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마비 환자 재활 돕는 척수 전기 자극] “전류 흘리자 팔이 움직였다” 뇌졸중 마비 환자 9년 만의 혼자 식사
뇌졸중 환자 두 명이 척수에 전기 자극을 받고 몇 년 동안 마비됐던 팔과 손을 다시 움직였다. 팔을 들지도 손을 오므리지도 못하던 환자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신경외과의 마르코 카포그로소 교수 연구진은 2월 21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목뒤 척수에 전기 자극을 줘 뇌졸중으로 상반신이 마비됐던 환자 두 명이 다시 운동 능력을 회복했다”고 밝혔다. 그전에도 척수에 전기 자극을 줘 하반신 마비 환자가 다시 다리를 움직인 경우가 있었지만 같은 방법이 상반신 마비 환자에게 적용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캔 들고 포크로 스테이크도 잘라
카포그로소 교수 연구진은 뇌졸중 후유증으로 팔과 손을 쓰지 못하는 여성 환자 두 명에게 척수 전기 자극술을 적용했다. 환자의 나이는 31세와 47세였다. 스파게티 면처럼 얇은 금속 전극을 목뒤 척수에 삽입했다. 손과 팔에는 근전도 센서를 달아 실제로 근육이 움직이는지 확인했다.
환자들은 4주 동안 매주 5일간 전기 자극을 받으며 팔과 손의 기능과 근육 강도를 측정했다. 전극에 전류를 흘리자 환자들은 마비됐던 주먹을 펴거나 쥐고, 팔을 머리 위로 올릴 수 있었다. 전류를 흘리면 손을 쥐는 힘이 40~108% 세졌다.
연구진은 앞으로 척수 전기 자극으로 마비 환자가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실제로 환자들은 척수 전기 자극을 받고 손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스테이크를 자르고 식료품 캔을 들었다. 31세 작가인 헤더 렌둘릭은 9년 만에 처음으로 마비됐던 왼손을 움직여 혼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47세 환자는 마비가 더 심해 이 정도 효과는 보지 못했지만, 속이 빈 금속 원통을 집어 나무 기둥에 끼울 수 있었다.
카포그로소 교수는 논문 발표 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전류를 흘리자 환자가 마비됐던 손을 펴고 다른 동작까지 할 수 있었다”며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고 말했다. 렌둘릭은 “다시 팔을 움직이는 것은 정말 놀라운 느낌이었다”며 “지금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카포그로소 교수는 “이번에 특정 척수 영역에 전기 자극을 주면 그동안 마비됐던 팔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흥미로운 점은 수주간 전기 자극을 주면 나중에 전류를 흘리지 않아도 운동 능력 개선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이었다”고 밝혔다.
앞으로 병원에서 뇌졸중 환자의 재활 치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동물실험을 통해 최적의 전기 자극 방법을 확립했으며, 이미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임상 기술을 활용해 쉽게 연구 결과를 임상에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감각 신경 자극해 근육 강화
뇌졸중은 전 세계에서 25세 이상 성인 4명 중 1명이 걸릴 정도로 심각한 질병이다. 뇌졸중 환자 중 75%는 팔과 손의 운동 능력을 잃어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어진다. 현재로선 뇌졸중을 겪고 6개월이 지나 나타나는 마비에 대해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상태다.
논문 공동 저자인 피츠버그대 의대 재활의학과의 엘비라 피론디니 교수는 “뇌졸중 환자를 위해 효과적인 신경재활법을 만드는 일은 시급한 일”이라며 “뇌졸중은 후유증이 약한 경우에도 글을 쓰거나 음식을 먹고 옷을 입는 데 필요한 팔과 손 동작이 어려워져 환자를 사회와 일에서 고립시킨다”고 말했다.
척수 전기 자극은 목 뒤쪽 척수 표면에 부착한 전극을 통해 척수 안쪽의 신경 세포에 전류를 흐르게 하는 방법이다. 이미 병원에서 만성 통증 환자를 치료하는 데 쓰고 있다. 앞서 여러 연구진이 척수에 전류를 흘려 하반신 마비 환자를 회복시켰다. 하지만 팔과 손은 다리보다 신경 신호가 복잡해 같은 방법으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피츠버그대 연구진은 몇 년 동안 컴퓨터 시뮬레이션(가상 실험)과 원숭이 실험을 통해 상반신 마비 환자에게 쓸 수 있는 척수 전기 자극 방법을 확립했다고 밝혔다. 논문 공동 저자인 카네기 멜런대 기계공학과 더글러스 웨버 교수는 “팔과 손의 감각 신경에서 나온 신호는 척수의 운동 신경으로 전달돼 근육을 통제한다”며 “전류로 감각 신경 세포를 자극해 뇌졸중으로 약해진 근육 활동을 증진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환자는 척수 전기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전류를 흘리면 무조건 팔과 손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움직이려고 시도할 때만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연구진은 앞으로 임상시험 환자 수를 늘려 척수 전기 자극으로 누가 가장 큰 치료 효과를 보는지, 마비 정도에 따라 어느 정도 자극을 줘야 하는지 알아보겠다고 밝혔다.
하반신 마비 환자 치료에서도 성과
척수 전기 자극의 재활 효과는 하반신 마비 환자에게서 이미 입증됐다. 스위스 로잔 연방공대(EPFL)의 그레고어 쿠틴 교수와 로잔대학병원의 조슬린 블로흐 교수 연구진이 지난해 11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연구진은 하반신 마비 환자 9명에게 5개월간 척수에 전기 자극을 줬더니 모두 걸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9명 중 6명은 다리에 일부 감각이 남아 있었지만, 3명은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돼 다리에 아무런 느낌이 없는 상태였다. 연구진은 이들의 척수에 전극을 이식하고 정기적으로 전기 자극을 주면서 물리치료도 병행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환자마다 맞춤형 전기 자극을 줬다. 5개월 후 임상시험 참가자 전원이 보행보조기로 균형을 잡으면서 걸을 수 있었다.
전기 자극에 반응한 유전자도 찾았다. 감각 신경과 운동 신경을 연결하는 연합 신경과 관련된 유전자가 재활 효과를 이끌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미국 소크생명과학연구소의 아이만 아짐 박사는 이날 ‘네이처’ 논평 논문에서 “사람과 쥐를 포함해 모든 척추동물의 척수 신경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사람에서도 해당 신경이 같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재활을 유도하는 유전자가 밝혀진 만큼, 앞으로 전극을 이식하지 않고도 치료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아짐 박사는 유전자 치료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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