온다.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수는 "일본 정치의 특징은 전 정권, 특히 같은 당 정권의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은 어기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기시다 정권은 아베·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을 이어 받은 측면도 있기 때문에 거기서 완전히 빠져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호사카 교수는 "기시다 내각이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을 계승한다는 건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전 총리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아베 담화'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엔 강제동원의 근원이 된 일본의 과거 한반도 식민지배와 관련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란 당시 일본 정부 입장이 담겼다.

반면 2015년 '아베 담화'는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해 직접 사과하는 대신 과거 정부의 사죄를 인용하는 데 그쳤다.

또 아베 담화엔 "미래세대에 사죄의 숙명을 지워선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 차원의 추가 사과는 없을 것임을 시사했단 해석을 낳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일관계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양국 관계의 미래상을 담은 새로운 선언을 발표하는 상황이 아닌 한 강제동원 등에 관한 명시적 사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앞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성안 과정에만 8개월여가 걸렸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그동안의 준비기간을 고려할 때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 '윤석열-기시다 선언'이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ntiger@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