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일해라” MZ 반발에 한발 물러섰다…尹, ‘근로시간 개편’ 보완 지시
‘주 69시간’만 부각…MZ “조선시대 노비냐”
尹대통령 “MZ 의견 면밀히 들어 보완 검토하라”
韓총리도 “국민께 정확하고 충분히 설명하라”
고용부, ‘오해’ 있다며 “포괄임금 오남용 강력 대응”
한국노총은 “완전 폐기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에 대해 보완 검토를 지시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일이 몰리 때에는 주 최대 69시간 일할 수 있게 하고, 일이 없을 때에는 ‘제주 한 달 살기’도 가능하다고 설명했지만, 청년층을 중심으로 ‘주 최대 69시간’ 근무에 강한 반발이 쏟아져 나오자 한발 물러선 것이다. 고용부는 청년과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정식 장관 “요새 MZ 세대들은 ‘회장 나와라’ 한다”고 했지만…반발 거세
윤 대통령은 이날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에 대해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 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앞서 고용부는 지난 6일 주 52시간제 근무제 틀은 유지하되, 연장근로 단위를 ‘월·분기·반기·연’으로 다양화하는 내용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연장근로 총량을 관리하기 위해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 또는 ‘주 64시간 상한’을 의무화했다. 고용부는 일이 많은 주에는 최대 69시간 일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이용해 일이 없을 때에는 장기 휴가를 떠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식 장관은 지난 6일 근로시간 제도 개편 브리핑에서 ‘주 최대 69시간 근무’가 강조되며 장시간 근로가 확산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자 “요새 MZ세대들은 ‘성과급이 무슨 근거로 이렇게 됐냐’고 ‘부회장 나와라, 회장 나와라’고 하는 등 권리의식이 굉장히 뛰어나다”며 “과거의 나이 많은 기성세대와 다르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최근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한 SK이노베이션이 정유, 화학, 배터리, 소재 등 계열사별로 성과급을 차등 지급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일부 직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인스타그램으로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자며 성과급 불만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에서는 2021년 젊은 직원들이 ‘성과급 산정 기준 투명 공개’를 주장하며 경영진에 직접 문제를 제기했다. 삼성전자에서도 입사 7년차 직원이 연봉 산정 방식 오류를 지적하며 공개적으로 대표이사에게 글을 보내기도 했다. 이 장관은 이를 근거로 MZ 세대는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벗어나는 장시간 근로를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 방안을 청년층이 좋아한다는 주장도 여당에서 나왔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8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2030, 청년층은 다들 좋아한다”며 “노동을 선진 문화로 바꿔가야 한다.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을 하고 있는 제도”라고 했다.
◇1월 여론조사에서 30대 찬성 34% 뿐…6070서 제도 개편 찬성 높아
그러나 정작 MZ 세대의 여론은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이 발표된 지난 6일 직장인들이 익명으로 이용하는 앱 ‘블라인드’ 내 게시판에는 한 통신사 직원이 욕설을 뜻하는 한글 초성과 함께 “너나 일해라 69시간, 아침부터 욕 나오네”라는 글을 올렸다. “윤석열 보유국에 52시간은 사치다” “무슨 조선시대 노비냐”는 댓글도 달렸다.
여론조사 결과도 부정적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월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주52시간으로 제한된 근로시간을 최대 69시간까지 허용하되, 그만큼 다른 주의 연장근로시간을 줄이는 방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찬성한다”는 45%, “반대한다”는 48%로 집계됐다. 20대(18~29세)는 찬성 39%, 반대 57%였고, 30대에서는 찬성 34%, 반대 60%로 집계됐다. 찬성 비율은 은퇴한 연령인 60대(67%)와 70세 이상(54%)에서 높았다.
이른바 ‘MZ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도 한국노총·민주노총에 이어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도 정부에 부담이 된 것으로 해석된다. 새로고침 노협은 지난 9일 “고용노동부의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는 장시간 노동 탈피를 위한 국가의 제도적 기반 마련이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해 시기상조”라고 했다. 또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는 노동자의 근로조건 최저기준을 상향해왔던 국제 사회의 계속적인 노력과 역사적 발전 과정을 역행 내지 퇴행하는 요소가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과 관련한 여론조사를 실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국민이 어떤 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파악해 제도 보완 방안을 결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노동계가 욕하는 제도 개편 철회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고용부에 “국민 여러분께 정확하고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지시하며 홍보를 강조했다.
또 한 총리는 제도 개편 취지에 대해 “집중 근로시간에는 집중적으로 일하고 이후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다”며 “정부는 철저한 법 집행으로 시간외수당 미지급, 임금 체불, 건강권 보장 소홀과 같은 문제가 절대로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고용부 “일부 비현실적 가정 토대로 오해…포괄임금 오남용 강력 대응”
고용부는 윤 대통령이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 보완 검토를 지시하자 “청년 등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찾아가 소통하겠다”며 “제도 개편방안 내용과 우려하는 문제에 대해 충분히 정확하게 설명드리겠다”는 내용의 입장을 밝혔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이 담긴 근로기준법 개정안 입법예고 기간인 다음달 17일까지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고, 보완방안도 강구하겠다고 했다.
다만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 취지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고용부는 “제도 개편방안과 관련해 일부 비현실적 가정을 토대로 오해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청년 세대들은 정당한 보상 없이 연장근로만 늘어나는 것 아닌가, 일한 후 과연 쉴 수 있을지 등 제도가 악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법으로는 ‘제도 악용’을 막기 위해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막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고용부는 “정당한 보상을 회피하는 ‘공짜야근’을 낳는 포괄임금 오남용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해 노동질서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고용부는 홈페이지에 개설한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에서 포괄임금·고정OT(Over Time) 오남용 신고를 접수하고 있다. 익명 신고가 접수된 사업장은 사전조사를 거쳐 지방고용노동청의 감독 또는 하반기 기획감독을 받게 된다. IT업계에 대해서는 현재 기획감독을 벌이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마련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 자체를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대변인 구두 논평에서 “대통령 발언은 주69시간 노동제를 폐기하겠다는 게 아니라 포장지를 좀더 그럴싸하게 만들라는 것일 뿐”이라며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 완전 폐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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