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군가의 꿈속 존재일지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력 버무렸죠”
‘공간 서점’ 등 SF 단편소설 8편 묶어
시간여행 등 다양한 세계관 배경으로
태엽처럼 작동하는 정교한 서사 눈길
시공간 뛰어넘는 마법같은 판타지에
노동권 등 현실 문제도 예리하게 접근
젊은작가상·이상문학상 등 수상 경력
현직 약사… “소설 창작에 시너지 효과”
저 안에 뭔가 있을 것 같은데.
어느 날, 오래된 가게와 그곳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 엉뚱한 상상력이 더해졌다. 만약 공기압으로 움직이는 기압 운송선을 실제로 만들어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압 운송선은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해 압력 차이를 없애려고 하는 공기 성질을 이용한 구상으로, 지하철이 상용화되기 전인 100여 년 전 유럽에서 제작이 시도됐다가 실패한 바 있다. 만약에 기압 운송선이 빛보다 빨리 달려서 시간까지 거슬러 가게 된다면….
“소설의 과학적 배경은 어떤 하나의 이벤트가 일어날 때마다 우주가 계속 갈라진다고 하는 양자론적인 다세계 같은 것이다. 시계공 아버지가 과거로 돌아가 청년을 대신해 최루탄을 맞았을 수 있는데, 아버지가 죽은 우주가 있을 수 있고, 아버지가 살아남은 우주 역시 있을 수 있다. 의뢰인이 차 안에서 깜빡 졸 때 아버지가 문을 두드린 건 아버지가 산 우주에서 아버지를 만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각각 다른 우주가 어떤 이유로 잠깐 통로 같은 게 열려서 아버지가 자식이 잘 지내는지를 잠시 확인할 수도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아버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갈래로 열어두고 싶었다.”
“노동이나 일하는 환경에서 압박받는 오토마톤이 있을 수 있고, 미디어나 SNS의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자신도 그렇게 살아야 될 것 같아서 끌려가는 오토마톤이 있을 수 있다.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한 번 더 자신을 돌아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울러 과거에 이런 일,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한 번 더 환기하고 싶었고, 뭔가를 잊지 않고 기록하고 싶은 느낌도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어쩌면 어떤 사람의 꿈일 수 있다는 가정은 보르헤스의 소설을 비롯해 자주 등장한다. 저는 그 꿈의 주체를 유리 가가린으로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꿈속의 존재라고 하더라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존재할 가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를 풀로 근무하는 것도, 근무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어서 아주 힘들진 않다. 제일 많이 하는 일은 입원 환자의 약을 조제하거나 향정신성 의약품이나 마약류 관리. 관리 약사의 일과 소설 창작이 서로 완전히 달라서 오히려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다. 소설가의 일은 뭔가를 만들어내고 창의적인 쪽이라면, 약사 일은 매우 정확하고 엄밀해야 한다. 약사 일을 규칙적으로 함으로써 소설을 쓰던 머리를 식힌다면, 소설을 쓸 때는 몰입해 상상하며 쓰니까 약사로서의 정해진 일을 식히게 된다. 어렵다기보단 서로 좋게 작용하는 것 같다.”
절대로 실수 없이 정확하게 조제해야 하는 약사의 일과, 매일 일정한 시간에 정확하게 산책했다는 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일화에서 이름을 따온 강아지 칸토를 꾸준하게 산책시키는 일 사이에서, 마치 시계처럼 정확한 김희선의 소설들은 태어난다. 째깍째깍∼.
정확한 약사의 일과 꾸준한 칸토의 산책이 모두 끝난 뒤에, 또는 근무 시간이 바뀌어서 반대 순서로 정확히 이뤄진 뒤에, 그는 저녁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소설의 세계를 찾아 나설 것이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세계를. 책 속으로 뛰어든 ‘네버엔딩 스토리’의 소년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처럼. 그리하여 소설가 김희선의 원주 집에선 밤마다 정확한 소설의 시계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째깍째깍~ 째깍째깍~.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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