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착취의 자유 있는 경제, 번영 못 해…진정한 자유 위한 규제 필요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경영· 국제관계학 교수 2023. 3. 14.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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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오렌지카운티 올랜도의 외곽 파인힐스 지역에서 한 살인 사건 현장을 보도하던 방송사 기자가 해당 사건 용의자의 총격에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 용의자는 한 블록쯤 떨어진 가정집에도 들어가 총기를 난사했고, 이로 인해 9세 여아가 사망하고 아이의 어머니는 중상을 입었다. 1월 24일에도 미국 워싱턴주 한 편의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 3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새해 들어서도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잇달아 벌어지면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미국은 법으로 개인의 총기 소유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되는 총기 사고에도 총기 소유의 자유를 규제할 수가 없다. 작년 5월 24일 미국 텍사스주 남부 유밸디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이하 유밸디 사건)으로 어린이 19명과 성인 2명이 사망했다. 유밸디 사건 직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학교가 킬링필드(killing field⋅캄보디아에서 양민 200만 명이 학살된 사건)가 되고 있다”며 총기 사용 자유를 규제하는 입법을 촉구했다. 그는 공격용 총기 판매 중단 같은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의회를 설득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1년 미성년자 사망 원인 1위가 총기 사고였다. 유밸디 사건을 계기로 미국 의회가 초당적인 합의를 해 21세 미만 총기 구매자에 대한 신원 조회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됐지만 총기 사고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물론 미국 일부 주에서는 총기 소지를 법으로 규제하는 곳도 있다. 뉴욕주가 대표적인데, 지난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를 제한하는 뉴욕주 법이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림에 따라, 총기 소지 자체를 금지하는 법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하더라도, 대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릴 수 있게 됐다. 필자는 “미국에서는 총을 소지할 수 있는 자유가 총에 맞지 않고 학교나 상점에 갈 수 있는 자유를 희생하는 대가로 주어졌다”며 “총기 사용 자유를 지키기 위해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 그중 상당수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미국 내에서 민주당은 총기 사용 규제를, 공화당은 총기 사용 자유를 각각 지지하고 있다. 민주당은 과거에도 총기 사용 자유를 규제하기 위한 법안을 두 차례 하원에서 통과시켰지만, 상원에서 공화당 반대에 막혀 입법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사진 셔터스톡

미국 공화당은 오랫동안 성조기로 자신을 감싸며 ‘자유’의 수호자라고 주장해왔다. 공화당은 개인이 총기를 소지할 자유가 있고, 혐오 발언을 내뱉거나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자유도 누려야 한다고 믿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공화당은 기업 활동이 지구를 파괴하고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게 분명하더라도 ‘자유 시장’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신뢰해야 하고, 정부가 개입해선 안 된다고 믿는다. 은행 같은 금융기관의 활동이 나라 경제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더라도 정부가 규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공화당은 주장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경영·국제관계학 교수매사추세츠공과대(MIT) 경제학 박사, 전 세계은행 부총재, 노벨경제학상 수상

그런데 2008년 금융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가속화된 기후변화 위기를 겪으면서 이러한 자유 개념을 현대 사회에 적용하기엔 너무 어렵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여전히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규제를 거부하는 공화당의 자유 개념에 빠져 있다.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이사야 베를린이 “늑대를 위한 자유는 종종 양에게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자유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유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놓치고 있다. 특히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 어린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에선 총기에 대한 자유를 위해 타인의 안전과 자유가 희생되고 있지만 총기 자유에 대한 규제에 있어선 소극적인 상황이다. 자유를 규제할 수 없다는 전통적인 자유주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잃어버렸다. 한 사회에서 절대적인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자유는 상호 간 균형을 이뤄야 한다. 어떤 이해관계나 정치적인 상황에 사로잡히지 않은 전형적인 미국인이 이성적으로 이 문제를 토론한다면 AR-15(소총의 한 종류)의 자유로운 사용에 대한 권리가 다른 사람의 생존권보다 더 신성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는 자기 행동이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방법이 무수히 많다. 소셜미디어(SNS) 플랫폼은 특히 사춘기 소녀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허위 정보와 콘텐츠로 우리의 ‘정보 생태계’를 끊임없이 오염시킨다. SNS 플랫폼은 스스로를 이미 존재하는 정보의 중립적인 통로라고 소개하지만, 그를 유지하는 알고리즘은 사회적으로 유해한 콘텐츠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플랫폼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책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기는커녕 매년 수십억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책임은 없는 플랫폼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은 1990년대 디지털 경제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제정된 법에 따라 이러한 책임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현재 미국 대법원은 이 법의 위헌법률심사를 검토 중이다.

경제학자들에게 있어 자유의 척도는 할 수 있는 기회의 범위가 기준이 된다. 기회가 많을수록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서다. 또한 굶어 죽기 직전에 있는 사람이 생존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은 사실상 자유가 없는 것과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유란 자기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봐야 한다. 빈곤과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많은 이가 자기 잠재력을 실현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이는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이러한 이들이 자유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교육이나 인프라 같은 공공재에 대한 투자는 개인의 기회를 확대해 모든 사람의 자유를 효과적으로 향상할 수 있다. 이러한 공공재 투자에는 세금이 필요한데, 많은 개인은 정당한 몫(세금)을 지불하지 않고 무임승차를 하려고만 한다. 이는 전형적인 집단행동 문제를 야기한다. 모든 사람이 세금을 납부하도록 강제해야만 공공재에 투자하는 데 필요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다행히도, 자신의 의지에는 반하지만 공공재 투자에 기여하도록 강요당한 사람들뿐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이가 결과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이들은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자유에 대한 강제(규제)는 해방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②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기업에 대한 규제와 세금 부과로부터 기업을 ‘해방’하는 데 집중해 왔다. 하지만 정부가 개입해 공공재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교육받은 노동력이 부재했을 것이고, 상품 운송에 필요한 도로나 항구도 없었을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③ ‘자본주의와 자유’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 같은 책에서 자본주의는 자유와 동일시되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핵심은 착취의 자유다. 독점은 잠재적 진입자를 짓밟고 노동자를 쥐어짜는 자유로운 힘을 가져야 하고, 기업은 고객을 착취하기 위해 자유롭게 담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원해야 할 자유로운 경제가 아니다. 번영을 촉진하는 경제도 아니다.

민주당은 ‘자유’라는 진정한 단어의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 진정으로 자유롭고, 기회를 확대하며, 진정으로 자유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그들의 과제다. 물론 우리에게는 자유 시장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이는 무엇보다도 독점과 독과점의 폐해로부터 자유로운 시장,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신화 만들기를 통해 대기업이 축적해온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시장을 의미한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①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1941년 1월 6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 보내는 연두교서에서 언급한 네 가지 자유 중 한 가지다. 당시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강조한 네 가지 자유는 언론과 발표의 자유, 신교(信敎)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였다. 당시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가 함께 군비 축소에 공동 노력할 것을 호소하기 위해 언급됐다. 이후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열린 제3회 유엔(UN)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에도 ‘궁핍과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포함됐다.

②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사조다. 신자유주의는 자유 시장과 규제 완화를 중요하게 본다. 이 때문에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이론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를 도입한 수정자본주의의 실패를 지적하고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강조한다. 국가권력의 시장 개입이 경제 효율성을 떨어뜨리기는 하지만, 이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 점에서 전통적인 자유주의와는 구별된다.

③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의 활성화를 주장했던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케인스 이론이 한창 경제를 주도하던 1962년에 발간됐다. 저자인 프리드먼은 케인스와는 반대로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는 대신 개인과 시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책에는 케인스의 시장 개입 경제 정책이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를 동반한 물가 상승)을 불러올 것이라는 저자의 예측이 담겼다. 실제로 1970년대 그 예측은 적중했고, 훗날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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