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이러면 어떻게 해요”…학부모도, 아이도 울리는 ‘휴원’

박홍주 기자(hongju@mk.co.kr) 2023. 3. 1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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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에 유치원생 18% 감소
4년새 500곳 가까이 문 닫아
까다로원 폐원에 꼼수 휴원도
[사진 =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에 사는 30대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휴원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진땀을 뺐다. 개학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에서 유치원이 문을 닫으면 아이는 어떻게 돌봐야 할지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다행히 원래 다니던 유치원보다 조금 더 먼 곳에 자리가 있어 아이를 보냈다”면서도 “6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급작스럽게 낯선 유치원에 다니게 돼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저출생 현상으로 인해 문을 닫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늘어나는 가운데, 까다로운 폐원 조건을 피하기 위해 휴원을 선택하는 곳도 늘고 있다. 일선 유치원들은 수익이 나지 않아 운영을 계속하기가 힘들다고 주장하는데,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갑자기 휴원 통보하는 건 무책임한 처사”라는 불만이 나온다.

14일 한국교육개발원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유치원은 지난 2018년 9021개에서 지난해 8562개로, 어린이집은 3만9171개에서 3만923개로 줄어들었다. 4년 사이에 유치원은 5.1%, 어린이집은 21.1%가 문을 닫은 셈이다.

까다로운 폐원 조건을 우회하는 휴원 역시 늘어나고 있다. 경기도의 1295개의 공립유치원 중 휴원을 신청한 곳이 지난 1월 기준 91곳을 넘어섰다. 2021년 37개, 2022년 54개에 이은 가파른 증가세다. 학기 시작 전까지 5명 이상 원아 모집에 실패할 경우 휴원을 해야 해 실제 휴원 유치원 수는 이보다 더 늘어났을 수 있다.

유치원들의 휴원이 이렇게 늘어난 일차적인 원인은 원아 수 감소 때문이다. 전국의 유치원 원아 수는 2018년 67만5998명에서 지난해 55만2812명으로 18.2% 뚝 떨어졌다. 어린이집 원아 수 역시 같은 기간 141만5742명에서 118만4716명으로 16.3% 감소했다. 저출생으로 인한 절대적인 원아 수가 줄어들다보니 운영난을 겪는 유치원·어린이집 역시 많아진 것이다.

운영난을 맞은 유치원들이 폐원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폐원 규제’도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립유치원도 폐원하기 위해서는 학부모 동의 의견, 원아 전원 계획 및 학습권 보호 방안 등을 교육청에 보고해야 한다. 학기 중에는 아이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폐원도 제한된다. 어린이집 역시 혼란 방지를 위해 2개월 전에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알리고, 지방자치단체에 보육 영유아 전원 계획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교육과 돌봄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장치지만, 원아 수 감소로 과열 경쟁 상태를 맞은 유치원·어린이집들에서는 “적자가 나도 폐업할 수 없는 구조”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선 유치원들은 폐원보다 선택이 쉬운 휴원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도 유치원·어린이집의 휴원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제나 감독을 하지 않고 있다.

서울의 한 유치원 관계자는 “원아가 점점 줄어드는데, 인건비·건물 자재 등 사용 비용은 오히려 늘어나서 운영할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원아 한 명이 아쉽다보니 학부모가 저녁 늦게까지 아이를 맡기는 등 무리한 부탁을 해도 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학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다른 유치원으로 떠나면 당장 적자를 볼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위성순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 회장은 “과거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던 시절에는 500세대당 유치원을 하나씩 할당해 공급했는데, 아이가 줄어드니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 것”이라며 “기본적인 경비도 조달하기 힘든데도 폐원하기 어려우니 휴원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위 회장은 “운영이 어려운 어린이집은 폐원할 수 있도록 하고, 대신 용도변경 등을 허가해서 해당 부지나 건물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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