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고립’ 선택한 취약층, ‘고립사’ 잇따라…“정부가 원인부터 파악해야”

김향미·김태훈 기자 2023. 3. 14. 13: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5명 중 1명 “도움받지 않겠다”…‘자발적 고립’
고립가구 증가, 경제난…“사각지대 재정의해야”
‘복지 거부’ 원인 조사하고 사회서비스 확충해야
지난 7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중증장애인과 그의 70대 이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지난 10일 두 사람이 거주하던 아파트 현관문 모습. |윤기은 기자

지난 7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뇌병변 장애인과 70대인 그의 이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별다른 일을 하지 않은 채 각각 보훈명예수당과 기초생활수급자 급여를 받았고 주택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외부와 교류는 드물었고 집 주변으로 악취가 새어 나올 정도로 폐쇄적인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동대문구는 이들에게 장애인 지원을 안내해주고 청소를 도와주겠다는 제안도 했으나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7월에도 서울 도봉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기초생활수급 지원대상인 노부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부부는 연락하는 가족이 없었고 이웃과 잘 지내지 못했다. 남편은 알코올 중독, 부인은 조현병이 있어 담당 지자체의 집중 관리대상이었지만 스스로 도움을 거부했다고 한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외부와 단절된 채 생활하다 사망한 후 뒤늦게 발견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이 중에는 자발적으로 공적 복지 서비스를 거부한 사례도 적잖아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정책을 짜야 할 때라는 제언이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배제를 보는 또 다른 시각: 도움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2022년 4월) 보고서를 보면, ‘사회 참여, 자본, 인식조사’(2021년) 응답자 중 금전적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희망하지 않는 ‘자발적 배제·고립 집단’은 21.7%를 차지했다.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도움을 희망하지 않는 집단도 20.1%였다. 5명 중 1명은 경제·심리적으로 힘들어도 외부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 셈이다.

허선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는 기초생활도 영위하기 힘든 분들이 지원을 거부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이분들이 진짜 복지 지원을 거부했는지, 그랬다면 신용불량이나 빚 때문에 추적을 피하려고 외부접촉을 최소화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삶의 의욕을 잃은 것인지 등 정부가 심층적으로 원인 파악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또 “복지 거부가 의욕 상실 같은 이유 때문이라면 심리치료 같은 생계 외의 다른 차원의 지원도 필요할 것”이라며 “각 가구가 처한 서로 다른 위기 상황에 맞는 대처와 지원책을 마련하려면 구체적 원인 파악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그런 약자의 위치로 내려가기 전에 방지·예방하는 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충분히 갖춰져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 2006년 긴급복지지원 제도를 도입하는 등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복지망을 강화해왔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망이 느슨해지고 자발·비자발적 고립가구가 증가하면서 계속 구멍이 드러났다.

지난 11일에는 경기 김포시의 한 아파트에 불이나 80대 어머니와 5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어머니는 화재 이전에 숨졌을 것으로 추정됐다. 집은 모자의 소유였고, 저축한 돈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이들은 다른 가족들이 모두 숨진 후 고립됐고, 쓰레기를 집 안에 고스란히 쌓아두는 등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투병생활과 생활고를 겪다 숨진 채 발견된 ‘수원 세 모녀’는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는데, 이들도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다.

전문가들은 소득·재산을 기준으로 한 까다로운 복지 대상 선별 체계, 당사자 신청주의, 낮은 급여 수준, 낮은 복지 권리의식 등이 공적 복지 서비스에 대한 신뢰·효능감을 낮추고 결국 진입 장벽 역할을 해왔다고 본다. 김승연 서울연구원 경제사회연구실 연구위원은 지난 2월 서울복지재단이 발행한 ‘복지이슈투데이’에서 “고물가, 고금리로 인해 가계 부채로 불안한 가구는 늘어나는데, 가족관계가 느슨해지는 상황에서 기존의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사각지대의 개념 설정에서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자들은 지금 한국사회가 ‘집단적 부고장’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대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했다. 정 교수는 “복지 서비스를 거부하거나 신청하지 않는 이유는 받기에 복잡하다, 받아도 소용없다 등의 인식이 쌓여 있어 ‘체념’에 이른 상태일 수 있고, 수치심 때문일 수도 있다. 정신질환 등으로 인해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표현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다”며 “어느 복지 국가든 연대와 자조(자기책임) 사이에서 줄타기하고 개인의 책임도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복지 서비스 역사가 짧아 당사자도 서비스를 능동적으로 찾은 경험이 적다”고 했다. 정 교수는 “이들의 마음을 돌려 공공부조 시스템에 들어오게 해야 하는데, 결국 사람 중심·사회서비스 중심으로 가야 한다”면서 정부, 특히 지자체가 사회복지공무원 인력 증원, 사회서비스 인프라 확충에 예산을 적극적으로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