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주 69시간 근로시간 개편 비현실적'…한발 물러선 尹

이정현 기자 2023. 3. 1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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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 MZ세대와 소통 부족 지적…고용부 "제도 보완 방안 강구"
기득권 노조와 대치 속 MZ 끌어안기 행보…한국노총 "완전 폐기" 주장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울산 남구 울산항만공사에서 열린 울산 경제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3.3.9/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주 최대 69시간 근무'를 가능하게 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MZ세대와의 '소통'을 강조하면서 현재 정부안으로 추진 중인 근로시간 제도 개편에 수정·보완을 지시한데 따른 것이다. 주 최대 69시간 근무를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대신, 장기휴가 사용이 가능하다는 개편 내용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MZ세대의 반발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정부가 이른바 강성 기득권 노조와의 '강 대 강' 대치 속 MZ세대를 껴안아야 한다는 정무적 판단도 깔려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3.3.6/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尹 "근로시간 제도 개편, MZ세대 의견 들어 보완"…고용부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정부안으로 추진 중인 근로시간 제도 개편과 관련해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이 지난 6일 입법 예고한 근로자의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및 유연화 법안과 관련해 이같이 지시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한 고위 관계자는 "법안 관련 국민 소통 노력이 부족했고, 특히 근로시간 선택임에도 강제처럼 인식되게 했다. 부처가 국민께 소상히 알리고 설명하는 절차가 미흡했다"며 "청년들과 더욱 더 소통하고 경청하라는 지시"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와 관련 주무부처인 고용부는 입장문을 내 "제도 개편방안과 관련해 일부에서 '청년세대들은 정당한 보상 없이 연장근로만 늘어나는 것 아닌가, 일한 후 과연 쉴 수 있을지' 등 비현실적 가정을 토대로 제도가 악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고용부는 "근로시간 개편안은 현재 입법예고 기간(3.6~4.17)인 만큼 청년 등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에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찾아가 소통하겠다"면서 "이번 제도 개편이 근로자가 시간 주권을 갖고, 기업문화를 혁신하는 기회가 될 수 있게 각계각층의 의견수렴을 거쳐 보완하는 방안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또 "'공짜야근'을 낳는 포괄임금 오남용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해 노동질서를 바로잡겠다"고 덧붙였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주 69시간 가능' 근로시간 개편 정부안…MZ "현실 모르는 소리"

지난 6일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의 핵심은 노사 합의를 전제 하에 현재 '1주 단위'로 된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럴 경우 특정 시점에 업무가 몰릴 수가 있는데, 한주 최대 69시간 근로가 가능하다. 물론 연장근로 총량범위는 넘을 수 없어 해당 주를 제외한 다른 주에 연장근로는 줄어드는 구조다.

휴일을 적립해 장기휴가나 안식월 등을 사용할 수 있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추진하는 안도 내놨다. 근로자가 원하는 경우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에 대한 보상을 시간으로 저축해 휴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노사가 합의한 경우에 근로자가 임금-시간 적립을 선택하면 사업주는 임금에 갈음해 휴가를 지급하는 식이다.

적립한 시간은 '저축휴가(개념 신설)'로 근로자가 원하는 시기에 사용하되 단,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휴가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 정산기간에 사용하지 못하고, 남은 근로시간은 정산(소멸)하거나 이월된다.

하지만 이번 제도 개편안에 대한 MZ세대 반응은 싸늘했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지난 9일 논평을 내고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는 국제 사회 노동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반대한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우리나라에 상대적으로 많은 공휴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선진국들과 비견해 평균근로시간이 더 많은 이유는 연장근로 상한이 높고, 산업 현장에서 연장근로가 빈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용노동부의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는 장시간 노동과 과로 탈피를 위한 국가의 제도적인 기반 마련이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도입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했다.

'MZ노조'라고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주축으로 한 신생 노동조합 협의체로 지난달 21일 정식 출범했다.

한 시민단체에서는 현 '주 52시간 근무'제도 안에서도 연차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데 정부 개편안에 따른 '근로시간을 선택적으로 늘리는 대신, 장기휴가를 가능하게 하겠다'는 방안은 현실성이 결여된 정책이라 꼬집기도 했다.

지난 12일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지난해 12월7일부터 14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휴가 제도 사용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3명은 법정 유급휴가도 자유롭게 못쓰고 있다"며 "정부 개편안은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법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할 때 몰아서 노동자를 쓸 수 있는 '과로사 조장법'"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은 지난 6일 서울 중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붙은 취업 공고의 모습. 2023.3.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尹, MZ세대 끌어안기…'노조 지원사업' 대상에 신규 노조도 포함

윤 대통령이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과제인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수정·보완을 검토한 배경에는 'MZ세대'가 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이번 근로시간 개편 정부안이 소위 '과로사 조장법'이라는 혹평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 속 다분히 생산 활동에 전면에 서있는 청·중년층 여론을 의식한 행보라는 평이다.

여기에는 이른바 강성노조로 대변되는 기득권 노조와 대치 상황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노-정 관계가 강 대 강으로 맞붙고 있는 상황에서 MZ세대까지 등을 돌릴 경우 떠안게 될 정치적 부담을 고려한 것 아니겠냐는 얘기다.

정부는 노사법치 확립을 내세우며 현재 거대노조와 전면전에 나선 상태다. 노조회계 투명성 강화나 불법노조 행위에 대한 엄정 대응이 대표적이다.

그 와중에 MZ노조 등 신규 노조에 대한 행보는 온도차를 보인다. 고용부는 최근 노조회계 투명성 강화와 관련, 양대노총에 대한 노조 지원사업 예산을 절반으로 줄이는 내용의 '노동단체 지원사업 개편방안'을 확정했다.

개편안의 핵심은 그동안 해당 지원사업의 90%를 독점해 온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할당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데 있다.

그러면서 그동안 '노동조합'으로 한정했던 노동단체 지원사업 수행기관을 '근로자로 구성된 협의체 등 기타 노동단체'까지 포함함으로써 지원대상 범위를 확대했다. 사실상 양대노총이 양분해 온 지원사업 대상자 범위에 새로운 노조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러면서 아예 올해 지원사업 예산으로 배정된 44억원의 예산 중 50%를 근로자협의체, MZ노조 등 새로운 노동단체에 지원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학계 한 교수는 "그저 개편안과 관련해 정책적으로 수정‧보완할 내용이 있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방식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현재 노정관계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정무적인 판단을 내린 게 아니겠냐"고 전했다.

한편 한국노총은 이날 대변인 구두 논평을 통해 "대통령 발언은 장시간 압축노동과 과로사를 조장하는 주69시간 노동제를 폐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포장지를 좀더 그럴싸하게 만들라는 것일 뿐 변한 것이 없다"며 "정부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의 완전폐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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