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김건우 “월급쟁이 가수 싫어 프리랜서 선택… 다양한 경험 쌓고 싶어”

이강은 2023. 3. 1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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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마술피리’로 첫 국내 공연 나선 테너 김건우
늦깎이 성악가로 유럽 무대 중심 활동
역량 탄탄해 “노래와 연기 완벽” 호평
“콩쿠르 우승 타이틀 물론 영광이지만
정말 내 것 가지고 이름 알리고 싶어”
무대 단짝 김기훈과 연기 호흡 ‘척척’
“서로 ‘진짜 재미 있는 공연’이라 말해”
“‘오페랄리아 콩쿠르 우승’ 타이틀은 당연히 영광스럽지만 그걸 등에 지고 갈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어요. 내 이름을 알리더라도 정말 내 것을 가지고 알려야지 누군가 손을 잡고 끌어줘서 알리는 건 원하지 않았습니다. (소프라노에게) ‘제2의 조수미’란 말이 제일 무섭다고 하잖아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사람들이) 제2의 조수미로만 기억하고 누군지 잘 모르니까요.”
오페라 본고장 유럽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는 테너 김건우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오페라 ‘마술피리’의 왕자 ‘타미노’ 역을 맡아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영국 등 유럽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테너 김건우(38)는 뒤늦게 프로 성악가의 길을 걷게 됐지만 자기 음악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서울시오페라단이 오는 30일부터 4월 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올리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무대에 서려고 지난 8일 귀국하자마자 맹연습 중이다. 1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세계일보와 만난 김건우는 2019년 홀로서기에 나선 이후 국내 오페라 무대는 처음이지만 모두들 따뜻하게 맞이해줘 편하단다. “외국에서는 제가 리허설 장소에 도착하면 색안경을 끼고 봐요. 마치 ‘네가 뭔데 주역인지,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는 시선으로. 그런데 여기선 대부분 처음 보는 분들인데도 편하게 안아주시니 부담감이 확 줄고, 우리 말로 대화하니 ‘진짜 동료들이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웃음)”

그는 앞서 2015년 몬트리올 콩쿠르 우승에 이어 이듬해 세계적 권위의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청중상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다. 유럽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러브콜이 잇따랐지만 세계 3대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의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을 택해 2년 동안 오페라 가수로서 역량을 단단하게 다졌다. 프로그램 수료 직전인 2019년 7월,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도니체티 오페라 ‘연대의 아가씨’에 극고음을 요구하는 주인공 토니오 역으로 데뷔하는 기쁨을 맛봤다.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 수료 이전 메인 무대 주역을 따낸 것은 자신이 처음이었던 데다 ‘노래와 연기가 완벽했다’는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무대로 인해 여러 극장에서 전속 계약 제의가 들어왔지만 김건우는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늦깎이 신인가수였음에도 ‘안정’보다 ‘모험’을 추구한 것이다.

“극장들이 작품 주역을 섭외할 때 경력자를 원하는 만큼 위험한 선택을 한 셈인데,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상 월급쟁이 가수가 되면 안정적이긴 하겠지만 매번 같은 사람들과 비슷한 작품만 올리기 때문에, 힘들어도 여러 무대에서 다양한 경험을 많이 쌓고 싶었습니다.”

그런 결단은 오페라 본고장에서도 통할 만한 탄탄한 실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독립한 이후 얼마 안 돼 터진 팬데믹 사태 와중에도 그가 유럽의 여러 극장 무대에 주역으로 설 수 있었던 이유다. 전문 가수가 된 후 한국 오페라 무대는 처음인 ‘마술피리’에서도 주인공 ‘타미노’ 역을 맡았다. 그는 오페라 가수로서 자신만의 강점에 대해 “200여년 전의 ‘벨칸토(창법)’ 테너인데 2000석이 넘는 대극장에서도 노래가 오케스트라 소리를 뚫고 나오는 테크닉을 높이 평가해주는 것 같다”며 “다양성 가치를 중시하는 시대에 아시아인 테너라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마술피리’는 모차르트가 남긴 마지막 오페라다. 귀족들이 즐기던 이탈리아 오페라와 달리 주로 독일적 소재와 독일어로 만들어져 서민들이 좋아한 ‘징슈필’ 오페라다. 대사를 노래하듯 말하는 레치타티보와 달리 연극적 대사를 하는 게 특징이다. ‘밤의 여왕’ 부탁으로 왕자 ‘타미노’가 여왕의 딸 ‘파미나’를 악당에게서 구출하러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에 가곡·민요·종교음악 등이 어우러지며 초연 당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번 공연에선 노래 외 대사를 한국어로 하기 때문에 색다른 맛이 예상된다.

김건우는 “처음에는 우리 말로 대사를 한다는 게 낯설어 갸우뚱했다”면서도 “한국 관객들이 (오페라를)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우리(가수)들이 잘 표현하면 어설프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타미노’와 단짝인 ‘파파게노’ 역의 김기훈(바리톤)과 함께 연기하는 것도 처음인데 워낙 실력 있는 친구라 호흡이 잘 맞는다. 서로 ‘진짜 재미있는 공연이 될 것 같다’고 했다”며 기대감을 높였다.

출연진의 면면은 화려하다. 김기훈 역시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한국인 최초 우승자다.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올림픽찬가를 부른 소프라노 황수미가 김순영과 함께 ‘파미나’를 번갈아 연기한다. 또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주역 가수로 활약한 바리톤 양준모(‘파파게노’ 역), 독일 하노버 극장 등에서 주역으로 활약하는 테너 박성근(‘타미노’ 역), 프랑크푸르트 극장에서 활동 중인 소프라노 김효영(‘밤의 여왕’ 역) 등 세계 정상급 성악가가 다수 출연한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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