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미술관 앞 뜻밖의 미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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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는 분위기에 딱 알맞은 옷을 골라 입기가 쉽지 않다.
어떤 옷은 색이 튀어서 싫고, 어떤 옷은 칙칙해서 불만인가 하면, 이것은 왠지 무겁게 축 처지고, 저것은 나풀거려서 신경에 거슬린다.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나온 탓에 기분이 구겨진 날에 가면 위안받을 전시회가 있다.
그러니 카텔란의 전시를 보러 갈 때는 조금 어색한 게 아니라 아예 노골적으로 상황에 맞지 않는 옷을 골라 입으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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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는 분위기에 딱 알맞은 옷을 골라 입기가 쉽지 않다. 어떤 옷은 색이 튀어서 싫고, 어떤 옷은 칙칙해서 불만인가 하면, 이것은 왠지 무겁게 축 처지고, 저것은 나풀거려서 신경에 거슬린다.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3월의 긴장감을 기억할 것이다. 새로 배정된 교실 앞에서 문을 열기 전 살짝 망설여질 때, 점심시간에 누구와 밥을 먹을지 모르겠거나, 짝에게 먼저 말을 걸까 말까 눈치를 보게 되는 새 학년의 분위기 말이다. 내 경우는 직업상 학창 시절에 이어 사회생활까지 줄곧 학교라는 공간에서 지내다보니, 해마다 3월이면 잠재의식 속에 차곡차곡 쌓였을 낯가림과 예민함이 떠오른다. 그래서 애먼 옷에다 짜증을 내며 까탈스럽게 구는 모양이다.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나온 탓에 기분이 구겨진 날에 가면 위안받을 전시회가 있다.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7월16일까지 열리는 마우리치오 카텔란(1960년생)의 전시, ‘WE’다. 이 전시에서는 미술관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예측 불허의 작품을 여럿 만나게 되는데 미술관 입구부터 입장객을 속일 목적으로 진짜 노숙자 같은 인물상이 놓여 있어 시선을 끈다. 미술관과 노숙자라니,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작품의 제목으로 ‘동훈과 준호’라는 한국 남자의 이름 두개가 붙어 있는 것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누가 동훈이고 누가 준호인지, 또 한 사람은 어디 있는지 둘러보게 된다.
카텔란은 ‘미술이란 이래야 한다’는 통념을 근본부터 흔들어놓은 이탈리아 출신의 설치미술가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의 악명 높은 작품 ‘코미디언’(2019년)을 기억하는가? 수준 높은 미술 장터인 ‘아트바젤 마이애미’의 전시장 벽에 평범한 바나나를 은색 박스테이프로 붙인 작품이었는데 누가 봐도 어이없었다. 바나나가 판매돼야 할 적절한 장소는 전시장이 아니라 슈퍼마켓이기 때문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누군가, 그것도 두 사람이나, 곧 썩어버릴 바나나 작품을 각각 12만달러(1억4000만원)에 샀다는 사실이다. 카텔란의 바나나는 한번 더 논란이 됐는데 전시장에 돌연히 나타난 미국의 행위예술가가 벽에서 바나나를 떼어 먹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갤러리 측에서는 천연덕스럽게 새 바나나로 교체했고 그새 더 유명해진 탓인지 새 바나나 작품을 산 사람은 종전의 가격보다 조금 더 오른 값을 내야 했다.
그러니 카텔란의 전시를 보러 갈 때는 조금 어색한 게 아니라 아예 노골적으로 상황에 맞지 않는 옷을 골라 입으면 어떨까 싶다. 관객으로서 그의 미술 세계에 직접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듯하다. 다만 차림새의 정도가 지나치면 ‘동훈과 준호’처럼 미술관 입구에서 입장이 거부될지 모르니, 주의해야 한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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