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오부치 선언이 마지노선"...日, 韓정부 입장 수용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지난 6일 우리 정부의 일제강제 징용 피해배상 해법 발표 이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직접 언급한 것은 한국 외교부의 입장을 수용한 결과인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외교부가 일본 측에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협상 마지노선'으로 내세웠던 의도를 피해자들이 얼마나 공감하느냐가 정부의 대안인 '3자 변제안'의 성패를 가를 변수가 될 전망이다.
외교부는 3자 변제안과 관련한 협의 과정에서 일본 역사인식의 기준선으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일본 측에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 식민지배'만을 특정해 최초로 발표한 반성·사죄 표명이라는 데 우리 외교부가 의미를 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일본 대중 문화 개방 등 미래지향적 양국 관계의 계기가 됐던 것도 고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1998년 10월8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공동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가리키는 말이다. 기존 1995년 8월15일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전후 50주년 담화 등에서 일본 측이 아시아에 대한 사죄와 반성 등을 표명했던 것과 달리 사죄·반성의 대상을 한국 국민으로 좁혔다.
그 이후 2010년 8월10일 간 나오토 총리가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해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라며 한국 식민지배의 강제성을 인정했고 문화재 반환 등 구체적인 과거사 현안 진정을 위한 의사를 표명하는 등 일본 내각에서 '한국 식민지배'로 과거사를 특정한 담화들이 나왔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6일 윤석열 정부의 제 3자 변제안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내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할 것을 확인한다"고 말하면서 일본 정부의 역대 담화 중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단독으로 앞세웠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역사 인식에 관해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 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다만 3자 변제안과 관련해 일본 측의 담화 등에서 사죄·반성이 명시된 것은 없다.
달리 보면 한일 양국 외교 당국이 과거사와 관련한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나온 절충점이 '김대중-오부치 선언'이었던 셈이다. 2018년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등 15명의 원고에 대한 일본 기업의 강제징용 배상 확정 판결을 내렸지만 일본 측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계기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며 배상, 사죄 불가 입장을 고수해 왔다.
3자 변제안은 외교부가 일본측의 대(對) 한국 수출 규제 강화 등 한일 관계 경색과 강제 징용 피해자 대부분이 90대 고령인 상황을 감안해 신속 해법으로 제시한 방안이다. 정부 산하 재단 등이 국내 한일 청구권 수혜 기업 정부로부터 기금을 조성해 40억원 규모로 알려진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고 한일 양국 경제계가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기금에 공동 조성한다는 내용이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의를 받고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의 변제금을 수령할지 여부는 원고분들 개개인의 법적 권리이고, 각자의 입장에 따라 결정하실 사안"이라고 답했다. 다만 임 대변인은 "정부는 앞으로도 재단과 함께 피해자와 유족 한 분, 한 분을 직접 찾아뵙고 진전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면서 이분들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강제징용 생존자 3명과 외교부 장차관 간 면담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했다.
김지훈 기자 lhsh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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