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의 ‘경양식 만찬’ [만물상]

선우정 논설위원 2023. 3. 14.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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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소스가 아닌 케첩을 위주로 맛을 낸 스파게티를 ‘나폴리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탈리아가 아니라 일본 요코하마에서 탄생했다. 일본인이 나폴리 파스타를 변형한 일본식 파스타다.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하야시라이스, 돈카츠, 멘치카츠, 함바그 등 국적이 애매한 음식이 일본에 많다. 한국에선 “경양식”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선 그냥 “요쇼쿠(洋食)”라고 한다. 진짜 서양식은 “프랑스식” 등 나라 이름을 붙인다.

▶일본인은 개항 전까지 생선 외엔 육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런 식문화를 바꾼 대표적 음식이 돈가스(’돈카츠’의 한국 표준어)다. 개항 직후 들어온 비프 커틀릿을 일본 사정에 맞춰 변형했다. 쇠고기 대신 돼지고기, 익힌 채소 대신 생양배추, 수프 대신 된장국, 포크와 나이프 대신 젓가락을 사용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비프 커틀릿보다 돈가스를 훨씬 많이 먹는다. 경양식은 서양 문명을 발전적으로 변형해 성장한 일본 근대의 상징 중 하나라고 한다.

▶경양식 ‘원조집’이 있다. 도쿄 중심가 긴자의 경양식 노포 ‘렌가테이(煉瓦亭)’다. ‘벽돌집’이란 뜻이다. 창업자 집안이 4대째 128년 동안 운영하고 있다. 이 집에서 1905년 돈가스의 원형이 탄생했다고 한다. 오믈렛에 볶음밥을 넣은 오므라이스의 원조로도 꼽힌다. 일본 양식의 발상지 소리를 듣는다. 이 식당이 또 다른 역사를 기록하는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16일 여기서 만찬을 갖는다고 한다.

▶도쿄엔 세계 최고급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미슐랭에 이름을 올린 최고급 한식집도 도쿄에 있다. 일본에서 경양식은 비싸야 3000엔 수준이다. 게다가 렌가테이는 비좁기까지 하다. 도쿄 특파원 시절 한국 친구들을 데리고 몇 번 방문했는데 음식 맛이 역사를 따라가지 못한다고들 했다. 일본에서 손님 대접을 ‘오모테나시’라고 한다. 그 기준에서 보면 이곳은 국가 정상의 만찬 장소라고 할 수 없다.

▶한국 대통령의 방일은 12년 만이다. 윤 대통령이 징용 문제 해법을 어렵게 결단했기 때문에 한일 관계가 겨우 정상화의 길에 진입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반대 여론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성대한 만찬이 박수 받을 때까지는 한국과 일본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지 모른다. 윤 대통령은 소주와 맥주를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소박한 곳에서 소탈하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한다고도 한다. 도쿄의 싸고 비좁은 벽돌집 식당은 그러기에 어울리는 곳이다. 그래도 성과는 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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