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고립’ 취약층의 죽음, 복지사각 찾는 제도에 ‘사각’
전문가 “복지 사각지대 개념 재설정…원인부터 파악해야”
지난 7일 서울 동대문구 한 아파트에서 40대 뇌병변 장애인과 70대인 그의 이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별다른 일을 하지 않은 채 각각 보훈명예수당과 기초생활수급자 급여를 받았고 주택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외부와 교류는 드물었고 집 주변으로 악취가 새어 나올 정도로 폐쇄적인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동대문구는 이들에게 장애인 지원을 안내해주고 청소를 도와주겠다는 제안도 했으나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7월에도 서울 도봉구 한 다세대주택에서 기초생활수급 지원 대상인 노부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남편은 알코올 중독, 부인은 조현병이 있어 담당 지자체의 집중관리 대상이었지만 스스로 도움을 거부했다고 한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외부와 단절된 채 생활하다 사망한 후 뒤늦게 발견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이 중에는 공적 복지 서비스를 거부한 사례도 적잖아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정책을 짜야 할 때라는 제언이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배제를 보는 또 다른 시각: 도움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2022년 4월) 보고서를 보면, ‘사회 참여, 자본, 인식조사’(2021년) 응답자 중 금전적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희망하지 않는 ‘자발적 배제·고립 집단’은 21.7%를 차지했다.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도움을 희망하지 않는 집단도 20.1%였다. 5명 중 1명은 경제·심리적으로 힘들어도 외부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 셈이다.
허선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는 기초생활도 영위하기 힘든 분들이 지원을 거부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이분들이 진짜 복지 지원을 거부했는지, 그랬다면 신용불량이나 빚 때문에 추적을 피하려고 외부 접촉을 최소화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삶의 의욕을 잃은 것인지 등 정부가 심층적으로 원인 파악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 2006년 긴급복지지원 제도를 도입하는 등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복지망을 강화해왔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망이 느슨해지고 자발·비자발적 고립가구가 증가하면서 구멍이 드러났다. 지난 11일에는 경기 김포시 한 아파트에 불이 나 80대 어머니와 5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어머니는 화재 이전에 숨졌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들은 쓰레기를 집 안에 쌓아두는 등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투병생활과 생활고를 겪다 숨진 채 발견된 ‘수원 세 모녀’는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는데, 이들도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다.
전문가들은 소득·재산을 기준으로 한 까다로운 복지 대상 선별 체계, 당사자 신청주의, 낮은 급여 수준, 낮은 복지 권리의식 등이 공적 복지 서비스에 대한 신뢰·효능감을 낮추고 결국 진입 장벽 역할을 해왔다고 본다. 김승연 서울연구원 경제사회연구실 연구위원은 지난 2월 서울복지재단이 발행한 ‘복지이슈투데이’에서 “가족관계가 느슨해지는 상황에서 기존의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사각지대의 개념 설정에서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김향미·김태훈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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