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덕후’ 열정에 삽화까지 ‘무지개의 모든 것’ 펴냈죠”

강성만 2023. 3. 14.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짬][짬] 경기과학고 김상협 교사

김상협 교사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교사로 사는 삶 하루하루가 재밌어요. 제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이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그 규칙성을 찾아 수학 언어로 재구성하면서 자연을 느낄 때 참 재밌어요.”

2001년부터 과학교사로 교단에 서온 김상협 경기과학고 교사에게 ‘교사로서 가장 큰 보람이 뭐냐’고 묻자 나온 말이다.

그는 교사 2~3년째부터 실험에 열정을 쏟아왔다. 물론 학생들에게 과학을 배우는 재미를 주기 위해서다. 물리를 가르칠 때도 매시간 실험도구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교실에 들어갔고 학생들은 ‘오늘은 어떤 재밌는 실험을 볼까’ 기대감으로 체육시간 이상으로 그의 수업을 기다렸단다. 대기의 압력을 가르치는 수업에서 ‘대기압’ 머리띠를 두르고 학생들 앞에서 ‘쇼맨십’을 발휘하며 실험하는 그의 수업 열정은 <생활의 달인>(에스비에스, 2007)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에 그는 2006년 과학기술부가 주는 ‘올해의 과학교사상’을, 2011년엔 교육부에서 ‘우수 과학교사’ 표창도 받았다.

20년 가까이 무지개 덕후이기도 했던 그가 최근 무지개의 과학 원리와 역사 등을 살핀 책 <김상협의 무지개 연구>(사이언스 북스)를 펴냈다. 지난 10일 경기과학고에서 저자를 만났다.

인류가 무지개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공포에서부터 시작하는 그의 책에는 무지개의 과학 원리와 무지개 신비를 파헤친 과학자에서부터 무지개에 담긴 이야기와 문화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무지개에 얽힌 신화와 문화, 과학, 과학사를 함께 다룬 교양서로는 국내 처음”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책을 보면 무지개는 동서양 역사에서 모두 하늘과 땅 그리고 신과 인간을 잇는 다리 구실을 했다. <성경>에서 지상의 생물을 쓸어버린 노아의 대홍수 뒤 등장하는 무지개나 한국 무속신앙에서 천지신명에게 기도할 때 제사상에 올리는 무지개떡 그리고 무당들의 무지개 색동옷이 이를 잘 보여준단다. 그는 ‘사람들은 모두 왜 서로 다른 무지개를 보는지’, 또 ‘관찰자가 무지개에 다가설 때 왜 무지개는 물러서는지’와 같은 궁금증도 ‘물방울 굴절률 때문에 태양과 물방울 그리고 관찰자 시선이 이루는 각도가 42도일 때만 무지개를 볼 수 있다’는 무지개 생성원리를 들어 조곤조곤 풀어준다.

<김상협의 무지개 연구> 표지. ⓒ (주)사이언스북스

책의 장점 중 하나는 무지개 과학원리를 쉽게 보여주는 삽화인데 모두 그가 그렸다. 실제 그의 삽화는 만화 캐릭터와 함께 무지개의 원리와 생성 과정을 입체적이면서도 간결하게 보여줘 책의 가독성을 높인다. 교사 초년 시절 “만화를 수업에 활용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집 근처 만화학원을 1년가량 다니기도 했던 그는 이번 책을 쓰면서 다시 만화학원에 등록해 10개월가량 초중고생들과 함께 수강했단다. “10여년 동안 과학교과서를 집필했었는데 그때 집필자 의도가 삽화가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답답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직접 그리기로 하고 삽화 80장을 완성해 출판사에 보냈는데 평이 좋지 않더군요. 생각 끝에 만화가 과정에 다시 등록해 세련되게 다듬었죠.”

저자가 쌍무지개(1차와 2차 무지개) 생성 원리를 직접 그린 삽화. ⓒ김상협
저자가 무지개가 16차까지 떴을 때 모습을 가정해 그린 삽화. ⓒ김상협

그는 이번 책을 쓰기로 한 뒤 오로지 무지개를 보려고 2018년에 아이슬란드를 찾기도 했다. 이 여행 뒤에는 집 베란다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태양의 에너지만으로 책 원고와 삽화를 완성했단다. “아이슬란드의 낙폭이 큰 폭포에서 본 무지개는 눈이 부실 정도로 밝게 태양의 에너지를 발산하더군요. 태양의 모습 그 자체였죠. 그걸 보면서 무지개 책을 태양 에너지만으로 완성하겠다고 맘먹었죠.” 저자는 책 말미에 “나도 무지개처럼 온 힘을 다해 빛나고 싶었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맘껏 뿜어내고 싶었다”며 무지개에 끌린 이유를 밝혔다. “물방울이 태양빛을 반사한 게 무지개입니다. 그런데 태양빛의 극히 작은 양이 그렇게 밝게 비친다는 게 너무 신비했어요. 이런 무지개의 물리 현상을 안다면 무지개를 보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행운인지 알 수 있어요.”

중학교 선생님 보며 과학교사 ‘꿈’
‘재밌는 실험 수업’ 소문나 방송에도

만화학원 10개월 다니며 삽화 완성
2018년 아이슬란드 폭포 등 답사
태양광 패널 에너지만으로 집필
“관찰자 시선 42도일 때 잘 보여요”

교사 초년시절부터 ‘무지개 덕후’였다는 그가 매년 자연스럽게 보는 무지개는 서너번 정도란다. 일부러 무지개가 나타날 장소를 찾기도 한다. “42도 각도 조건 때문에 태양이 낮게 뜨는 이름 아침이나 오후 늦게 무지개를 볼 수 있죠. 이때 해를 등지고 폭포를 보면 대부분 무지개를 볼 수 있어요. 도심에서도 비가 많이 내린 뒤 물방울이 떠 있는 상태에서 해가 질 때 동쪽 하늘에 영락없이 무지개가 뜹니다.”

그는 수년 전 소방훈련을 위해 학교를 찾은 소방관에게 물 뿌리는 방향을 바꿔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단다. 학생들에게 무지개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쉽게 설득에 실패했죠. 그때 좀 더 용기를 냈어야 하는데요.”

그는 중학생 때부터 과학교사를 꿈꿨다. “중학교 과학 선생님께서 설명을 효과적으로 잘했어요. 군더더기 없이 설명했고 예도 잘 들었죠. 가르치는 기술이 뛰어난 분이었어요.” 그 역시 스승처럼 제자들의 진로에 영향을 적잖이 미쳤다. “과학 동아리에서 저와 엮인 아이들이 물리학 쪽으로 많이 갔어요. 막연히 이공계를 생각하던 아이들이 저와 수업을 함께하면서 물리에 확신을 갖더군요.”

그의 실험 열정을 잘 보여주는 예가 그동안 학생들과 10차례 시도해 7차례나 성공한 ‘우주풍선 프로젝트’이다. 대기측정용 풍선을 지상 30㎞ 이상까지 날려 미세먼지 농도를 수직으로 측정하는 실험인데, 성패는 ‘미니 낙하산’에 실려 떨어지는 측정기를 위치추적기로 찾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 “과학 동아리 학생들과 8년 전에 기상청 납품용 풍선을 사서 처음 했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더군요. 처음 했을 때는 측정기를 강원도 삼척 장호항 근처 야산에서 수거했어요.” 그는 학생들에게 자연에 있는 방사선을 보여주려고 직접 ‘안개상자’라는 실험 도구도 만들었다. “상자 안에 고농도 알코올을 과냉각 상태로 두면 방사선이 통과하면서 줄이 생깁니다. 대학교에서도 쉽게 하지 못하는 실험이죠. 학생들이 무척 흥미로워해요.”

그는 ‘좋은 교사의 조건’으로 “수업 준비에 노력을 많이 하고, 아이들한테 진심이면서, 아이들의 성향 변화에 맞춰 수업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면서 “저도 짧고 간단한 것을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 성향에 맞춰 수업이나 과제도 변화를 주고, 가능하면 저보다 아이들이 더 많이 말할 수 있게 노력한다”고 했다.

계획을 묻자 그는 “책으로 읽기 쉽지 않은 전 세계 과학 명저를 학습만화 시리즈로 내기로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