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NOW] ④블라인드채용 못막고 원장 선임 제때 못하는 거버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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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총괄해 출연연을 지원, 육성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맡은 기관이 있다. 바로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다. 정부 개별 부처의 논리나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나 출연연이 자율성과 책임성을 갖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지원하는 게 NST에 부여된 역할이다.
하지만 NST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몰입 환경 조성은 커녕 NST조차 정부의 입김에 휘둘리며 기관 존재 이유를 잃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계 관계자들은 인사권을 갖지 못한 NST의 제한적 권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라는 구조적 한계에서 이 같은 문제가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출연연과 NST, 과기정통부로 이어지는 거버넌스 체계와 구조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 1990년대 도입 국무총리 산하였던 연구회, 2000년대 중반 부처 산하로
13일 과기계에 따르면 연구회 체제는 1999년 도입됐다. 1960년대 이후 과학기술 발전과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출연연의 경쟁력이 1990년대 들어 민간 기업 연구소나 대학 연구소에 밀리기 시작하며 출연연 임무와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회 등 해외의 연구회 체제를 본따 1999년 기초와 공공, 산업기술 등의 연구회가 설립됐다.
NST 관계자는 “연구회는 정부의 시각이나 요구와 별도로 출연연 지원과 육성을 지원하는 목적으로 설립됐다”며 “정부가 과도하게 출연연에 관여하는 것을 막아 출연연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연구회들은 국무총리 산하로 설치됐다. 그러다 2004년 연구회들이 각 부처로 이관됐다. 기초기술연구회는 교육과학기술부로, 산업기술연구회는 지식경제부로 이관됐다. 2014년에는 현재 모습의 NST가 출범했다.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를 통합해 미래창조과학부 산하로 이관한 것이다. 출연연이 연구에 몰입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은 유지하되 2개 연구회 체제로 인해 중복됐던 관리 기능 임무를 통합해 효율적 지원체계를 확보하는 것이 취지였다.
○ 출연연 인사권 부여받지 못한 NST...설립 목적 잃었다
과학계는 NST가 부처 산하로 이관되며 자율성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한 과학계 관계자는 “부처 산하로 이관되며 자율성이 줄었다”며 “총리실 산하 때는 부처로부터 자유로웠다”고 말했다.
실제 NST 이사진 구성 역시 정부 부처의 영향과 직결된다. NST 이사진은 이사장 1인을 포함해 20인 이내로 구성한다. 당연직 이사로 과기정통부과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차관이 참여하고, 선임직 이사는 산학연 단체로부터 추천을 받고 이사회 의결을 거쳐 과기정통부 장관이 임명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출연연 운영에 정부 부처의 입김이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NST 주요 역할 중 하나인 출연연 원장 선임이다. NST는 임기에 맞춰 제때 신임 원장이 선임된 경우를 손에 꼽을 정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제때 거버넌스가 작동하지 못하면서 신임 원장 선임이 늦어지고 출연연의 원활한 운영에 어려움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원장 선임이 제때 이뤄지지 않은 것은 정부 인사검증 탓이라는 문제제기도 잇따른다. 김복철 NST 이사장은 지난 2월 기자간담회에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할 때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하지 못한 원장들이 있어 선임이 계속 정체되는 것처럼 보이는 점이 있다”면서도 “지난해 연말 11~12월 인사검증 수요가 몰리는 시기라 일반 공공기관이 밀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군인이나 경찰에 대한 인사가 모두 마무리되어야 한다면서 출연연 원장 선임에 조금씩 속도가 붙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출연연의 운영보다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원장에 선임하려다 보니 선임이 매번 늦어지는 듯 하다”며 “인사권을 정부가 갖고 있는 한 NST가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NST, 과기부의 대리인·메신저 역할에 머물러"
출연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인한 연구현장 능률 저하나 블라인드 채용 제도 일괄 적용 등 문재인 정부에서 제기됐던 문제도 거버넌스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연구기관의 특성을 무시하고 출연연의 의견 수렴 없이 공공기관들에 일괄적으로 이 같은 방침을 적용하려는 시도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NST의 적극적인 문제제기나 역할은 보이지 않았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현장에서 느끼는 NST의 영향력은 관련부처 공무원보다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출연연을 주도적으로 관리 및 감독하는 역할보다는 과기부의 대리인이나 메신저 역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상향식 의견 개진보다는 정부의 출연연 관리를 위한 대리인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점은 기재부가 지난해 말 내놓은 출연연 인건비 관련 지침에서도 확인된다. 기재부는 지난해 12월 NST가 산하 출연연 전체 총 인건비 한도 내에서 소속기관 간 총 인건비 인상률을 차등조정 할 수 있도록 했다. 표면적으론 NST의 권한을 확대한 것으로 보이지만 NST는 오히려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한된 예산 안에서 인건비를 차등해 출연연 별로 지급하는 역할을 떠맡긴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출연연 관계자는 “기재부가 굉장히 민감한 예산인 인건비 관련 문제를 NST에 떠넘긴 것으로 보인다”며 “NST 입장에서 노동의 가치를 차등해 금액을 지급하는 논리를 만들긴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 과학기술 분야 최상위 의사결정 기구서 NST 이사장은 빠져
과학기술계는 정부 부처의 입김 속에서 본래의 설립 취지를 잃은 NST가 유명무실한 기관이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을 지속적으로 제기한다. NST 이사장은 25개 출연연을 관리하고 지원한다. 출연연이 집행하는 국가 연구개발(R&D) 비용은 약 23%에 달한다. 적지 않은 비중의 R&D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이지만 NST나 출연연은 R&D 전략이나 방향성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과학 기술 분야 최상위 의사결정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참석자 명단에서 NST 이사장은 빠져 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과학기술 분야별 중장기 정책과 기술확보 전략, 관련 연구개발 예산 배분 등을 심의하는데 정작 NST와 출연연은 자문회의에서 의견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출연연 관계자는 “NST 이사장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빠져 있다는 점만 봐도 NST의 위상을 알 수 있다”며 “NST가 본래의 설립 취지를 찾도록 거버넌스를 개편하는 등의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재원 기자 ,박정연 기자 jawon1212@donga.com,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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