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종엽] 듣고팠을 말 “다녀왔습니다”…비극 애도 콘텐츠 나왔으면
조종엽 문화부 차장 2023. 3. 1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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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로 길이 끊어진 산사에서 홀로 굶어 죽은 다섯 살 아이를 관음보살이 데려갔다고 믿는 것은 슬픔을 어찌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흉년 때 자취를 감춘 동네 사람이 원래 살던 하늘나라로 돌아갔다고 믿는 건 죄책감을 어찌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는 공동체의 애도와 치유 기능을 거의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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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로 길이 끊어진 산사에서 홀로 굶어 죽은 다섯 살 아이를 관음보살이 데려갔다고 믿는 것은 슬픔을 어찌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흉년 때 자취를 감춘 동네 사람이 원래 살던 하늘나라로 돌아갔다고 믿는 건 죄책감을 어찌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전쟁에 끌려나가 희생된 자식이 큰 구렁이가 돼 집에 돌아왔다고 믿는 건 그리움을 어찌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전설과 민담이 애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통 시대 공동체는 상상의 이야기를 빌려 비극을 애도하며 끊긴 길을 이었다.
현대에서 이 같은 기능을 맡는 것은 아마 영화나 소설 같은 문화 콘텐츠일 것이다.
최근 국내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초자연적 힘에 의해 벌어지는 재난을 막으려 애쓰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신화적으로 그렸다. 전작들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진 외로움과 그리움을 그려왔던 감독은 이번에는 이격의 거리를 이승과 저승으로까지 벌렸다.
‘사람의 마음의 무게가 사라져서 재난이 생기는 곳’을 찾아 단속하는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그저 여느 날과 같이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문을 나선 뒤 불의의 재난 탓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 그리고 손도 쓰지 못하고 가족과 지인, 공동체의 구성원을 잃었다는 괴로움에 시달렸을 관객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남녀 주인공의 감정선이 다소 뜬금없긴 하지만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작화와 줄거리가 호평을 얻으며 일본에서 관객이 1000만 명 넘게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 6일 만인 13일 관객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
반면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는 공동체의 애도와 치유 기능을 거의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지진이 잦은 일본만큼은 아니어도 우리 역시 비극적 대형 사고가 잦았다. 그러나 이를 소재로 한 대중문화 콘텐츠는 드물다.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어쩌면 실제 일어난 비극적 사고를 대중문화 콘텐츠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금기 같은 것이 작동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같은 금기는 일상 속에도 암암리에 있다. 웬만큼 친한 사람이 아니면 참사를 화제로 꺼내지 않고, 어쩌다 얘기가 나와도 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초면인 사람과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나의 애도를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는 탓이다. 참사에서 정치 사회적 맥락을 제거하려는 것은 잘못이지만 순수한 애도의 표현마저 일상에서 꺼릴 정도로 지나치게 정치화되는 것 역시 한국 사회의 고질이라고 본다.
적절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은 어디선가 곪기 마련이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치는 않다. 공동체가 끊어진 길을 잇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상의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아픔을 승화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녀 왔습니다.’ 비극을 겪은 이들이 너무나도 듣고 싶었을 이 한마디를 대신해주는 영화를 보고 싶다.
현대에서 이 같은 기능을 맡는 것은 아마 영화나 소설 같은 문화 콘텐츠일 것이다.
최근 국내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초자연적 힘에 의해 벌어지는 재난을 막으려 애쓰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신화적으로 그렸다. 전작들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진 외로움과 그리움을 그려왔던 감독은 이번에는 이격의 거리를 이승과 저승으로까지 벌렸다.
‘사람의 마음의 무게가 사라져서 재난이 생기는 곳’을 찾아 단속하는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그저 여느 날과 같이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문을 나선 뒤 불의의 재난 탓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 그리고 손도 쓰지 못하고 가족과 지인, 공동체의 구성원을 잃었다는 괴로움에 시달렸을 관객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남녀 주인공의 감정선이 다소 뜬금없긴 하지만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작화와 줄거리가 호평을 얻으며 일본에서 관객이 1000만 명 넘게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 6일 만인 13일 관객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
반면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는 공동체의 애도와 치유 기능을 거의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지진이 잦은 일본만큼은 아니어도 우리 역시 비극적 대형 사고가 잦았다. 그러나 이를 소재로 한 대중문화 콘텐츠는 드물다.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어쩌면 실제 일어난 비극적 사고를 대중문화 콘텐츠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금기 같은 것이 작동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같은 금기는 일상 속에도 암암리에 있다. 웬만큼 친한 사람이 아니면 참사를 화제로 꺼내지 않고, 어쩌다 얘기가 나와도 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초면인 사람과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나의 애도를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는 탓이다. 참사에서 정치 사회적 맥락을 제거하려는 것은 잘못이지만 순수한 애도의 표현마저 일상에서 꺼릴 정도로 지나치게 정치화되는 것 역시 한국 사회의 고질이라고 본다.
적절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은 어디선가 곪기 마련이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치는 않다. 공동체가 끊어진 길을 잇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상의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아픔을 승화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녀 왔습니다.’ 비극을 겪은 이들이 너무나도 듣고 싶었을 이 한마디를 대신해주는 영화를 보고 싶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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