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의 팔팔구구] 인생은 황홀한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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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보면 기쁜 일이 더 많을까 아니면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 더 많을까.
그런데 이런 생각을 뛰어넘어 어떤 이는 '인생은 황홀한 기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니 한번 즐거움과 고통을 견줘봐야겠다.
이런 깨달음은 병적인 황홀감이 아니라 간절하게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를 아주 우연한 기회에 풀게 됐다는 생각에 의해 황홀 상태에 이른 것이다.
남들 보기에는 이상한 행동이지만 이유 없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니 병적인 황홀감이라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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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이 만든 허상서 허우적
순간적 쾌락에 빠져 파멸 초래
황홀감은 깨달음의 순간 조우
목욕탕에서 우연히 답 찾아낸
물리학자 아르키메데스처럼
삶을 살아보면 기쁜 일이 더 많을까 아니면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 더 많을까. 부처는 인생은 생로병사의 고(苦)라고 했으니 기쁨보다 고통이 더 클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뛰어넘어 어떤 이는 ‘인생은 황홀한 기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니 한번 즐거움과 고통을 견줘봐야겠다.
즐거움이나 우울함은 감정에 해당한다. 감정은 ‘어떤 일이나 현상·사물에 대해 느끼는 심정이나 기분, 정서는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감정’을 뜻한다. 그러니 여러가지 감정을 묶으면 정서가 된다.
정서에는 기분 좋은 정서도 있고, 우울한 정서도 있다.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과 우울의 감정은 많지만 개인 수준에 따라 견딜 만큼만 해결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 범주 외에 병리적인 정서도 있다. 우선 병적으로 분류되는 정서다. 병적 정서라는 것은 상황에 맞지 않는 정서를 말한다. 기분 좋을 일도 아닌데 기분이 좋다거나 우울할 일도 아닌데 우울해진다는 게 바로 병적 증상의 대표적인 예다.
기분 좋은 정서에는 다행감(경조증·euphoria)·의기양양감(elation)·고양감(exaltation) 그리고 극치에 이르면 나타나는 황홀감(ecstasy)이 있다. 우울감은 비탄(grief)과 우울로 구분하는 정도다.
병적이 아닌 황홀감을 찾아본다. 그리스의 물리학자 아르키메데스 일화가 생각난다.
왕에게 왕관에 금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라는 명을 받은 아르키메데스는 문제를 풀기 위해 노심초사했으나 풀지 못했다. 그는 어느 날 목욕하러 갔다가 탕 속에 들어가면서 문제해결 방법을 찾게 됐다. 탕에 잠긴 자기 몸 부피만큼 물이 넘치는 원리를 발견하고서 너무 기쁜 나머지 벌거벗은 채 탕에서 뛰어나와 펄쩍펄쩍 춤을 췄다고 한다. 이런 깨달음은 병적인 황홀감이 아니라 간절하게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를 아주 우연한 기회에 풀게 됐다는 생각에 의해 황홀 상태에 이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싯다르타 이야기이다. 그는 6년간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순간 그 깨달음의 환희를 주체하지 못해 일주일 동안 부다가야를 껑충껑충 뛰었다고 한다. 이 또한 황홀감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두 사람 모두 그토록 찾고자 했던 진리를 깨달았으니 그 기쁨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었을 테다. 남들 보기에는 이상한 행동이지만 이유 없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니 병적인 황홀감이라고는 할 수 없다. 깨달음을 통한 기쁨의 황홀감인 셈이다.
황홀감을 예술로 승화한 이야기도 있다. 쇼팽은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얻은 모든 환상적인 느낌을 곡으로 만들어냈는데 이것이 바로 ‘환상 교향곡’이다. 이런 황홀감의 극치는 아니더라도 우리 일상생활에서 소소한 즐거움이나 기쁨은 많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소소한 기쁨보다는 황홀감에 가까운 즐거움의 극치를 경험해보고 싶어 한다. 그것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쉽지 않은 황홀감을 맛보고자 가짜 황홀감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여기서 가짜 황홀감이라고 말하는 것은 땀 흘리는 노력 없이 순간적인 쾌락의 황홀감을 연속적으로 맛보기 위해 조작하는 황홀감을 말한다. 조작한 황홀감으로는 약물에 의한 황홀감이 대표적이다. 이런 황홀감은 약효가 떨어지면 금방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황홀감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더 자주, 많이 약물을 취하게 된다. 이는 황홀감이 아니라 약물중독에 따른 부작용일 뿐이다.
이근후 이화여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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