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장사” 혼쭐나던 국내 은행, 높은 대출 비중이 되레 ‘안전판’
90만원 이상을 대출로
절반 안 되는 SVB와 대조
유가증권 자산도 20% 미만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막대한 채권 투자 손실을 보고 결국 폐쇄되면서 국내 은행의 안전성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은행은 SVB 같은 특화은행과 달리 예금 대비 대출의 비율이 높고, 전체 자산에서 채권 등 유가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SVB와 유사한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
14일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SVB는 코로나19 대유행기에 급증한 예금을 미 국채 등 만기 10년 이상의 장기 채권에 주로 투자했다.
SVB의 2021년 말 자산 규모는 2년 전보다 약 141억달러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 71.3%는 유가증권 부문에서 늘었고, 대출 증가는 23.8%에 그쳤다.
자산운용이 채권에 편중돼 있다 보니 SVB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채권 가격 하락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SVB는 고객의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18억달러(약 2조원)의 손실을 감수하고 채권을 매도했고, 이 사실을 공개한 뒤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이 일어나 은행이 결국 폐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금을 주로 채권에 투자한 SVB와 달리 국내 은행은 예금 대부분을 대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국내 주요 은행의 총수신 대비 총여신의 비율(여·수신 비율)은 90% 이상이었다. 예금을 100만원 받으면 90만원 이상을 대출했다는 뜻이다.
KB국민은행의 여·수신 비율은 99.5%였고, 신한은행 95.9%, 하나은행 91.6%, 우리은행 96.3%, NH농협은행 92%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SVB의 여·수신 비율이 42.5%에 불과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국내 은행은 ‘이자 장사를 한다’ ‘예대마진을 추구하며 안일하게 영업을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처럼 금융시스템 위기가 우려되는 상황에선 예대마진을 추구한 것이 오히려 은행을 지켜주는 안전판 역할을 한 셈이다.
국내 은행도 금리 상승 때문에 유가증권 투자에서 많게는 5600억원 정도(지난해 3분기 누적) 손실을 봤지만,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미만이라 타격이 크지 않다. 지난해 3분기 신한은행의 총자산 대비 유가증권 비중은 18.7%에 그쳤고 NH농협 17.8%, KB국민 16.2%, 하나 16%, 우리 15.9%로 조사됐다.
국내 인터넷전문은행도 이번 SVB 사태의 파장에서 안전한 것으로 평가됐다.
금융감독원 점검 결과 인터넷은행의 1인당 평균 예금은 예금자보호한도(5000만원)를 한참 밑도는 200만원대에 그쳤다.
SVB는 예금 규모가 큰 기업 고객이 돈을 인출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처했으나 국내 인터넷은행은 소액 예금이 많아 단기간 내 자금 이탈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금감원은 보고 있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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